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새·섬·그림·여행·음식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의 &joy] 구례 산수유마을 트레킹

洪 海 里 2018. 1. 8. 16:08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의 &joy]


구례 산수유마을 트레킹



봄은 아이들 발자국을 따라 온다. 파릇파릇 헌걸차게 솟아오르는 보리밭 이랑을 타고 온다. 생명 가득한 들판 너머로 성큼성큼 달려온다. 산수유 투욱∼툭 터지는 지리산 자락. 봄이 다디달다. 6일 야외수업을 하고 있는 구례중동초등학교 어린이들. 뒤편 멀리 눈에 덮인 지리산 만복대와 노고단이 보인다. 구례=박영철 기자
《나무의 혈관에 도는 피가/ 노오랗다는 것은/ 이른 봄 피어나는 산수유꽃을 보면 안다./ 아직 늦추위로/ 온 숲에 기승을 부리는 독감,/ 밤새 열에 시달린 나무는 이 아침/ 기침을 한다./ 콜록 콜록/ 마른 가지에 번지는 노오란/ 열꽃,/ 나무는 생명을 먹지 않는 까닭에 결코/ 그 피가 붉을 수 없다. (오세영의 ‘산수유’ 전문)》 

  ○ 두 번 핀다 노란 꽃 오종종… 잎보다 먼저 피어


산수유 꽃에선 늙은 스님의 마른기침 소리가 들린다. 콜록! 콜록! 겨우내 절집 뒷방에서 신열에 시달리다 게워낸 노란 열꽃. 나무는 마른 명태처럼 깡마르다. 기름기 없는 마라톤 선수 몸 같다. 나무껍질은 연한 갈색, 그 위에 검버섯이 여기저기 피었다. 갈퀴 같은 뿌리는 모래밭이나 돌밭에 뻗어 구불퉁구불퉁 하다. 고행하는 사막의 성자 머리칼 닮았다.

산수유는 꽃이 먼저고, 잎은 나중 핀다. 가슴속이 용광로처럼 뜨거워 우선 꽃부터 토해놓는다. 꽃은 우르르 돋아 앙증맞다. 별과자 모양의 꽃판 하나에 20~30개의 꽃이 오종종 달려있다. 꽃은 투욱~ 툭! 두 번 핀다. 한번은 겉 꽃이 열리는 소리, 두 번째는 속 꽃이 피는 소리다. 꽃말은 지속 불변. 이 ‘시러배같은’ 세상!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킬 건 꼭 지킨다.

전남 구례 산동일대는 지금 온통 ‘노란 파스텔그림’ 세상이다. 뒷짐 지고 이 골목 저 골짜기 어슬렁거리다보면 달디 단 봄바람이 콧속을 간질인다. 산수유 꽃 터널을 이룬 시냇가. 그 사이로 졸졸~흐르는 눈 녹은 물. 마을 돌담길 고샅엔 은은한 산수유꽃 냄새가 가득하다. 아이들이 깔깔대며 뛰놀고 강아지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산수유 꽃 그림자를 좇는다. 주인 없는 울안엔 붉은 동백꽃이 소리 없이 목을 꺾고 있다. 밭둑엔 쑥이 한참이나 올라왔다. 냉이 달래 씀바귀도 지천이다. 마을 뒤편에선 맑은 대숲 바람 소리. 서걱서걱 조릿대 몸 부비는 소리. 고로쇠나무 물오르는 소리. 매화 꽃눈 틔는 소리. 먼 곳 장끼 우는 소리.

○ ‘대학나무’ 열매는 약재… 한때 고소득 자랑


꽃 중의 꽃은 누가 뭐래도 상위마을 산수유다. 지리산 만복대 자락 바로 밑에 터 잡아 동네를 이룬지 600여 년. 수백 년 묵은 산수유나무가 곳곳에 똬리를 틀고 서있다. 한 때 100여 가구가 넘었지만 지금은 25가구 68명. 60대 이상이 대부분이다. 한 집에 적게는 수십 그루씩 많게는 수천그루씩 산수유나무를 소유하고 있다. 시냇가나 길가 혹은 밭둑길에 아무렇게나 서있는 듯 보이지만 그 어떤 나무든 주인 없는 나무는 없다.

