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나는 사랑아

洪 海 里 2018. 12. 27. 17:40

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나는 사랑아

 

洪 海 里




꽃나무 아래 서면 눈이 슬픈 사람아
이 봄날 마음 둔 것들 눈독들이다
눈멀면 꽃 지고 상처도 사라지는가
욕하지 마라, 산것들 물오른다고
죽을 줄 모르고 달려오는 저 바람
마음도 주기 전 날아가 버리고 마니
네게 주는 눈길 쌓이면 무덤 되리라
꽃은 피어 온 세상 기가 넘쳐나지만
허기진 가난이면 또 어떻겠느냐
윤이월 달 아래 벙그는 저 빈 자궁들
제발 죄 받을 일이라도 있어야겠다
취하지 않는 파도가 하늘에 닿아
아무래도 혼자서는 못 마시겠네
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나는 사랑아.

 

- 시집『봄, 벼락치다』(2006, 우리글)



   * 사랑은 가고 사람은 남아 있다. 지금은 윤이월, 달 아래 꽃이 벙그는 시간이다. 몸이 떠났을 때 사람은 마음으로 몸을 찾는 법. 지극하게 누군가를 기다려 본 사람은 안다. “눈멀면 꽃 지고 상처도 사라”진다는 것을. 시인은 지금 꽃나무 아래 서서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한다. 그것이 사랑이든 연민이든 시간의 장난이든, 시인은 지나가버린 그것들을 연민한다. 눈이 슬픈 사람이란 눈에 눈물이 맺히는 사람일 것이다. 마음 둔 것들 모두 떠나가 버리고 지금 시인은 홀로 꽃나무 아래 서 있다. 눈독들이다 그만 눈이 멀면, 즉 보이지 않으면 사랑도 사라지는가? 반문한다. 반어법이 강하게 도래하면서 그러나 그것은 더 짙은 연민으로 다가온다. “죽을 줄 모르고 달려오는 저 바람” 그것의 정체를 마음이라고 읽어도 무방하겠다. 그 마음들 쌓여서 무덤이 되어도 시인은 그냥 그 자리, 오늘을 지킨다. 아무도 함께 할 수 없는 시간의 사건. 저 빈 자궁 같은 시간 앞에서 시인은 “제발 죄 받을 일이라도 있어야겠다”는 고독을 맛본다. 맨 정신으로는 가 닿을 수 없는 곳. 사랑아! “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나는 사랑아.” 꽃들의 사건은 속절없다.

   - 손현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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