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대풍류

洪 海 里 2019. 2. 9. 10:24

대풍류

 

洪 海  

 

 

날 선 비수 같은 달빛이

눈꽃 핀 댓잎 위에 내려앉았다

달빛에 놀라 쏟아져 내리는 은싸라기

그날 밤 대나무는 숨을 놓았다

목숨 떠난 이파리는 바람에 떨고

대나무는 바람神을 맞아들여

텅 빈 가슴속에 소리집을 짓는다

그렇게 몇 번의 겨울이 가고 나면

대나무는 마디마디 시린 한을 품어

줄줄이 소리 가락을 푸르게 풀어낸다

때로는 피리니 대금이니 이름하니

제 소리를 어쩌지 못해 대나무는

막힌 구멍을 풀어줄 때마다

실실이 푸른 한을 한 가닥씩 뿜어낸다

사람들은 마침내 바람 흘러가는 소리를

귀에 담아 풍류風流라 일컫는다.

 

- 시집『비밀』(2010, 우리글)

 


 

 

 

   * 내가 내는 소리 이름을 말할 수 없었다. 집을 짓는다는 건 숨을 놓고 지난 생각까지 다 말리는 것일 텐데,

한동안 푸르던 이파리의 환상을 놓지 못했다. 마디마디 막혔다가 겨우 일어나는 소리는 거칠었다.

몇 번 계절이 돌고, 어지간히 속을 비우고 바람 들고나는 상처를 내고도 풍류로 이름 짓지 못했다.

바람이 너무 많다.


    소리집을 지은 몸이 그렇다. 내 공간에 무엇이 다녀가도록 텅 비워놓는 일.

그리운 마음까지도 쌓지 않고 철저하게 빈속이 되는 일이다. 나는 내 몸에 간절하게 입김을 불어 넣은 적 있는가.

정성들여 속을 다독거린 다음에야 바람이 화답하여 몸을 훑을 것이다. 그때 비로소 합주가 된다.

문득 이 일을 생각하니 마디마디가 다 소중하다.

 

   - 금 강.

 

 

[시 읽기]

 

  “대나무는 숨을 놓았다”는 그 당시, 생명체의 시야에는 상당히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겠습니다. “비수같은 달빛” “눈꽃 핀 댓잎” “은싸라기”라는 시어들이 그것을 암시합니다. 생명이 끊어지는 광경에서도 죽음을 하나의 단순한 사건으로 바라보며 ‘미학’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을 봅니다만, 이 시가 그것을 말하고 있네요. 이 시를 읽으면 조물주가 과연 인간이 자신들의 편익을 위해 주변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간들의 논리에 동의할 것인가, 문득 의문이 듭니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대부분은 ‘예’라고 답하겠지만, 그렇다면 만물의 영장이라 해서 만물을 함부로 재단할 권리를 가졌다고 볼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또 어떤 대답이 나올지 궁금합니다. 하기야 자연보호는 공존공영을 위함이라고 외치는 것 역시 따지고 보면 인간의 이기심으로부터 나온 사상의 다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동물보호단체의 활동은 왕성하지만 식물보호단체의 활동은 아직 잘 모르므로, 같은 생명체이지만 붙박이 생명체는 여전히 차별적 시각 속에 존재한다는 생각도 합니다.
  “피리니 대금이니” 하는 악기가 되어 인간의 귀를 즐겁게 하고 흥을 돋우는 대나무의 죽음이 억울했는지 정당했는지, 또한 죽음 이후 주검의 나날에도 얼마나 치열했는지는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월감으로 거들먹거리기도 하는 것이 대부분 인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대풍류의 고통을 알 리가 없겠지요.  --  여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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