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 치매행致梅行 · 337
洪 海 里
아내가 걸을 수 있었을 때
한 발짝 앞세우고
집으로 가는 길을 찾아가게 했던 적 있습니다
"왼쪽?", "오른쪽?" 하면
갈 길을 손으로 가리키곤 하던 때
그때만 해도 좋았습니다
볼펜을 달라 하면 가위를 가져오고
신문을 가져오라 하면 시계를 주던
그때,
자신에게서 기억이 하나하나 떨어져 나갈 때
그것도 모르던 아내는 얼마나 망연했을까
나는 또 얼마나 막막했던가
언제부턴가 하나씩 포기하고
자위하기 시작했습니다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힘들어도 이해하고 수용하자
이렇게 생각하기까지 얼마나 세월이 길었던가
아직도 갈 길은 멀어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기적이 일어날 리가 있겠습니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외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허섭스레기 같은 일뿐
저쪽 세상이 너무나 황량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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