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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정자기행 / 꽃무릇 용천사 사상루 /한국매일 2018. 7. 8.

洪 海 里 2018. 7. 8. 20:57

 

 

 

南道 정자기행(639)-꽃무릇 용천사 사상루(思想樓)
 南道 정자기행(639)-꽃무릇 용천사 사상루(思想樓)


전남 영광군 불갑사와 인접한 전남 함평군 해보면 모악산(母岳山)자락에 들어선 용천사 일대에서도 꽃무릇을 원 없이 볼 수 있는 곳이다.사상화(석산화)가 이곳에 많이 군락을 이루었지는 알 수 없으나 가을의 길목에 그 황홀경은 대 장관을 이룬다.
용천사를 중심으로 주변에 형성된 꽃무릇 군락지는 30만여 평이나 된다.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다. 절집으로 들어서는 호젓한 도로변도 온통 빨간 꽃무릇길이다. 이곳 꽃무릇은 용천사 입구인 해보면 광암리 꽃무릇공원에 집중적으로 펼쳐져 있다. 그래서 600(백제 무왕 1)에 행은이 창건한 함평 용천사는 꽃무릇이 아름다운 사찰로 통한다.
그 용천사 대웅전을 가기 위해 입구에 들어서면 용천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로 절 이름은 대웅전 층계 아래에 있는 용천(龍泉)이라는 샘에서 유래한다. 이 샘은 황해로 통하며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렇듯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천년고찰에 많은 시인묵객들이 다녀갔다.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 중종 38 ~ 1620 광해군 12)15847월에 부임하여 1585년 정월에 승진(陞進)하여 찬집랑(纂集郞)에 제수되어 떠나기 전 어느날 함평에 있는 용천사(龍泉寺)에 들려 지은 시가 시공을 타고 이곳의 절경과 운치를 더하고 있다.

시원한 옛 시냇물 섬돌에 들어서 울고 / 천 그루 숲의 나무는 산영을 둘러쌌구나
차 마시고 포단에서 잠깐 졸다 깨어 보니 / 한 줄기 솔바람이 소매 가득 시원하여라
古澗泠泠入砌鳴 千章林木擁山楹 蒲團半餉驚茶夢 一陣松風滿袖淸

푸른 나무 그늘 중 한 가닥 길이 나뉘고 / 반쯤 뵈는 암자 풍경 소리 구름 밖에 나간다.
이곳 승려 타향의 나그네 보는 데 익숙해 / 석문(石門)에까지 와서 은근히 전송해 주는구나
綠樹陰中一路分 半菴淸磬出層雲 居僧慣見他鄕客 相送慇懃到石門

특히 용천사의 입구에 있는 꽃무릇공원은 광암리 마을 입구를 지나 광암저수지 입구에서 시작한다. 저수지 둑을 빨갛게 수놓은 꽃무릇이 물속에서도 붉은 빛으로 넘실대는 모습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공원 안에는 꽃무릇과 함께 벌개미취, 구절초 등 100여 종의 야생화도 더불어 피어나 아름다움을 더한다.
거기에 우리네 선비들이 사심없이 읊은 시를 곁드리면 여행길의 감칠맛을 더해 금상첨화가 된다. 조선중기의 학자로 담양군 대곡면 대산촌 출신으로 소쇄원 양산보의 아들 양자정(梁子渟)에게 수학하고 18세에 정철의 문인으로 김장생에게 사사받고 정홍명 , 정진명, 조홍립 등과 교유하며 소쇄원, 송강정, 서봉사를 비롯 전북 순창 강천사 등은 그가 학문에 몰두하고 시문을 짓으며 활동했던 만덕(晩德) 김대기(金大器1557~1628)도 어느날 용천사에 들려 읊은 시도 그러하다.

