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홍해리洪海里는 어디 있는가

洪 海 里 2018. 12. 30. 08:10

 

 

홍해리洪海里는 어디 있는가

 

洪 海 里

 


의 나라
우이도원牛耳桃源
찔레꽃 속에 사는
그대의 가슴속
해종일
까막딱따구리와 노는
바람과 물소리
새벽마다 꿈이 생생生生
한 사내가 끝없이 가고 있는
과 행 사이
눈 시린 푸른 매화,
대나무 까맣게 웃고 있는
솔밭 옆 마을
꽃술이 술꽃으로 피는
난정蘭丁의 누옥이 있는
말씀으로 서는 마을
그곳이 홍해리洪海里인가.

- 시집『봄, 벼락치다』(2006, 우리글)

 

 

  * 큰 바다를 시의 마을로 삼는 시인. 시의 바다에 영혼을 기투하는 시인. 말과 말 사이에서 말의 위의를 예인하는 시인. 洪海里는 기표다. 그것은 결코 기의일 수 없다. 그것은 말과 말이 역동하는 순수한 시말의 비등점이다. 그것은 시말의 소생점인 바, 행과 행 사이를 마구 요동쳐 “詩의 나라”를 꿈꾸는 시인의 가슴이다. 洪海里는 시혼이 주소하는 공간이다. 洪海里는 까막딱따구리와 바람과 물소리가 한데 어울려 저물녘 시적 몽상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洪海里는 마음이다. 洪海里는 어디에나 있기도 하고 이 세계 속에 없기도 하다. 하여 洪海里는 공간이면서 공간이 아니다. 洪海里는 유이면서 무이고 무이면서 유이다. 洪海里는 U-topia(이 세상에 없는 곳)이면서 Utopia이다. 洪海里는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인 바, 그것은 의미도 아니고, 의미가 아닌 것도 아니다. “꽃술이 술꽃으로 피는” 마을, 그 마을이 바로 洪海里다. 따라서洪海里는 시의 변곡점이다. 시와 시의 위의를 사유하면서 시인 홍해리는 기표 洪海里에 의미의 옷을 찬란하게 입히고 있다. 

  단언컨대, 洪海里는 모든 기의를 수용하는 원문자이거나 메타기호인데, 시인의 시말은 “말씀으로 서는 마을” 어디쯤을 배회하면서 시, 시말, 시인의 존재론적 양태를 키질하고 있다. 시 「洪海里는 어디 있는가」는 시적 발상면에서 보나, 시에 대한 태도면에서 보나 아주 탁월한 작품인데, 시인은 시의 원문자와 같은 메타 기호 洪海里를 통해서 자신의 시적 정체성을 탐색하는 것은 물론 시인이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가를 숙고하고 있다. 세계와 세계 사이에, 행과 행 사이에, 그리고 세계와 행 사이를 아주 예민한 시선으로 들여다보면서 시인 홍해리는 시의 고향인 洪海里(넓고 큰 시의 마을)를 찾아가고 있다. 하여 洪海里에는 무릉도원이 있고, 시인이 있고, 시말이 있고, 시가 있다. 洪海里는 홍해리다. 洪海里는 시인의 길찾기다. 洪海里는 순정한 시혼이 깃들여 있고, 시인이 찾고자하는 미완의 꿈이 있다. 시가 있는 그 모든 곳이 바로 홍해리가 찾는 洪海里의 실체이다.