한 때 산수유나무는 ‘대학나무’라고 불렸다. 두세 그루만 있으면 가을에 산수유열매를 팔아 자식을 대학까지 가르칠 수 있었던 것. 지금은 값싼 중국산에 밀려 옛날만큼 짭짤한 수익은 올리지 못한다. 열매는 대부분 한약재로 쓰이며 술을 담그기도 한다.

40년 동안이나 상위마을 이장을 하고 있는 구형근씨(70)는 “말린 산수유열매 600g 한 봉지에 5만원까지 간 적이 있지만 지금은 1만 원대에 불과하다. 한 나무에서 보통 20~70kg정도 수확하니까 한 가구당 수백만~수천만 원까지 소득을 올리는 셈이다. 이사 갈 땐 산수유나무도 한 그루에 수십 만 원씩 파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올 산수유 꽃은 열흘정도 일찍 피었다. 이미 겉 꽃을 피우고 이제 속 꽃이 우우우 눈을 뜨고 있다. 꽃잎이 며칠 전 내린 봄눈에 촉촉이 젖어 더욱 고혹적이다. 해마다 3월말이나 열리던 산수유축제(15~18일)도 예년보다 2주일이나 앞당겼다. 마을 민박은 두 달 전 이미 예약이 동났다.

정선욱씨(38·골드윈코리아 과장)는 “남도 들판의 파릇파릇 돋은 보리밭을 보며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여기 노란 산수유 꽃을 보니 진짜 봄이 온 줄을 알겠다”라고 말한다. 신성일씨(32·롯데백화점 본점 매니저)도 “산수유나무가 이렇게 큰 줄 몰랐다. 꽃도 무지무지하게 많이 달렸다. 점심땐 난생 처음 고로쇠 물까지 마셔봤는데 달작지근하고 싱그러운 맛이 너무 좋았다”고 말한다. 상위마을에서 500여m 아래쪽인 반곡마을 산수유 꽃도 일품이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시내 가운데 너른 바위 양편으로 꽃이 활짝 피었다. 사이사이 버들강아지가 봄바람에 흔들리고, 매화꽃이 막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 소박하다 꽃은 볼품없지만 멀리서 보면 장관


산수유 꽃은 소박하다. 꽃도 하나하나 뜯어보면 촌스럽다. 마치 발갛게 달아오르다 지쳐버린 노란 쇳물 같다. 하지만 멀리서 무더기로 핀 ‘산수유 꽃 떼’를 보면 은근하고 그윽하다. 바람이 불면 벌 떼들이 한순간 부르르 날개 짓을 하는 것 같다. 수천수만의 노란 물결이 일렁인다. 그 꽃그늘에 앉아 어느새 사라져버린 ‘나의 봄날’을 생각한다. ‘새한테 말을 걸면/ 내 목소리는 새소리/ 꽃한테 말을 걸면/ 내 목소리는 꽃잎’ (정채봉의 ‘꽃잎’)

그렇다. 어느 누군들 봄날이 없었으랴! 또 그 누군들 그늘이 없었으랴! 모두 하나하나 뜯어보면 ‘얼룩 투성이의 삶’이로되, 그 삶들이 한곳에 모이면 ‘사람 꽃’이 된다. 눈물 속에 핀 꽃. 산수유 꽃에 말을 걸면, 산수유 꽃잎이 된다.

▼ 내친걸음 노고단도▼


상위마을 돌담길의 산수유꽃 터널. 15일 시작되는 산수유꽃 축제에는 전국에서 수십만 명이 이 마을을 찾는다. 구례=박영철 기자
 구름바다… 돌탑… 지리산 3대 봉우리

상위마을에서 30분쯤 자동차로 지리산 등성을 굽이굽이 오르면 성삼재휴게소가 나온다. 이곳에서 노고단(1507m)까지는 3.75km. 등산로가 잘 돼있어 천천히 걸어도 왕복 3시간이면 충분하다. 어린아이들도 가볍게 갈수 있는 트레킹코스.

등산로 좌우엔 푸른 산죽 사이로 잔설이 곳곳에 쌓여있다. 버들강아지 망울엔 얼음이 얼어 햇빛에 눈부시다. 산새들이 포르르 날아오르고 는개가 시도 때도 없이 피어오른다.

