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어린아이 - 치매행致梅行 · 4​ / 정일남(시인)

洪 海 里 2016. 10. 12. 10:18

어린아이

 -치매행致梅行 · 4

 

               洪 海 里

 

아내는 어린애가 되었습니다

내가 밖에 나갈라치면

어느새 먼저 문밖에 나가 있습니다

억지로 떼어놓고 외출을 하면

왜 안 와?

언제 와?

늘 똑같은 두 마디

전화기 안에서 늘 울고 있습니다

내가 자기를 낳은 어미도 아니고

아버지도 아닌데

한평생 살 비벼 새끼 낳고 기를

죄 많은 지아비라서

나는 나이든 아기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내 사랑하는 아기는

내게 매달려 한마디 말은 없지만

그냥, 그냥, 말문을 닫고 웃기만 합니다.

                    

 

* 홍해리 시인이 <치매행(致梅行)>이란 시집을 냈다.

‘시인의 말’에서 홍해리 시인은 ‘치매는 치매(癡呆)가 아니라 치매(致梅)라 함이 마땅하다.

무념무상의 세계, 순진하고 무구한 어린아이가 되는 병이 치매다.‘라고 말하고 이 시집을 치매 환자를 돌보고 있는 분들에게 바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가슴이 저리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 글은 아내에 대한 관찰 기록이요, 나 자신의 반성과 그 고백이라서 잘 쓰려고 기교를 부리지 않았으니 욕교반졸(欲巧反拙)은 아니라 믿는다.‘ 고 했으며 하루속히 치매 완치의 신약이 나와 신음하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기쁨을 주면 좋겠다고 썼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홍해리 시인이 16개월 동안 월간 문예지 <우리詩)에 연재한 시를 모아 낸 시집이다. 치매란 병은 천진난만한 아이로 돌아가는 병이란 진술은 치매 환자를 보살펴 본 간병인이 아니고서는 그 말의 진의를 잘 모를 것이다. 홍해리 시인은 아내의 아픔을 지켜보면서 겪은 슬픈 심정을 사랑으로 보살피면서 엮은 눈물의 시편이라 아니할 수 없다. 병이란 미워할 것이 아니라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리라. 병을 사랑해준다는 것은 그 병을 앓는 환자를 사랑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나는 나이든 아기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 오늘도 내 사랑하는 아기는 / 내게 매달려 한마디 말은 없지만 / 그냥, 그냥, 말문을 닫고 웃기만 합니다> 아내의 남편이 아니라 아기의 아빠가 되었다는 이 시구에서 우린 이 일이 남의 일이 아니고 우리 모두에게 닥쳐올 난치병임을 자각하게 된다. 신은 왜 인간에게 가혹한 시련을 안겨주는가. 그 해답은 신만이 갖고 있는가.

나는 이 시집의 시편들을 읽으며 겨울 긴 밤, 잠을 이루지 못 했다. 지난날 젊은 시절 김소월의 시를 읽으며 밤에 베개를 적셨던 경험을 갖고 있는 나는 소월 이후 시집 <치매행>을 읽으며 또 한 번의 베개를 적시며 밤잠을 이루지 못 했다. 오늘의 시들은 너무 교만해지고 사치해졌으며 뻔뻔해졌다. 세상이 슬퍼졌는데도 슬픔의 시를 읽기가 어렵다. 현실을 외면하고 수사와 기교와 은유에 빠져 시의 존재 이유를 상실한 것 같다. 시집 <치매행>을 읽으며 인간의 사랑이 무엇이며, 환자를 사랑하는 지아비의 참회(懺悔)가 빚은 시의 효용성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아내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예감도 못하고 집필에만 매진했던 어리석음, <한 편의 시를 엮는 죽일 놈의 시인(?) / 아내여, 미안하다> 뒤늦게 뉘우친들 아무 값어치가 없다. <매화나무 마당에 가득하다 / 아들 며느리 / 손자 손녀 / 시끌시끌 시끌벅적...> 제삿날 피붙이들이 다 와서 북적대다 돌아갔다. 결국 남은 것은 마주 앉은 돌부처 한 분(아내) 뿐이다. 이런 적막을 무주공산이라 해도 될는지 모르겠다. 아내란 존재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이젠 내가 이상하다고 말한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편지를 보내도 받지 않는 아내의 메일 주소를 지우는 허무한 마음을 읽는다. 꽃이 피어도 저게 꽃인 줄 모르고 나비가 날아들어도 그게 나비인 줄 모른다. 그런 아내가 이젠 시인의 눈에는 아내가 아니라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여자로 보인다. 슬픔은 힘이 없고 가난하지만 이 시집 속의 눈물의 시가 같은 치매를 앓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어 세상을 밝혔으면 한다.

- 정일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