           - 김석준 (문학평론가)

 

  * 내가 나를 의식할 때, 나는 나의 존재론적 근거를 어디에 두고 있는

가. 나는 무엇이고 나는 왜 존재하는가. 아니 나는 나를 통해서 나의 정

체를 알 수 있는가. 문제는 나와 나의 의식이다. 만약에 내가 나를 모르

거나 의식하지 않을 때, 그것은 가장 행복한 의식의 상태이다. 왜냐하

면 자기의식은 불행한 의식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허나 모든 인간학적

사태는 나에서 출발해서 나로 종결한다. 왜냐하면 모든 의식은 나로부

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코기토적인 나(혹은 존재론적인 나)와 그러한

나를 의식하는나(혹은 인식론적인 나) 사이에 가로놓인 심연. 그것은

결코 해결될 수 없는 인간학적 모순이자, 인간의 선험적 토대이다. 말

하자면 스스로의 존재론적 근거를 사유하는 자기의식은 인간학(역사,

철학, 문학)이 발현되는 최초의 계기인 동시에 그것으로 인해 행복한

시대를 마감하게 만드는 불행한 의식이다. 나의 나됨을 의식하는 존재

론적 전환으로 인해 인간의 역사가 비로소 시작되었지만, 그것은 역으

로 피 터지는 헤게모니 전쟁이라는 역효과를 낳게 된다. 하여 자기의

식은 저 해결할 수 없는 극렬한 모순이다.

     물론 홍해리의 시「홍해리洪海里는 어디 있는가」가 자기의식의

모순적 지평을 시말화했다는 말은 아니다. 허나 적어도 홍해리의 이

시를 주목해야하는 이유는 나의 나됨, 즉 爲己에 관한 탐색을 하고 있

다는 점이다. 시인은 비결정 상태로 존재하는 나와 나의 주변을 조목

조목 소묘하면서 시인의 위의를 순결하게 그려내고 있다. 허나 다시

묻게 된다. 나는 무엇이며,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아름다운 시말 사이

에 존재하는가, 아니면 고즈넉한 저 자연의 풍경 속에 존재하는가. 그

러나 역시 문제는 다시 나로 되돌아간다는 사실에 있다. 물론 시인은

"시의 나라"에 존재하면서 자신에게 속한 것들을 아름답고 평화롭게

유미화하기는 하지만, 그것 역시 '나'라는 심급에 다시 걸려 넘어진다.

    주체이면서 객체이기도 한 나. 그러한 나의 존재론적 양태를 추적하

는시인, 시인 홍해리는 공간 홍해리이기도 하고, 시말 공간, 즉 행과

행 사이에 위치하는 홍해리이기도 하다. 자연인 홍해리는 다양한 방식

으로 표상될 수 있다. 그것은 역으로 자연인 홍해리가 홍해리(내적 외

적 실체)의 정체를 정확하게 언표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하여 홍해리

는 무한히 미끄러진다. 홍해리는 기표다. 왜냐하면 시인은 "그것이 홍

해리洪海里인가."라고 반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지 포착된 순간 미

끄러지는 홍해리. 홍해리는 시도 되고, 마을도 되고, 말씀의 공간이 되

기도 하지만, 역으로 홍해리는 시도 아니고, 마을도 아니고, 말씀의 공

간도 아니라는 역설을 성립시킨다. 다시 말해서 자연인 홍해리는 불확

정한 양자현상과 같다. 어쩌면 홍해리 시인이 말한 "ㅡ인가"와 같은 의

문적 태도가 나의 나됨을 정의하는 정확한 인식인지도 모른다.

    도대체 "홍해리는 어디 있는가." 우리는 기표 홍해리의 정체를 정확

하게 모를 뿐만 아니라, 홍해리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또한 모른다.

다만 시인이 자기를 찾아 떠나는 여정 위에 서 있다는 것만 알 수 있다.

온전한 자기찾기, 爲人이 아닌 爲己를 정관하기. 이것이 바로 「홍해리

洪海里는 어디 있는가」의 매력 포인트이자, 시말이 근본적으로 작동

하는 방식을 메타적으로 사유하게 만드는 까닭이다. 다시 말해서 단순

한 유희적 산물로서의 시말이 아니라, 자기를 얹혀 삶-시간-세계를

승화시킨 시말을 인간학의 자장 내부로 이입시키고 있다. 시인에게 시

말은 나를 찾아 떠나는 시간의 단면도 위에 기입된 인간학의 초상이

다. 허나 나는 나를 찾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찾지 않을 수도 없다. 나

는 언제난 미궁인 "ㅡ인가"이다. 나는 나의 정체를 꼬리표로만 말한다.