무슨 일로 괴로히 백리길을 찾아 왔는가/ 온 진세에 복잡한 정을 씻으려 함이라
새벽 구름 처음 거두니 산 모양이 고요하고/ 가는 비가 개이니 바란 기운 가벼워라
何事勞勞百里程 爲地塵世滌煩情 曉雲初捲山容靜 微雨新晴風色經

옛 정을 생각한 시인들은 말이 담담하는데/무심한 숲 풀새는 부른 소리 명랑하구나
이를 쫒아 연대의 길을 묻고져 하는데/다른 경계에 요천이 다시 맑음을 찾았어라
慕古騷人言淡淡 無心林鳥㬇嚶嚶 從玆欲問蓮臺路 異界瑤泉訪更淸

어느 사찰처럼 대웅전 앞에 강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사상누각(思想樓閣)이 남성적인 자태로 버티고 있다. 좌우 언덕에 꽃무릇이 피어 누각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누각 이름은 일대에 사상화가 많은 곳을 강조하기 위해 사상각으로 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고 있다. 이 누각은 2층으로 정면 5칸에 측면 3칸으로 1층은 종무소와 통로로 사용하고 있다.
면앙(俛仰) 송순(宋純 1493 성종 24~1582 선조 15)과이 정만종(鄭萬鍾)윤순(尹洵)과 함께 용천사를 유람했다. 그리고천재시인, 방랑시인, 권력자와 부자를 풍자하고 조롱하는 민중시인 등 수 많은 수식어를 200여년 간직하고 있는 난고(蘭皐) 김병연(金炳淵 1807 ~ 1863), 속칭 김삿갓 혹은 김립(金笠)200여년 전 보림사를 거쳐 용천사에 들려 그다운 그윽한 시를 남겼다.

잘살고 못사는 것 모두 하늘에 달렸으니 어찌 내 뜻대로 되리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 따라 느긋하게 살리라
북쪽 고향 하늘 바라보니 구름 천리 아득한데
남쪽에서 떠도는 신세가 한 마리 갈매기와 같구나.
窮達在天豈易求 從吾所好任悠悠 家鄕北望雲千里 身勢南遊海一鷗
술잔을 빗자루 삼아 시름을 떨어버리고 / 달을 낚시 삼아 시를 낚아 올리네
보림사를 다 보고 용천사로 다시 오니 / 속세 떠나 한가한 발길이 비구승과 같구다.
掃去愁城盃作箒 釣來詩句月爲鉤 寶林看塵龍泉又 物外閑寂共比丘/萬德集

용천사는 645(의자왕 5) 각진(覺眞)이 중수하고, 1275(고려 충렬왕 1) 국사 각적(覺積)이 중수하고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세조와 명종 때 중수하여 큰 절로 성장해 전성기에는 3천여 명의 승려가 머물렀다고 한다. 1597(조선 선조 30)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1600(선조 33) 중창하였고, 1632(인조 10)에는 법당을 새로 지었다.
1638(인조 16)1705(숙종 31)에 중건하고, 1938년에 중수했으나 19506·25전쟁 때 모두 불에 타 없어졌다. 1964년에 금당이 옛 보광전(普光殿) 자리에 대웅전을 새로 세우고, 요사채도 지어 절의 면모를 바꾸었으며 1996년에 대웅전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러한 정황으로 보아 사상루는 오래전에 건립되었던 것을 퇴락후 최근에 재건한 것으로 보인다.
건물로는 사상루를 비롯해 대웅전과 범종각·웅진당·요사채 등이 있고 유물로는 용천사석등과 해시계 등이 전한다. 이 중 1981년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84호로 지정된 석등은 높이 2.38m1685(숙종 11)에 제작된 것이다. 짜임새가 투박하지만 하대석에 거북이 조각되어 있다. 해시계는 석등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6·25전쟁 때 잃어버렸다가 1980년 경내 흙더미 속에서 발굴된 것이다.
호남의 3대 천재 실학자였던 장흥의 존재(存齋위백규(魏伯珪 1727~ 1798)17954월에 맏아들 도립(道立)과 조카 도전(道佺)과 함께 불갑사(佛甲寺)와 용천사(龍泉寺)에 올라 노닐면서 술을 마시고 시를 읊었다.

