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스크랩] 홍해리 시집 `치매행致梅行`에서

洪 海 里 2016. 7. 2. 03:49



무심코 홍해리 선생님의 시집

치매행致梅行을 꺼내든다.

시인의 말부터 가슴을 친다.

 

  …치매는 치매癡呆가 아니라 치매致梅라 함이 마땅하다.

  매화에 이르는 길이다.

  무념무상의 세계, 순진하고 무구한 어린아이가 되는 병이 치매다.

  이 시집 치매행致梅行을 환자를 돌보고 있는 분들에게 바치고자 한다.

  이름만 크고 속빈 강정이 아니기를!

  또한 결코 치사찬란恥事燦爛한 일이 아니기를!

 

그 중에서 몇 편을 옮겨

고사리 사진을 곁들인다.

        

 

마취

   -치매행 · 53

 

여기부터 천릿길

지금부터 천년을

 

홀로

가는 길

 

의 흔적을 지우며

푸른 강물 따라

 

흐르는, 흘러가는

초행길

 

바람에 흔들리는

물결에 흔들리는

 

마른 꽃대궁

하나.

    

 

 

행복

   -치매행致梅行 · 55

 

몸 안의 철이 다 빠져나갈 때

우리는 철이 든다 합니다

철이 난다 합니다

그러니 들고 나는 것이 하납니다

한때는 불 속으로 들어가

설레고 안달했지마는

이제는 은은한 염불소리

물빛으로 흐르는 속에

영혼의 빈자리마다

난초꽃 한 송이 피워 놓고

물처럼 바람처럼 흘러가니

세상, 사람들 모두가 따뜻합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눈을 떴습니다

아내 손을 잡고 산책을 나갑니다.

    

 

자유

    -치매행(致梅行) · 63

 

나는 자유를 꿈꾸었습니다.

자유는 내 시의 원소,

물이요 불이요 흙이요 바람입니다

 

나는 몇 개의 원소로 지어졌는지 모릅니다

다만 자유라는 원소를 찾고 있습니다.

 

자유는 만공滿空이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세상입니다

 

자유는 수천 길 바닷속에 있고

천삼백 도 가마 속에도 있습니다

 

나는 아직 자유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매며 떠돌고 있습니다

 

아내는 나보다 먼저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마음대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꽃은 왜 지는가

    -치매행致梅行 · 72

 

소녀의 손가락에 나비 한 마리 내려앉았습니다

금빛 나비 여린 날개로 살포시 내려앉았습니다

금세 나비는 날아가 버리고

꽃은 덧없이 져 버렸습니다

꽃처럼 지는 것이 어디 있는가 묻습니다

꽃은 지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꽃이 왜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왜 하염없이 지고 마는지 더더욱 모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름답지 않다고 합니다

덧없어서 애틋하다고 합니다

하염없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가슴에 새겨 주고 꽃은 지고 맙니다

절로 피는 꽃이 금세 어두워지듯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합니다

오늘도 찬바람 부는 벌판으로 나갑니다.

        

 

 

그곳을 찾아서

   -치매행致梅行 · 76

 

오동이 속을 비워

소리를 품는,

새들이 뒤로 날고

화살이 어디에도 박히지 않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오래 산 사람이

점점 어려지는,

칼을 벼리지 않아도

날빛이 천년이나 빛나는,

 

깨끗한 육신이 서서 잠을 자고

지극한 영혼이 꿈도 서서 꾸는,

 

그곳을 찾아 아내는

웃음으로 해탈解脫의 문을 엽니다.

        

 

텅 빈 자유

   -치매행致梅行 · 79

 

아내는 신문을 읽을 줄 모릅니다

텔레비전을 켜고 끄는 것도 못합니다

전화를 걸 줄도 모릅니다

컴퓨터는 더군다나 관심도 없습니다

돈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돈이 어디에 필요하겠습니까

은행이 무엇인지 모르니

은행에 갈 일도 없습니다

통장도 신용카드도 쓸 줄 모르니 버려야 합니다

버스카드도 필요가 없습니다

문명의 이기가 정말 이기이긴 한 것인가

요즘은 헷갈리기만 합니다

이름을 몰라도 칼은 칼이고

사과는 사과입니다

자유라는 말은 몰라도 아내는 자유인입니다

지는 해가 절름절름 넘어가고 있습니다.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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