   - 김석준(문학평론가)

 

  * 홍해리 시인은 1969년 첫 시집『투망도投網圖』로 문단에 데뷰했으니 올해로 50년, 반세기가 지나갔다
그동안 '언어의 사원'에서 늘 새벽에 시와 하나된 시인으로 수많은 작품을 선보여, 시집 21권,
시선집 4권 총 25권을 내 놓았으니 문단에 큰 영향을 준 큰 시인임이 분명하다.
  이와 함께 우이동 4시인과 함께 동인지 간행, 시낭독회 주최, 월간《우리詩》발행, 후배 시인 육성 등
문단 활동에서도 적극 참여함으로써 대선배로 굳건히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홍 시인이 이번에 출간한『홍해리는 어디 있는가』란 시선집은 그간 나온 시집에서 선별한 작품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반세기를 결산하고 싶어서 내논 시선집이어서 그런지 어느 시를 봐도 소재, 시어,
형식, 음률 등이 하나같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완숙도가 더욱 높은 듯이 느껴진다.
시간을 내서라도 좀더 깊이 들어가 시향에 푹 젖어 들고만 싶다. 그래서인가, 홍 시인은 그가 바라던 대로
"가슴에 산을 담고" 자연을 즐기며 벗바리 삼아 올곧게 사는 시인"이 될 것으로 믿는다.                                                             
- 이승만(문학평론가).

 

  * 내 고향은 바다가 없는 충북 청원이다.

바닷바람, 물너울, 바닷새, 수평선, 난바다, 해일, 이런 것들과는 먼 곳이다.

바다는 늘 나의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바다를 처음 본 것도 대학에 들어가서였다.

바닷물이 정말 짤까 하고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본 기억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성씨 ‘洪’에 ‘海里’라는 필명을 스스로 붙여 ‘홍해리’가 되었다.

넓을 ‘洪’에 바다 ‘海’를 결합하면 ‘너른 바다, 큰 바다’가 된다.

바다 ‘海’에 마을 ‘里’를 붙이면 바닷가에 있는 마을이 된다.

‘洪海里’는 큰 바닷가에 있는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 오순도순 살고 있는 마을이다.

전북 부안 주산면에 ‘洪海里’가 있고 고창에는 ‘海里’면이 있고 해남에는 ‘海里’가 있다.

‘1해리’는 바다에서 1852m를 나타낸다. 그러면 ‘홍해리’는 거리가 얼마나 될까?

무한대를 뜻하는 ‘洪’에 ‘海里’가 결합되면 끝이 없는 먼 거리를 뜻하지 않는가.

어떤 자로도 잴 수 없는 거리, 갈 수 없는 거리, 메비우스의 띠!

고향을 떠나 자리 잡은 곳이 서울이고 가장 오래 살고 있는 곳이 우이동이다.

북한산 골짜기 우이동에서 隱者의 북을 울리고 詩丸을 만들어 냇물에 띄운다.

이곳에서 이생진, 임보, 채희문 시인을 만나 ‘우이동시인들’이란 동인회를 만들었다.

삼각산 양지바른 옛 암자 터에 복숭아나무를 사다 심고 가꾸기 몇 년이었던가.

이제 제법 자라서 해마다 봄이면 복사꽃 잔치를 벌일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그곳을 우리는 ‘牛耳桃源’이라고 부른다.

그곳에서 우리는 해마다 봄가을로 ‘三角山詩花祭’와 三角山丹楓詩祭‘를 올리고 있다.

주변에는 백년 묵은 오동나무가 여러 그루 서 있어 까막딱따구리의 보금자리가 된다.

