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白露
洪 海 里
갈대 피어 연갈색 머릿결 나부끼는
경기도 이천 밤나뭇골
백주 대낮인데도
찬 이슬이 풀잎에 내리고 내려
소나무 바늘잎 사이사이로
산비둘기 청승맞게 울고 있었다
모기 떼도 삐뚤어진 입으로 앵앵거리고
고추밭도 빠알갛게 약이 올라 있었다
구만리 장천을 날고 있는
백로白鷺의 날개깃털 더욱 가볍게
은빛으로 빛나는 저녁녘이 되어
그대의 노래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땅콩밭의 땅콩과 참깨밭의 참깨
무논의 벼포기마다 익어가는 나락
그대의 사랑으로 가득히 채워져
드디어 세상은 충만하였다
알몸으로도 부끄럽지 않았다
바람 불어 빗기는 갈대의 머릿결 사이
바람결의 맨살도 통통하였다.
- '우이동시인들' 제20집『가슴속에 피는 꽃』
(1996, 작가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