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숫돌은 자신을 버려 칼을 벼린다

洪 海 里 2018. 12. 27. 04:41

숫돌은 자신을 버려 칼을 벼린다

 

 

 

洪 海 里

 

 



제 몸을 바쳐
저보다 강한 칼을 먹는
숫돌,

영혼에 살이 찌면 무딘 칼이 된다.

날을 세워 살진 마음을 베려면
자신을 갈아
한 생을 빛내고,

살아 남기 위해서는 버려야 한다.

서로 맞붙어 울어야
비로소 이루는
상생相生,

칼과 숫돌 사이에는 시린 영혼의 눈물이 있다.

 

- 시집『봄, 벼락치다』(2006, 우리글)

 

   * 이 시는 사물과 사물의 관계를 통해 배려의 미학을 되새기고 있다. ‘되새기고 있다’라 함은 누구에게 설파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 스스로가 곰곰이 생각하는 어투라는 의미다. 혹여 자신의 영혼은 과대하게 살찌지 않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을 벼리는 일이 남았을 것인데, 벼리는 것을 시인은 상생相生으로 그 의미를 도출해 낸다.

칼은 무뎌진 자신의 날을 벼리는 것이니 타자로부터 받는 것이라 한다면, 숫돌은 그 반대이니 주는 것으로 이해함이 통상적인 양자의 역할役割이다. 하지만 시인의 사유는 다르다. 칼을 벼리는 그 행위로 숫돌 또한 얻는 것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숫돌이 자신을 소모하는 것에서 무엇인가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네 번째 연, <한 생을 빛내고, / 살아남기 위해서는 버려야 한다.>이다. 숫돌의 존재이유를 말함이다.

 칼이 없었다면, 날이 무디어진 칼이 없었다면 숫돌은 무엇으로 자신의 존재이유를 확인할 수 있을까? 존재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면 살아도 살아있는 생명이 아닐 수 있다. 여기서 바로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성찰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한지만 이러한 숫돌論은 근본적으로 배려의 마음을 바탕으로 한다. 아무리 제 역할을 하는 것이라 해도 배려의 마음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만이 그것을 실천할 수 있다.

   - 박승류(시인)

 

 

* https://wh1374.tistory.com/5950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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