우이동 누옥에는 내가 심은 매화나무가 수령이 40년이나 되어 마당을 독차지하고 있다.

해마다 매화가 만개하면 시인들과 ‘梅下詩會’를 열고 술잔에 꽃잎을 띄운다.

또한 유월이면 매실을 따  매실주를 담가 노랗게 익어가는 빛깔과 향기를 즐긴다.

또한 이사하면서 심은 烏竹 몇 그루가 해마다 죽순을 올려 기운을 북돋워 준다.

‘蘭丁’은 임보 시인이 내가 난초에 미쳐 살 때 붙여준 별명이다.

‘우이동솔밭공원’은 백 년 된 천 그루의 소나무를 베어내고 고층아파트를 짓겠다고 할 때

다른 단체와 함께 ‘우이동시인들’이 지켜낸 아름다운 공원이다.

그렇다.

洪海里는 홍해리에 있다. 홍해리에는 洪海里가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내 시의 고향인 洪海里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홍해리에는 나의 꿈이 있고 내 시혼이 살고 있다.

홍해리는 나의 시요, 내 영혼의 고향이다.

  - 洪海里

 

  * 넓고 큰 바다동네<홍해리洪海里>가 어디 있나?
홍해리洪海里는 봉숭아꽃이 만발하는 시詩의 나라 우이골 찔레꽃 속에 있다고 합니다.

   우이골은 서울 강북구 삼각산자락에 있는 마을입니다. 우이동(소귀봉)이라는 동명의 유래는 동리 뒤에 있는 삼각산 봉우리 중에 백운봉과 인수봉이 우이동에서 바라보면 소의 귀처럼 생겼기 때문에 소귀봉 즉 우이봉 아래 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전해집니다.

  이 우이동을 깃점으로 하여 도선사 주차장이 있는 미소불광장을 경유하면 서울의 진산이라고 하는 삼각산의 최고봉인 백운봉을 제일 빠른 시간에 오를 수가 있습니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삼각산을 북한산으로 부르고 있는데 삼각산의 명칭은 백운봉(836.5m), 인수봉(810.5m), 만경봉(799.5m), 이 세 암봉(岩峯)이 멀리서 보면은 마치 뿔처럼 날카롭게 솟아 있는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삼각산을 북한산이라고 부르게 된 계기는 1916년 경성제국대학 교수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위원 이마니시 류가 한수(漢水)가 총독부에 ‘북한산 유적조사 보고서’를 제출하면서부터인데 삼각산과 북한산으로 혼용되다가 1983년 정부가‘북한산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면서 북한산으로 고착화되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우이골은 삼각산 아래에 있고 도봉산 포대능선으로 이어지는 삼각산(북한산)우이능선에는 소귀를 닮았다는 바위 우이암이 실제로 있습니다. 우이동(牛耳洞)은 소귀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동네이지만 넓은 바다(洪海里)가 있는 마을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우이골에는 시의 자화상인 홍해리洪海里 시인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자화상의 시는 참 많습니다. 윤동주, 서정주, 노천명, 유안진, 최승자, 최금녀 등의 시인들이 자화상의 시를 썼고 시인이라면 '자화상' 이라는 제목으로 한 편의 시를 거의 다 썼을 것이고 앞으로 시인이 되는 사람들도 모두 쓸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시의 소재로서 매력적이라기보다 시인이라는 다소 숙명적인 운명에 자조적인 넋두리로 읊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시는 자화상이라는 제목 대신 '홍해리洪海里는 어디 있는가' 로 썼지만 홍해리 시인의 자화상이나 다름없습니다. 시의 결구에 '그곳이 홍해리洪海里인가' 짐짓 묻고 있지만 홍해리(洪海里)가 있는 곳은 바다가 아니라 삼각산 아래 시詩의 나라 복사꽃 동네 우이골이라고 넌지시 일러줍니다.