비 오기 전에 별계에 도착하여 / 흉금 풀어 놓고 신선의 참뜻 생각하네
서둘러 일찍 오지 않았더라면 / 종일토록 안개 속에서 헤맸을 텐데
未雨到上界 開襟挹仙眞 若非催行早 終日霧裏人
그는 이런 곳에서 이렇게 회후에 찬 삶의 맛을 후인들에게 이르고 떠났다.
한밤중에 책을 덮으니 뜻이 무궁해서 / 잠을 청해도 잠 못 이뤄 깊숙한 집에 앉네
서리 맞은 달빛은 성긴 창에 어려 있고 / 대에 돌던 바람 소리 멀리 솔밭까지 건너네
讀罷三更意無竆 欲眠未眠坐隱櫳 霜侵月色疑踈戶 竹轉風聲度遠松
불씨가 화로에 자니 스님의 이야기 조용하고 / 얼음이 바위에 깊으니 한밤 물소리도 비었네
마음속에 만약 한가한 생각을 지닌다면 / 청진이 이 가운데 있다는 것을 누가 믿을까
火宿地爐僧語細 冰深幽石夜泉空 心胷若有閑思慮 誰信淸眞在此中/존재집 제1

본래는 높이 14cm, 가로 세로 각 39cm의 정사각형이었으나 지금은 절반이 떨어져나간 상태이다. 하지만 낮시간에 해당되는 묘시(卯時)부터 유시(酉時)까지는 남아 있어 사용하는 데는 이상이 없다고 한다. 그밖에 대웅전에는 18세기 때 조성된 후불탱화가 있었으나 20005월에 도난당하였다.
이렇듯 수 많은 사연과 우여곡절을 말하고 있는 용천사에 노사 기정진의 문인으로 조선말기 함평출신 문인 손가락을 잘라 피를 드려 연명시킨 효자로 알려지고 있는 애귤재 정경식(鄭慶植; 1845~1889)이 어느날 이곳에 들려 지은 시가 150여년 전의 운치를 전하고 있다.
산문을 들어서니 돌층계 앞을 가리고/소나무 그늘에 스님들 거니네
영곡은 연꽃을 깎아 세운듯 천길이나 우뚝솟고/용천은 섬돌을 구비돌아 힘차게 솟구치네
나그네 꿈길 허공을 도는데/스님의 독경소리 이 밤을 지세우고
달빛에 창 밝아 문득 잠이 깨니/종소리 닿는 곳에 내마음 흘러가네
공원 안쪽에 자리한 용천사도 여기저기 꽃무릇 천지다. 나지막한 돌담 아래 살포시 얼굴을 내민 꽃무릇의 모습도 정겹고 돌담 너머 숲 자락에 무리지어 피어난 풍경도 마냥 예쁘다. 용천사 꽃무릇 군락지 중 절집 뒤편, 대숲 산책로. 푸른 왕대밭 아래에 융단처럼 깔린 꽃무릇 군락이 이색적이다.
용천사에서 불갑사까지 이어지는 등산로도 꽃무릇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코스다. 하나의 능선으로 이어진 모악산과 불갑산 자락에 위치한 두 절집 사이를 가로지르는 등산로는 4km 남짓이다. 빨간 꽃길 따라 이어진 오솔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매년 9월 중순경이면 용천사 일원에서도 꽃무릇큰잔치가 열리고 있다.
사상루를 오르는 계단을 내려오면서 홍해리(洪海里) 님의 상사화란 시로 이곳에서의 감흥을 대신하고자 한다.


내가
마음을 비워 네게로 가듯
너도
몸 버리고
마음만으로 내게로 오라
 
너는
내 자리를 비우고
나는
네 자리를 채우자
 
오명가명
만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가는 길이 하나이기 때문
 
마음의 끝이 지고
산그늘 강물에 잠기우듯
 
그리움은
넘쳐 넘쳐 길을 끊나니
저문저문 저무는 강가에서
 
보라
저 물이 울며 가는 곳
멀고 먼 지름길 따라
 
곤비한 영혼 하나
낯설게 떠도는 것을!
    
* 문화 : 김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