노고단은 산신할머니(老姑)를 모시던 곳(壇). 신라 화랑들이 이곳에서 몸과 마음을 닦기도 했다.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과 함께 지리산 3대 봉우리 하나. 5월말쯤엔 철쭉꽃이 다발로 피고 한여름엔 30만평에 이르는 원추리 군락이 꽃을 피운다. 종주코스인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는 25.5km.

고영국 뱀사골산장 구조대장(51)은 “노고단에서 바라보는 구름바다(雲海)는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장관”이라며 “산허리를 감싸 도는 구름과 그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몸을 드러내는 산들의 유희는 사람의 넋을 잃게 한다”고 말한다.

노고단 꼭대기엔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하나둘 돌을 모아 쌓아올린 커다란 돌탑이 있다. 산신할머니의 분신인 셈이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탑 주위를 돌며 마음속으로 소원을 빈다. 자칭 ‘산 중독자’라고 밝힌 김형일씨(63)는 “30년 후에도 이곳에 와서 탑을 돌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했다”며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봄은 입맛으로부터 온다. 생명 기운 가득한 나물무침도 좋고 땅기운 힘껏 빨아들인 고로쇠 물도 맛봄직하다. 고로쇠는 골리수(骨利水)에서 온 말. 미네랄 성분이 많아 뼈에 좋다. 보통 멸치 마른 오징어와 곁들여 마신다. 섬진강 주변은 어디나 꽃 천지다. 구례에서 30분쯤 달리면 광양매화마을이 있다. 19번 도로를 타고 하동 쪽으로 가다보면 소설 토지의 무대인 ‘평사리와 악양 들’이 나온다.

■ 산수유마을 가는 길

 

구례 산수유마을 꽃그늘 걷기


산수유 노란 꽃대궐 구례 산동마을. 산수유는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맵고 알싸한 봄바람을 맞으며 우르르 떼지어 돋아난다. 가슴 속 활활 타오르던 천불이 차고 넘쳐, 마침내 울컥 토해낸 열꽃 덩어리들. 산수유꽃은 향기가 없다. 색깔이 진해야 벌과 나비의 눈길을 끌 수 있다. 산수유꽃은 꽃판 하나에 수십개의 꽃이 구슬처럼 달려 있다. ‘노란 좁쌀꽃 덩어리’ 같다. 구례=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잘 썩은 진흙이 연꽃을 피워 올리듯/ 산수유나무의 남루가/저 눈부시게 아름다운 빛깔을 솟구치게 한/ 힘이었구나!/누더기 누더기 걸친 말라빠진 사지마다/ 하늘 가까운 곳에서부터/ 잘잘잘 피어나는 꽃숭어리/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소리/ 노랗게 환청으로 들리는 봄날/ 보랏빛 빨간 열매들/ 늙은 어머니 젖꼭지처럼, 아직도/ 달랑, 침묵으로 매달려있는/ 거대한 시멘트아파트 화단/ 초라한 누옥 한 채/ 쓰러질 듯 서있다. -<홍해리의 '아름다운 남루’에서>》

산수유나무는 남루하다. 누덕누덕 낡은 껍질이 부스스하다. 뱀 허물처럼 너덜너덜 벗겨진다. 껍질 부스러기가 부얼부얼하다. 지저분하고 깡마르다. 도대체 그 말라빠진 가지에서 어떻게 그런 꽃을 토해냈을까. 검버섯 덕지덕지 핀 가지에서 어떻게 화르르 노란 별꽃을 매달았을까.

자글자글 끓어오르는 ‘노란 열꽃’. 밤새 신열에 들뜨다가 마침내 게워낸 노란 쇳물. “투욱∼ 툭!” 한번은 겉 꽃이 열리는 소리, 두 번째는 속 꽃이 피는 소리. 산수유 노란 별꽃은 가슴 속 용광로에서 울컥울컥 토해낸 토사물이다. 노란 좁쌀알이다.

들판 한가운데 금가락지처럼 둥글게 호박돌담장(2.5m)으로 둘러싸인 곡전재.

 

전남 구례 지리산 만복대(1437m) 아래는 온통 ‘노란 파스텔 세상’이다. 수백 년 묵은 산수유나무가 일제히 꽃을 터뜨리고 있다. 어찔어찔 꽃 멀미에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 저 멀리 지리산 노고단(1507m)이 하얀 눈 모자를 쓰고 있다.