  인터넷 가상공간에는 부지기수의 시의 마을이 있고 전국에는 많은 시 숲의 마을이 있습니다. 전국에 많은 시인들이 그들의 시의 숲에서 시를 짓고 낭송하며 시의 마을을 이루고 살 듯이 우이골에도 <우리시> 라는 시 숲의 마을이 있습니다.

봄이면 시화제(詩花祭)를 지내고 가을이면 단풍제로 삼각산 시제를 지내며 찾아가 뵙지 않으면 산을 내려오지 않는 선승처럼, 그의 시집(비타민 詩)에 들어있는 '은자의 꿈' 나오는 고산지대의 주목처럼 홍해리 시인은 살고 있습니다. 홍해리 시인뿐 아니라 '우이동 살리' 시를 합동으로 지은 시인들이 지금도 살고 계시거나 오래도록 살았습니다.

 

전국적으로 시의 숲이 있는 마을이 얼마쯤 될까 궁금합니다. 서울 수도권을 비롯하여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그리고 각 시, 군, 면 단위 지역의 산자락에 아담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시 숲의 마을은 무수히 많을 줄로 압니다. 그들은 서로 편한 그곳에서 맑은 이슬을 먹고사는 매미처럼 세속의 영화와는 상관없이 구름을 불러 노래하고 바람을 불러 신명나게 춤을 춥니다.

 

시집은 팔리지 않는데 시를 쓰려는 사람은 자꾸 늘어나서 시인이 2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시의 질적인 저하가 있다고는 하나 시인이 많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고 긍정적이지 부정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결국은 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시집을 한 권이라도 사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 시집을 거들떠보기나 하겠습니까. 

 

이른바 잘 나간다는 몇 몇 유명시인들을 빼고는 출판사에서는 시집을 출판하려고 하지 않아서 그런지 동인지 형태로 시집 출판을 하고 시인들끼리 돌려본다고 해도 시가 있어 세상이 아름답고 시가 있어 정서적으로 풍요롭다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시 한 편을 남기고 가는 시인들은 모두 모두 행복한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시가 세상에 알려지든, 알려지지 않든 한 편, 한 편 모두가 자신들의 분신이기에...<정호순>               

 

출처 :너에게 편지를 원문보기   글쓴이 : 흐르는 물

 

  * 여기 아침부터 밤까지 시를 먹고 입고 걷는 시인이 있다. 그는 우이동 골짜기에서 우이동 귀신이 된 지 벌써 오래다. 그를 보고 있으면 산이 마을로 내려온 듯도 싶고, 바람이 잠깐 사람의 형상으로 서 있는 것도 같다, 아니 그가 산이 되어 나무들이 메아리치는 것도 같다. 그렇게 그는 산을 참 많이 닮았다. 그는 새벽 세 시면 눈을 떠서 산의 부름을 받는다. 산은 이미 그에게 떼려야 뗄 수도 없는 정부다. 숨겨둔 여자. 사시사철 단 한 번도 같은 몸이 되기를 거부하는 요부 중에서도 요부. 그는 그녀를 한 손에 틀어쥐고 있다. 뭘까, 누구의 손 아귀에도 들어 본 적 없는 여자를 쥐는 힘. 산은 알고 있는 것이다. 시인만이 산을 산으로 노래하고, 걷고, 그리고 자연으로 세울 수 있다는 것을. 洪海里, 그는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한다.

