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스크랩] 망종芒種/ 홍해리

洪 海 里 2018. 6. 8. 13:58



망종芒種/ 홍해리


고향집 텃논에 개구리 떼 그득하것다

울음소리 하늘까지 물기둥 솟구치것다

종달새 둥지마다 보리 익어 향긋하것다

들녘의 농부들도 눈코 뜰 새 없것다

저녁이면 은은한 등불 빛이 정답것다

서로들 곤비를 등에 지고 잠이 들것다.


- 시집愛蘭(우이동 사람들.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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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63회 현충일이자 절기로는 망종이다. 현충일을 66일로 정한 이유는 우리민족의 세시풍습과 관련이 있다. 24절기 가운데 손이 없다는 청명과 한식에 사초와 성묘를 하고 망종에 제사를 지내왔던 오랜 전통에 근거하여 망종인 66일에 추모일을 맞춘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인 손이 없다이란 민속신앙에서 동서남북 4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사람의 활동을 방해하고 해코지하는 귀신을 뜻한다. 나라 위해 희생하신 호국영령들을 기리는 날에 그래서 '손 없는 날'을 택한 것이다.


  망종은 수염이 있는 곡식의 씨앗을 뿌리기에 좋은 때라는 뜻이다. 까끄라기가 있는 보리를 수확하고 벼를 파종하는 데 적기임을 절기로 알렸다. 망종까지는 보리를 베어야 논에 벼를 심고 밭을 갈아 콩도 심게 된다. 망종을 넘기면 모내기가 늦어지고 바람에 보리가 넘어져 수확하기도 어려워진다. 특히 보리는 씨 뿌릴 때는 백일, 거둘 때는 삼일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시간이 촉박하다. 옛날 같으면 이맘때부터 보리수확이 끝난 논마다 보리타작과 보리깍대기 태우는 연기로 장관을 이루었겠으나 지금은 다 사라진 풍경이다.


  사법부 파동에다 북미회담과 지방선거가 연이어 마음들이 부산한데도 농번기는 닥쳤다. 예전에 비해 논농사가 많이 줄었다고는 해도 들녘의 농부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생겼다. 이때의 바쁨을 일러 발등에 오줌 싼다는 말도 있다. 농사일이 끊이지 않고 망중한의 겨를이 없다고 해서 '망종(忘終)'이라고도 했다. 이때의 바쁨을 이문구 작가는 동시 '오뉴월'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엄마는 아침부터 밭에서 살고/ 아빠는 저녁까지 논에서 살고/ 아기는 저물도록 나가서 놀고/ 오뉴월 긴긴 해에 집이 비어서/ 더부살이 제비가 집을 봐 주네


  지금은 많은 논에서 기계로 모를 심고 있으나 여전히 본격적인 모내기철의 농촌은 바쁘고 일손은 부족하다. 그 분주함에 불 때던 부지깽이도 거든다는 시적인 표현까지 생겨났다. 나 같은 얼치기 촌놈이야 오래전 두어 번 생색내기 모내기지원 행사에 참가한 게 고작이지만, 거들 기회가 있다면 부지깽이라도 되고 싶다. 나랏일도 나랏일이고 국가의 미래도 미래지만 이런 저런 개별적인 심사가 더해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은지 오래다. 이럴 때 무엇인가에 몸으로 빠져들 일이라도 있어야 이 뒤숭숭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북미회담의 날짜와 시간 장소까지 정해졌다. 김정은과 트럼프 오야붕끼리 그야말로 담대하고 통 크게 세계평화와 인민을 위해 마음을 여는 일만 남았다. 정말로 평양을 거쳐 베이징으로, 모스크바로 가는 열차표를 끊고서 두 다리 쭉 뻗고 여행할 날이 하루 속히 왔으면 좋겠다. 정치판이야 어떻게 바뀌든 천지개벽이야 될까만, 지금보다 좀 더 맑고 정의로운 세상이 와서 짜증나는 일이나 없었으면 좋겠다. 이 농번기를 시름없이 잘 넘겨 저녁이면 은은한 등불 빛으로 정답고, 늦은 밤엔 서로들 곤비를 등에 지고 잠이 들었으면 좋겠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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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일보 2018. 06.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