산수유는 꽃이 먼저고, 잎은 나중에 핀다. 별과자 모양의 꽃판 하나에 15∼20개의 꽃이 좁쌀처럼 달려 있다. 꽃말은 ‘지속 불변’. 영원히 변치 않는 마음이다. 산수유 꽃은 향이 없다.

시냇물을 따라 상위마을, 하위마을, 반곡마을, 대음마을, 대양마을, 중동마을, 상관마을이 산수유 꽃그늘 아래 숨어 있다. 동네 고샅은 아늑한 돌담길이다. 늙은 산수유나무들은 돌밭에 갈퀴뿌리를 박고 있다. 시냇물 너럭바위에선 너도나도 사진 찍느라고 바쁘다. 그 위로 아지랑이가 꼬물꼬물 올라간다.

 

 운조루 뒤 텃밭에 활짝 핀 매화꽃

 

뒷짐 지고 이 골목 저 골짜기 어슬렁거린다. 알싸한 봄바람이 달다. 시냇물은 산수유꽃 터널 사이로 졸졸 흐른다. 주인 없는 돌담 안엔 붉은 동백꽃이 살짝 입을 벌리고 있다. 밭두렁엔 연초록 풀들이 살랑거린다. 마을 뒤편에선 쏴아! 쏴아! 맑은 대숲 바람 소리가 들린다. 뒤란 장독대 매화꽃 향기가 은은하다.

구례 산수유꽃은 이제 막 겉 꽃을 피웠다. 요즘엔 속 꽃이 떼 지어 우우 눈을 뜨고 있다. 꽃이 예년보다 일주일 정도 늦게 피었다. 4월 초순이면 절정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해마다 열리던 산수유축제도 건너뛰었다. 광양 매화꽃축제도 마찬가지다. 모두 구제역 탓이다. 그래도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산수유꽃은 아랫마을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보는 게 좋다. 가장 늦게 피는 상위마을을 맨 나중에 봐야 깨소금 맛이다. 반곡마을과 대음마을 사이를 가로지르는 시내 한가운데 너럭바위가 있다. 바위 양편 시냇가에 노란 꽃다발이 머리채를 통째로 늘어뜨리고 있다. 사이사이 버들강아지가 바람에 흔들린다.

 

쌀 두 가마 반이 들어가는 운조루(雲鳥樓)의 나무쌀독. 붉은 점선

안을 확대한 오른쪽은 ‘배고픈 사람이면 누구나 이 쌀독 마개를

풀어 쌀을 가져 가라’는 뜻의 他人能解(타인능해) 글씨.

 

산수유꽃은 하나하나 뜯어보면 촌스럽다. 노랗게 달아오르다 식어버린 노란 쇳물 같다. 하지만 멀리서 무더기로 핀 ‘산수유꽃 떼’를 보면 앙증맞고 깜찍하다.

구례는 매화의 고장이기도 하다. 그중 화엄사 흑매를 으뜸으로 친다. 각황전과 원통전 사이에 있는 300∼400년 된 홍매를 말한다. 너무 붉다 못해 검은 빛이 감돌아 ‘흑매(黑梅)’로 불린다. 4월 10일은 지나야 꽃망울을 터뜨릴 것으로 보여 사진작가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길상암 연못가 대숲의 백매(천연기념물 485호)는 은은하고 강한 향기가 일품이다. 역시 아직 일러 피지 않았다.


운조루 뒤뜰의 백매, 곡전재 안뜰의 홍매, 매천사 입구 백매도 볼 만하다. 운조루는 영조 52년(1776)에 당시 삼수부사를 지낸 류이주가 세운 99칸(현존 73칸) 집이다. 운조루(雲鳥樓)는 ‘구름 위 새가 사는 집’이란 뜻. 남한 3대 길지의 하나인 이곳 금가락지 명당에 지어졌다. 앞에는 너른 들판이 있고 들판 너머엔 다섯 봉우리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운조루는 각종 민란과 동학, 여순사건, 6·25전쟁 등에도 끄떡없이 살아남았다. 그것은 명문가 문화 류(柳)씨의 ‘더불어 베풀며 사는 정신’ 때문. 쌀 두가마니 반이 들어가는 커다란 나무 독에 쌀을 가득 채운 뒤,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에게 마음대로 가져가도록 한 것이다. 지금도 그 나무 독이 남아 있다. 독 아래쪽엔 ‘他人能解(타인능해)’라고 써 있는 마개가 있다. ‘그 누구라도 필요하면 마개를 풀어 쌀을 가져 가라’는 뜻이다.