 

  홍해리 시인을 만난 것은 그리 오래 전의 일은 아니다. 물리적인 시간으로 따지자면 매우 일천하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그를 안다, 라고 말했을 때 모두 시간과의 상관관계를 따지기 마련이다. 하긴 안다는 것은 본 것을 기억하는 일이고, 본다는 것은 그를 기억 할 필요 없이 안다는 말일 진데, 나는 그에 관해서는 개인적인 추억이 없다. 그러니까 완전히 시인으로서의 홍해리를 알 뿐. 그가 누구의 지아비인지, 누구의 스승인지, 제자인지, 그가 빨간 옷을 즐겨 입는지, 파란 양말을 싫어하는지, 여자를 넘보는지, 딱지를 맞았는지, 전혀 아는 것이 없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그는 시란 이런 것이다, 라고 그의 전 생애를 걸고 나에게 적극 대답해 주었던 사람이다. 그렇다, 그는 시가 무슨 거대 담론이나 소수 특별한 사람들의 지적 사치가 아니고, 오로지 시인 자신의 몸으로 실천하고 느끼고 듣고, 그리하여 자신에게 이르고 또 이르러야 한다는, 이시대의 진짜 시인일 뿐이다.

  - 손현숙(시인)

 

   * 그는 순식물성이다. 풀로 말하면 蘭이요, 나무로 말하면 梅花다. 술로 말하면 소주요, 밥으로 말하면 꽁보리밥이거나 순 쌀밥이지 팥이나 콩이 섞인 잡곡밥은 아니다. 그는 술을  좋아하지만 술을 욕되게 하는 법이 없고, 그는 詩를 생명처럼 사랑하지만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는 좋은 것은 좋고 싫은 것은 싫기 때문에 좋고도 싫다든가 싫지만 좋다는 어정쩡한 중간 개념에는 익숙하지 못하다. 그는  직설적으로 짧게 말하므로써 더욱 많은 말을 하는 사람이다. 두루뭉실 굴러가야 살기 편한 세상에 그는 낙락장송이듯 초연하다.

  이 다사다난, 복잡미묘한 세상에 곁눈질 한 번 하지 않고 오로지 시에만 매달려 사는 생활태도가 한편 부럽고 한편 답답해지기도 한다. 그는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추진력의 화신이기도 하다. 그의 말에는 어떤 마력이 숨어 있는지, 평소에 닦아논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반작용인지는 몰라도 그가 맡아서 하는 일에는 여러 번 예고하거나 독촉하거나, 사정하거나 억압하지 않아도 의도된 대로 일은 척척 진행될 뿐만아니라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그의 말을 따라주고 끝내는 찬사의 박수를 보내준다. 

  그는 요즘 牛耳洞이 다 된 것 같다. 우이동으로 이사한 지 근 이십여 년, 처음에 우이동 산자락에 난초집을 멋들어지게 짓고 우이동을 예찬하면서 난 백여 분을 기르며 유유자적 난과 더불어 난이 되어 살더니 요즈음 그는 우이동의 몇몇 시우들(이생진, 임보, 채희문)과 뜻이 맞아 <우이동 시인들>이란 동인회를 만들어 시낭독회를 66회, 우이동 시인들의 동인지를 벌써 14호째나 만들어 냈다. 이제는 우이동이 그를 우이동으로 만드는지 그가 우이동을 우이동으로 만드는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는 우이동의 솔바람 소리가 되고 洗耳泉의 샘물이 되더니 진달래가 온 산에 춤을 출 때면 <北漢山詩花祭>를, 가을이 와 낙엽이 구르면 <牛耳洞落葉祭>를 올리는 우이동 귀신이 다 되었다.

  <우이동 시낭독회>(매월 마지막 토요일 5시, 도봉도서관에서 개최)에 가 보면 그가 사회를 보는데 놀라운 것은 언제부터 저 친구가 저렇게 말을 잘 하느냐 하는 것이다. 사람의 재주란 숨어 있는 것인가. 도대체 모를 일이다. 술자리에서도 늘 안경을 벗어 호호 불면서 닦는다든가 상대방의 말을 받아 대꾸하기보다는 술잔에 손이 더 자주 가는 저 친구의 달변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의 서재에 꽂혀 있는 수많은 책과 독서량이 그 공급원이 아닐까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는 나보고 담배 끊고 술 먹으라 하고 나는 그에게 담배맛도 모르고 무슨 시를 쓰느냐고 빈정대지만 나는 담배 때문에 위장병이 완치되지 않는다는 의사의 진단을 이미 받고 있으니 그의 말을 듣기는 들어야 할 것 같다. 그도 옛날보다는 술 실력이 많이 줄긴 했어도 마음속으로는 이제 그만 마시라고 술자리마다 눈치를 준다.

