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황금감옥

洪 海 里 2018. 12. 30. 16:36

황금감옥金監獄

洪 海

 

 


나른한 봄날
코피 터진다

꺽정이 같은 놈
황금감옥에 갇혀 있다
금빛 도포를 입고
벙어리뻐꾸기 울듯, 후훗후훗

호박벌 파락파락 날개를 친다

꺽정이란 놈이 이 집 저 집 휘젓고 다녀야
풍년 든다
언제

눈감아도 환하고
신명나게 춤추던 세상 한 번 있었던가


호박꽃도 꽃이냐고
못생긴 여자라 욕하지 마라
티끌세상 무슨 한이 있다고
시집 못 간 처녀들
배꼽 물러 떨어지고 말면 어쩌라고


시비/柴扉 걸지 마라
꺽정이가 날아야
호박 같은 세상 둥글둥글 굴러간다

황금감옥은 네 속에 있다.


- 시집『황금감옥』(2008, 우리글)

 

  * 시집의 표제시이기도 한 이 작품에서 시인은 호박꽃 속에 갇힌 호박벌을 주시한다. 소소한 일상 속에 관찰되는, 또는 한 계절 아이들의 장난거리에 불과한 사건을 통해 그는 생의 한 지경까지 그 외연을 확장시킨다. 혁명이라는 거대담론이 아니라 그저 "눈감아도 환하고/ 신명나게 춤추던 세상"을 꿈꾸던 꺽정이와 "호박꽃도 꽃이냐고/ 못생긴 여자라 욕"할 수 없는 처녀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 "호박 같은 세상"을 시인은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황금감옥은 네 속에 있다"라는 전언은 견자(見者)로서의 시인이 안에서 밖으로 타전하는 가냘프고도 진지한 메시지가 된다. 시인의 이 같은 태도는 "햇빛과 비바람이 둥근 파문을 만들고/ 천둥과 번개가 아름답게 다듬어"(「波紋」)밖으로 번져나가는 나무의 모습에서도 산견된다. 나무가 계절에 따라 잎을 피우고 떨구는 것을 하나의 파문으로 인식하는 시인의 눈길에서 느리지만 생의 비의를 탐침해가는 지난한 걸음걸이를 발견하게 된다.

  홍해리의 시집이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말놀음이다.

   - 전형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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