운조루 부근에 있는 곡전재도 가볼 만하다. 들판 한가운데 2.5m 높이의 호박돌담장으로 빙 둘러싸인 한옥이 특이하다. 역시 금가락지 명당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 안뜰에 100년이 넘은 홍매가 화르르 꽃을 틔우고 있다.

구례는 지리산과 섬진강을 아우르고 있다. 산과 강에 꽃들이 무더기로 핀다. 요즘 섬진강 주변은 매화꽃 천지다. 구례에서 30분쯤 달리면 광양매화마을이 있다. 19번 도로를 타고 하동 쪽으로 가다보면 소설 토지의 무대인 ‘평사리 악양 들’이 나온다.

▼산수유꽃과 닮은 생강나무꽃? 꽃잎 수 - 줄기 모양 달라▼

 

 

가느다란 가지 끝에 매달린 산수유꽃(위)과

가지에 바짝 붙어 핀 몽글몽글 생강나무꽃.

 

산수유꽃과 생강나무꽃은 흡사하다. 언뜻 보면 같은 꽃 같다. 우선 둘 다 노란 꽃이다. 이른 봄 같은 시기에 잎보다 먼저 피는 것도 똑같다. 꽃이 모두 자잘하고 앙증맞다. 꽃이 둘 다 우산살처럼 사방으로 고루 퍼져 매달린다. 보통 사람이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두 나무는 집안부터 완전히 다르다. 산수유나무는 층층나무과이고 생강나무는 녹나무과이다. 산수유나무 줄기껍질은 너덜너덜 잘 벗겨져 지저분하다. 마른버짐이 잔뜩 핀 얼굴 같다. 생강나무 줄기는 매끄럽다. 산수유는 암꽃과 수꽃이 한 나무에서 피지만, 생강나무는 암꽃나무와 수꽃나무가 따로 있다. 열매 맺는 나무가 따로 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산수유 꽃잎은 4장이고, 생강나무 꽃잎은 5장이다.

산수유꽃은 가느다랗게 뻗은 가지 끝에 오종종 매달려 있다. 생강나무꽃은 꽃줄기 없이 가지에 바짝 붙어 핀다. 산수유꽃은 노란 좁쌀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모양이다. 작은 구슬이 모여 있는 것 같다. 생강나무꽃은 몽글몽글하다. 고깔수술처럼 부슬부슬한 느낌이다. 꽃봉오리 끝이 뭉툭하다. 영락없는 ‘꼬마 황매화 꽃’이다.

산수유나무와 생강나무는 열매를 보면 확연히 다르다. 산수유나무 열매는 빨간 타원형이지만, 생강나무 열매는 검은 원형이다. 산수유 열매는 식은 땀 흘리는 사람에게 좋다. 간과 신장 보호에도 효과적이다. 빈뇨증이나 야뇨증 노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보통 차나 술로 담가 마신다. 생강나무는 꽃잎 가지에서 맵싸한 생강냄새가 난다. 달여서 먹으면 뼈에 이롭다. 알싸하고 신맛이 뒤섞여있다. 멍들고 삐거나 상처 입은 데 효과적이다. 산후조리에도 좋다. 까만 열매는 기름을 짜서 동백기름처럼 머릿기름으로 쓰기도 했다. 강원도에선 아예 ‘산동박나무’라고 부른다.

산수유나무는 궁궐 왕릉 가정집 정원의 단골 관상수이다. 따뜻하고 물이 잘 빠지는 땅을 좋아한다. 햇살이 잘 비치는 언덕이나 논두렁 밭두렁에서 잘 자란다. 생강나무는 전국 어느 산이든지 다 있다. 날씨가 추운 중부이북 지방에서 잘 큰다. 햇볕보다는 반그늘이나 음지를 좋아한다.

▼“고향 떠나는 사람도 산수유나무는 팔지 않고 가요”▼
상위마을 산수유할아버지 구형근 씨


 
상위마을 구형근 씨(74·사진)는 ‘산수유할아버지’로 통한다. 구 할아버지는 태어나서 군대 3년 빼놓곤 단 한번도 산수유마을을 떠난 적이 없다. 무려 36년 동안(1962∼1998) 마을이장을 하며 산수유와 함께 살아왔다. 현재 이장도 구 할아버지의 아들이 대를 이어 하고 있을 정도.