  우리는 대학 다닐 때 같은 하숙집에서 반찬이 시원찮다고 소복한 밥그릇 위에 숟가락을 꽂아 제사를 지내고, 함께 자취를 할 때는 쌀이 떨어져 밥을 굶은 채 답십리에서 안암동까지 걸어가 인촌 묘소 잔디밭에 팔베개를 하고 나란이 누워 고향 생각에 하늘이 젖어오던 공동의 추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는 벌써 여덟 권의 시집을 냈고 또 한 권의 시집을 준비하고 있다. 말 많고 번잡스런 세사를 외면하고 오직 시업에만 매달려 살아가는 그의 은근과 끈기에 대해 박수를 보낼 뿐이다. 머지않아 그의 집 마당에 매화가 꽃을 피우면 그 향기와 더불어 우이동 산새들이 그를 알고 에워싸 춤추며 노래하리라.


<詩>

 

洪 海 里

 

 

李 茂 原

 

 

산자락 울리는

 

칼바람

 

파란 하늘만 먹어도 넉넉한

 

새벽 숨결

 

선혈이듯 번지는

 

살 속의 뼈

 

헤어지고 나서야

 

풍기는 香.

   - 이무원(시인)

 

   * 해리는 누구이며 해리는 어디에 있는가. 그 흔한 문학상 하나 받은 일 없는 무관의 제왕이 해리이다. 적절하게 타협하며 살아가야 편한 세상에 홀로 낙락장송처럼 푸른 귀를 가진 시인, 가슴에 우주를 품고 자연의 이법을 자벌레처럼 온몸으로 재면서 살아가는 시인, 유명한 시인 보다는 혼이 살아있는 시인이 되기를 원하는 시인이 해리이다. 해리는 진정한 시의 나라이다. 임보, 채희문, 이생진 시인과 함께 시와 술로 풍류를 즐기며 사는 우이도원이 해리이다. 선생의 시에 그토록 많이 나오는 찔레꽃 피는 마을이 해리이다. 선생이 시작에 몰두하느라 허리를 다쳤던 곳, 그곳에서 우이시낭송회를 20년 이상 이끌고, 자연과 생명과 시를 목숨처럼 여기는 《우리詩》의 모태가 되었던 시수헌詩壽軒이 해리이다. 매실이 열리면 매화술을 담그고, 술이 익으면 벗들을 불러 꽃잎 띄운 술잔을 돌리는 곳, 시인들의 얼굴에 은은히 난초향이 어리는 곳, 세란헌洗蘭軒이 해리이다. 난정蘭丁누옥이 있는 말씀으로 서는 마을, 온몸으로 시를 쓰고 다시 부수며 새벽 세 시면 어김없이 한 사발의 냉수와 같은 시를 쓰기 위해 선정에 드는 마을, 그곳이 해리이다. 서정시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시대에 서정시의 불을 살리려고 온몸으로 불쏘시개가 되는 서정시의 순교자, 그 사람이 해리이다.

자연으로 가는 길에 시인의 마을이 있다. 해리는 시인의 마을의 촌장이다. 나도 그 마을에 물처럼 바람처럼 가서 살고 싶다. 그러나 나에게 해리는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있는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이다.

  - 신현락(시인)

 

 

海里는 어디 있는가
와 별 더불어 배를 저어가는 사내
별과 사랑의 노래 끝이 없어라
인의 길 외로운 항해
자하게 휘날리는 수염 맑고 곱게 빛나리라.

- 나병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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