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喝 - 홍해리
갈에는 꽃이 진다 하지 마라 피는 꽃도 있나니
갈근갈근 갈갈거리는 것들 다 갈아치우고
갈갈이 끝나거든 갈건야복으로 네 갈 길로 가거라.
날이 샌다 날이 선다 날나리를 불어라
날이 날마다 날이 아니니 날 받아라
날 잡아 날이 들면 날 세우고 날아 보아라.
달 떠 온다 달 떠온다 초승달 보름달 그믐달이라
달 아래 손을 잡고 빙빙 돌아라 강강수월래
달거리하는지 달 보고 짖는 미친개야 컹컹 짖어라.
말이로다 말을 타고 달려간다 적토마야 천리마야
말 말아라 말 말아라 말 많은 세상이라
말이 아니니 말이나 잡아타고 줄행랑이나 치거라.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니 발거리 하지 마라
발그림자 없는 사람 기다린다고 오겠는가
발목 잡히지 말고 발보이지 말거라.
살이로다 살로써 살을 뚫고 쌀로서 쌀 일이로다
살을 날려 살을 막고 살살 기는 저 놈 보아라
살이 살을 먹는 세상 살을 섞어 무엇 하랴.
알이로다 알이로다 공알 물알 불알이로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알른알른 네 그림자 나를 두고 가려느냐.
잘랑잘랑 잘그락잘그락 잘똑잘똑 잘카당잘카당 잘근잘근 잘싸닥잘싸닥
잘박잘박 잘그랑잘그랑 잘강잘강 잘파닥잘파닥 잘착잘착 잘코사니!
찰가닥찰가닥 찰딱찰딱 찰바닥찰바닥 찰칵찰칵 찰그랑찰그랑 찰싹찰싹
찰가당찰가당 찰박찰박 찰카당찰카당 찰방찰방 찰랑찰랑 넘치누나!
칼날 위에 칼춤 추는 칼새 같은 사랑아
타령이나 한바탕 춤으로 엮으면서
파리 발 드리지 말아라.
‘할喝!’
♧ 역설 - 홍해리
너 없이는 한 시도 못 살 줄 알았는데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다니
찔레꽃 피우지 말아라
내 생각도 하지 말거라
네 하얀 꽃잎 상복 같아서
내 가는 길 눈물 젖는다
한갓된 세상 모든 것
있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두어라
아픔도 때로는 얼마나 아름다우냐
발자국 남기지 말고 가거라
먼 길 갈 때는 빈손이 좋다
텅 빈 자리 채우는 게 삶이다
한때는 짧아서 아름다운 법이란다.
♧ 적막을 위하여
불알 두 쪽 사내도 못 되어서
눈도 가려진 무거운 길목에서
너는 홀로 고요해지려는 것이냐
더욱 환해지는 달빛을 보려거든
출렁이는 무덤 같은 너의 두 유방
슬픔으로 몸을 입는 한때가 있었거니
저 밝은 죄, 환한 죄 같은 것으로
너는 열병처럼, 염병처럼 우는 것이냐
고요해지고 또 고요해져서
드디어 적막에 들거든
지독한 어둠도 더욱 단단해지리니
달빛 속으로 홀로 흘러 흘러들어가
네가 숨을 수 없는 허공을 아득히 채우거라
한 생이란 한 줌 모래알이 흘러내리는 시간
모래알을 세게 움켜쥐면 쥘수록
시간은 빠르게 빠져나가기 마련이라서
적막은 스스로 제 속에 고요를 기르고
쓸쓸함과 외로움도 겹쳐 하나 되는 것이니
마음이란 깊고 넓기 그지없음을 부디 알거라
이루지 못하고 가차 없이 떨어져 내리는
마음속 오래뜰에 하얀 소리의 파편들이 보이거든
허예진 추억의 물꽃이라 여기거라
지는 것은 아름답기 분통같아서
꽃도 싸움도 일찍 진 것이 오래가느니.
* 홍해리 시집 '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도서출판 움, 2016. 6. 30.)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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