“우리 마을은 지리산 만복대 자락 밑에 터 잡은 지 600여 년이나 되는 동네입니다. 한때 100여 가구가 넘었지만 지금은 26가구에 60여 명이 살고 있지요. 한 집에 적게는 수백 그루, 많게는 수천 그루 산수유나무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시냇가나 길가 혹은 밭둑길에 아무렇게나 서있는 듯 보이지만 그 어떤 나무든 주인 없는 나무는 없습니다. 하천은 나라 것이지만 산수유나무는 개인 것이지요.”

상위마을 산수유나무 중 100년 넘은 것은 얼추 잡아 2만5000∼3만 그루. 한 집에 보통 1000∼2000그루를 가지고 있다. 도시로 이사 간 사람도 산수유나무는 거의 팔지 않는다. 가을이면 어김없이 수확하러 온다. 못 딸 것 같으면 일찌감치 풋 산수유가 달려있을 때 열매만 팔아치우는 사람도 있다. 이사 때 산수유나무 한 그루 값은 보통 20만∼50만 원 정도 친다.

올 산수유 시세는 말린 것 1kg에 5만 원 선이다. 지난해 3만 원대보다 많이 올랐다. 수확량은 작황이 좋을 땐 한 나무에 70∼80kg까지 거둔다. 올 시세로 한 나무에 350만∼400만원 정도 수익을 올린다는 계산이다. 날씨가 좋지 않을 땐 한 나무에서 10kg도 못 따는 경우도 있다.

“옛날엔 산수유나무를 ‘대학나무’라고 불렀습니다. 두세 그루만 있으면 자식을 대학까지 가르칠 수 있었지요. 저도 아들 네 놈을 모두 대학까지 보냈습니다. 지금은 값싼 중국산에 밀려 옛날만큼은 못하지만 그래도 짭짤하다고 봐야지요. 중국산은 열매껍질이 얇고 국산은 두껍습니다. 꽃필 때 올해처럼 눈이 오면 꽃이 얼어 거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하늘 농사이지요. 그래도 요즘엔 산수유 따는 기계가 나와서 일하기가 훨씬 편해졌습니다.”

mars@donga.com   
◇가는 길

 

일송정의 고등어쌈밥

 

△승용차=서울∼경부고속도로∼대전통영고속도로∼함양 나들목∼88고속도로(남원 방면)∼구례 방면(19번 국도)∼밤재터널∼지리산온천단지∼산수유마을. 호남고속도로∼전주 나들목∼17번 국도∼남원∼19번 국도∼밤재터널∼지리산온천단지∼산수유마을

△기차=서울 용산역∼구례, 새마을(하루 4회) 무궁화(하루 9회). 구례에서 산동마을까지 군내버스 이용(구례버스터미널 061-780-2730)

△고속버스=서울 남부터미널 하루 7회(3시간40분소요). 구례에서 산동마을까지 군내버스 이용

◇먹을거리

△지리산온천단지 일송정(흑돼지쌈밥 고등어쌈밥 061-783-5150), 할매된장국집(061-783-6931) △참게탕 전문 천수식당(061-782-7738) △버섯비빔밥 현대식당(061-782-5113) △사찰음식 초가원식당(061-781-2222) △다슬기수제비 부부식당(061-782-9113) 다슬기식당전문점(061-781-6756) △매운탕 지리산회관(061-782-3124) 전원가든(061-782-4733) △산채정식 지리산식당(061-782-4054) 백제회관(061-783-2867) 혜림회관(061-783-3898) 백화회관(061-782-4033)

◇산수유 제품

△구례산동농협(061-781-1692), 지산식품(061-781-8787), 지리산산동산수유(061-781-8558) △산수유술=지리산산수유영농조합법인(061-781-8118)

◇민박


△운조루 한옥민박 샛뜸정(061-781-2337) △산동마을 언덕 위의 하얀집(061-783-1330)

▼대전진주고속도로~88고속도로 남원 나들목~19번 국도~밤재 터널~지리산 온천단지~산수유마을.▼호남고속도로~전주 나들목~17번 국도~남원~19번국도 


 

가져온 곳 : 
블로그 >박연서원
|
글쓴이 : 박연서원|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