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名문장>
총명한 여성들이 바꾼 세상
“우리 엄마 등신 같았어.” 사연은 조금 더 있다. 우리 엄마는 길바닥에서 얼어붙어 급하게 아버지를 부르다
말았고, 아버지는 모른 척 ‘바바리 날리며’ 줄행랑을 놓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러면서 오늘까지 우리 엄마는 아버지 밥때를 꼭꼭 챙기며
오누이처럼 살고 있다니. 시는 ‘올해도 목련이 공갈빵처럼 저기 저렇게 한껏 부풀어 있는 거야’로
끝난다. 손현숙, 「공갈빵」
엄마 치마꼬리 붙잡고 꽃구경하던 봄날, 우리 엄마
갑자기 내 손을 놓고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걸음을
떼지 못하는 거야 저쯤 우리 아버지, 어떤 여자랑 팔짱 착, 끼고 마주오다가 우리하고 눈이 딱, 마주친 거지 “현숙이 아버......” 엄마는 아버지를 급하게 불렀고, 아버지는 “뭐라카노, 아주마시! 나, 아요?” 바바리 자락 휘날리며 달아나버린 거지
먹먹하게 서 있는 엄마를 바라보며 나는 갑자기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어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배가 고픈 건지, 아픈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서러웠거든 우리가 대문 밀치고 들어서기가 무섭게 아버지는 “어디 갔다 인자 오노, 밥 도고!” 시침 딱 갈기고 큰소리쳤고 엄마는 웬일인지 신바람이 나서
상다리가 휘어지게 상을 차렸던 거야 우리 엄마 등신 같았어
그러면서 오늘까지 우리 엄마는 아버지의 밥때를 꼭꼭
챙기면서 내내 잘 속았다, 잘 속였다, 고맙습니다, 그 아버지랑 오누이처럼. 올해도 목련이 공갈빵처럼 저기 저렇게 한껏 부풀어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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