시화 및 영상詩

[스크랩] 홍해리 시집 ‘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에서

洪 海 里 2016. 7. 26. 06:35



홍해리 시인의 새 시집 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

지난 6월말 도서출판 움에서 우리詩 시인선(037)’으로 나왔다.

 

어디서 많이 본 시 같아 찾아 읽어 보니,

요즘 한창 페이스 북에도 올려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들이다.

 

시 몇 편을 골라

지난 7월 중순에 다녀온 강천산 숲길 사진과 같이 올린다.

 

 

 

송화단松花蛋*

 

잘 삭힌 홍어처럼이나

오리알이 푹 삭고 나면

제 몸속에 송화를 피운다

꾀꼬리 울 때

노랗게 날리는 송홧가루

그 사이를 날아

새는 소나무 속으로 숨고

알은 썩어서도

꽃을 피워 제 몸을 연다

드디어

백자 접시에 현현하니

천하 진미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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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화단 : 피단(皮蛋)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삭힌 오리알.

 

 

 

달항아리


백자대호나 원호라는 명칭은 너무 거창하다

좀 촌스럽고 바보스런 달항아리

우리 어머니가 나를 가졌을 때

넉넉하고 봉긋한 그 배가 아니겠는가

먹을 것 없어 늘 배가 비어 있어도

항아리는 배가 불룩해서 그지없이 충만하다

달이 떠서 밝아도 보름이고

달 없는 칠흑의 밤에도 보름달이다

문갑 위에 놓으면 방 안에도 달이 뜨고

아버지 가슴에도 달빛이 환하다

찬장 위에서 가난을 밝히는 달항아리

그것을 바라다보는 마음마다

이지러졌다 다시 차오르는 달로 뜬다

어린 자식의 응석을 다 받아주고 품어 주는

어머니가 항아리를 안고 계신다

세상 사는 일 가끔 속아 주면 어떤가

어수룩하다고 바보가 아니다

어머니가 항아리 속 아버지 곁에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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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白磁大壺圓壺는 달항아리의 다른 이름.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도 없다

 

풀 한 포기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들꽃 한 송이

또한 그런 듯하지만,

 

저 여리디여린 풀·꽃도

지옥 같은 더위와 비바람을 다

견디어 내고 나서 제 몸을 연다

한 채의 찬란한 우주를!

 

풀잎은 왜 뾰족한가

두근거리는 네 눈빛 때문이다

꽃잎은 어째서 울퉁불퉁한가

그 속에 음순이 춤추고 있어서다

 

배추 절 듯 전 그대의 오후

허공을 천천히 산책하고 있는

풀꽃 한 송이

네 앞을 환히 밝히고 있지 않는가.

   

 

 

량허란써징디엔洋河藍色經典

     -하이즈란海之藍

 

양하남색경전은 중국의 술이다

해지람이란 상표가 시원하기 그지없다

술을 보고 경전이라니,

아니 맞다!

세상을 바로 보고 바로 살게 해 주는 게

술보다 나은 게 없지

48%짜리 차갑고 뜨거운 바다를

임보 시인과 둘이서 다 퍼냈다

바닥이 난 바다는 허무했다

예수는 맨발로 바다를 건넜는데

우리는 신발을 신은 채

쪽빛 바다를 흔들리며 건넜다

몸속에서 불이 타올라

가는 길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는 주의 길을 그냥 가게 했다

어쩌자고 바람은 온몸으로 불어오는지

바다는 쪽빛으로 푸르고

빈 바다가 술병에서 잠녀처럼

휘익! 휘익!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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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량허란써징디엔 : ‘량허는 술 이름, ‘란써는 남색이니, 양주의 블루 컬러, ‘징디엔經典, 즉 클래식. 양주 이름처럼 폼을 잡아 량허’, 즉 술 중에 상급 블루 브랜드라는 뜻. ‘하이즈란은 부제.- 金金龍(시인)

   

 

 

납량納凉

 

저녁때 논에 물을 보러 나갔다.

이웃이 물을 빼 자기 논으로 넣고 있었다.

싸움이 벌어져 삽으로 내리쳤다.

열아홉 딸애가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배꼽이 하늘을 보고 있었다.

염소뿔이 녹는 폭염·가뭄이 계속되었다.

내리 며칠을 퍼붓는 비가 멎지 않았다.

물이 넘쳐 방축이 무너졌다.

둑 아래 논이 몽땅 씻겨내려갔다.

19508월의 일이었다.

     

 

서우瑞雨에게

 

꽃이 피는데

너는 떠나가 버리는구나!

 

꽃이 져도

난 너를 보내지 않는다.

 

꽃이 피고 지고

또 피었다 지는,

 

먼 그때에도

나는 너를 보낸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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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봄에 만나 55년을 함께한 친구인 瑞雨/素江 이무원李茂原 시인이 2015417일 이승을 떠남.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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