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는 때려야 돌고 돌아야 선다
洪 海 里
멈춘 팽이는 죽은 팽이다
죽은 팽이는 팽이가 아니다
토사구팽이다
멈추면 서지 못하는
팽이를 때려 다오
돌아서 서도록 쳐 다오
너의 팽이채는
쇠좆매,
윙윙 울도록 때려 다오
중심을 잡고
불불대도록,
불립문자가 되도록 쳐 다오.
- 시집『봄, 벼락치다』(2006, 우리글)
* “멈춘 팽이” “죽은 팽이” “토사구팽”으로 이어지는 말의 연쇄만 본다면 이 시는 그다지 새로울 게 없다. 이미 오래전에 시인은 그 말의 재미가 오를 수 있는 높은 경지를 시험했고 또 보여주었다. 최소한 이번 시집에서 시인의 말은 놀이가 주는 쾌감을 넘어서고 있다.
이 시에서는 그 말의 부딪힘이 언어를 통해 한 번 더 새로워진다. 시인은 죽은 팽이를 살리듯 자신의 언어를 되살리려고 한다. 그것은 단일한 의미로 환원된 언어를 다시 자유롭게 하는 일이다. 가령, “서지 못하는”[不立]은 팽이를 돌려 “불립문자”(不立文字)가 되도록 한다는 것은 쉽게 얻을 수 있는 통찰은 아니다. 언어에 대한 깊은 사유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서는 이 낙차를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불립문자”란 불가(佛家)에서 흔히 말하는 ‘염화미소(拈華微笑)’의 깨달음을 지시하지 않는다. 서지 않으면 팽이[언어]가 되지 않는다는 현상적 관찰이 문자로 된 것은 언어가 아니라는 철학적 사유로 이어진다. 이 “불립문자”야말로 언어를 의미의 죽음으로부터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 오래된 진리는 오직 시의 언어만이 보여줄 수 있다. 시인이 바로 눈앞에 있는 “서지 못하는” 팽이에서 저 멀리 있는 “불립문자”를 얻었다. 뿐만 아니라 바로 그 앞 구절에 시인은 “불불대도록”이라는 말을 적어 “불립문자”가 지닐 수 있는 왕성한 힘을 느끼게 했다. 때로 언어에 대한 시인의 예민한 감각은 그 기원을 돌아보게 한다.
- 여태천(시인)
얼음썰매 타고 신난 동심… 16일 전국에 눈-비 소식
-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동아일보 2018.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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