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430일 토요일 흐림


  날씨가 꾸물꾸물한 게 뭐라도 한차례 쏟아 놓을 것 같다. 제발 오후 2-3시까지는 비님이 참으셔야 하는데...오늘은 "삼각산시화제(三角山詩花祭)"가  "생명과 자연과 시와 음악을 가꾸는" 날이어서 북한산 자락 아늑한 모퉁이에서 우이시 회원 시인들과 동료 시인들,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시소비자(詩消費者: 보스코가 시를 즐겨 읽는 자기를 지칭하는 말)들이 한데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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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각산의 위용(왼쪽부터 만경봉, 백운봉, 인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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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성염 전 바티칸교황청 대사)의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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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원 시인에 대한 추모시를 낭송하는 이인평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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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임 장소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 중에 이 모임의 우두머리('우리시회' 이사장)인 홍해리 시인이 보이지를 않는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부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임보 시인께 조심스레 물었다. 늘 소리 없이 집을 나가니까 밤새워 부인을 지키는 사람을 두었다는데 오늘 아침에 그 지킴이가 퇴근하고 홍시인이 교대하는 틈새에 부인이 어쩌다가 집을 나가버려 아침 일찍 실종신고를 내고 홍시인도 아내를 찾아 헤매는 중이란다.


  더구나 우이동 시인 사인방의 한 사람이던 채희문 시인도 3월에 뇌졸증으로 쓰러져 경희의료원에서 가료 중이라니 시인들도 불행과 질병의 마수를 피해 갈 수는 없나 보다. 그런 중에도 자신에게 당면한 고통을 객관화시켜 시로 승화시키니 곁에서 그 시를 따라 읽는 이들이 동병상린 내지 동질감으로 그 무거운 짐을 나눠 질 수는 있다

* 판소리의 조영제 명창과 고수 장영철 화백/ 뒤 : 박흥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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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시인' 정옥씨가 삼각산신령에게 드리는 헌주와 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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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나에게 보스코가 치매기를 보인다거나 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일이 일어났을 때 부끄럽게 생각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드릴 예방주사가 되기도 한다. 어찌 되었던 가엾은 홍해리 선생님의 아내가 빨리 돌아오고 채희문 시인이 빨리 쾌차하기를 기도한다. 오늘 시화전에서는 일주기를 맞은 이무원 시인의 추모시들도 낭송되었다. 


  정옥씨랑 우리 셋은 1030분에 행사장으로 떠났다. 집에서 우이 종점으로, ‘초가집뒤 모임장소로 걸어가니 45분 가량 걸린다. 홍시인도 없고 평소 낯익었던 시인들도 적어 처음엔 서먹했지만 모두 시인들이어서 쉽게 소통할 수 있었다.


임보 시인과 '예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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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인들과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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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보 시인의 '오빠부대'(?) 시인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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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제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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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 신령께 제사를 지내고 시낭송들을 듣고 트럼펫 연주도 듣고 판소리도 듣고 시보다 더 고운 목소리의 시인들이 부르는 노래도 들었다. 점심 후 여흥시간에 우리 예비시인정옥씨가 제일 먼저 나서서 김춘수 시인의 ""을 암송했다. 작년에는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를 낭송했는데 이번에는 두 번째여서 벌써 의젓하게 고운 목소리로 차분히 낭송하여 많은 이들의 칭찬도 들었다


  지난 이태 동안 두 번의 시험을 치르고, 그 시험을 준비하던 단계에서 이미 많이 성숙해졌고 자긍심이 커져 옆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그니다.


정옥씨의 "꽃"(김춘수) 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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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시(人物詩)를 쓰다 보니 보스코에 대한 시("세상을 향한 예언자적 풍모")도 썼던 이인평 시인(2011.10.27일자 내 일기 참조)이 이무원 시인을 그린 추모시에 이어서 여류시인이 이무원 시인의 "먼 산 뻐꾸기"가 이련한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http://donbosco.pe.kr/xe1/?mid=jun_diary&search_target=title_content&search_keyword=%EC%9D%B4%EC%9D%B8%ED%8F%89&x=18&y=13&document_srl=75151)



내 유년의 검정 고무신 한 짝을 가득  채운

뻐꾸기 소리 

그것은 배고픈 한나절 햇살 덩어리였을까

앞산에서 

뒷산에서 

파란 숲 속 하얀 꽃으로 

뻐꾹뻐꾹 피던 소리 

이제는 허연 아파트 숲에서 

초록빛으로 

초록빛으로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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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준 시인의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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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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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으로 걸어서 돌아오는 길, 옷수선 할아버지에게 들러 깡동바지로 잘랐다 잘라낸 천을 다시 바짓단에 붙여 멋있게 수선해 놓은 보스코의 생활한복들을 찾았다. 시장 골목으로 올라오면서 낼모레 손님맞이에 쓸 채소도 한 아름 사들고 올라왔다


  해가 기울어 예비 시인정옥씨가 예비 며느리곧 자기 소울메이트의 진짜 소울메이트를 보러 아들과 함께 종각으로 나가고 우리는 우이성당에 토요특전미사를 보러 갔다.


  밤에는 이미 한 주일 지났지만 이 이모의 생일을 축하한다면서 엽이가 무스케잌을 사 들고 들아와 밤늦게 네 사람이 케이크를 잘랐다. 정옥씨는 며느리 감 만난 설레임으로 신이 나서 내게 풀어놓을 얘기가 한도 끝도 없는데, 엽이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면서 엄마를 나무란다. 어떻든 아들에게는 새 여인만 보이지 지금까지 함께한 엄마는 벌써 가물거리기 시작할 게다. 아마도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우리 집도 제4대 집사 총각을 구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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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순란 여사 기록(성염 전 바티칸교황청 대사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