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淸明詩篇

洪 海 里 2020. 4. 3. 08:01

 

 

               * 보리밭 : http://donbosco.pe.kr/xe1에서 옮김.

 

 

<淸明詩篇>

 

청명淸明 

 

洪 海 里

 

 

손가락만한 매화가지

뜰에 꽂은 지 몇 해가 지났던가

어느 날

밤늦게 돌아오니 

마당 가득

꽃눈이 내렸다

발자국 떼지 못하고

청맹과니 멍하니 서 있는데

길을 밝히는 소리

천지가 환하네.

 

- 시집 『푸른 느낌표!』(2006, 우리글)

 

 

청명淸明

 

 

洪 海 里

 

 

봄이 오자 몸이 점점 가벼워진다

속에 뭔가 있어 땅도 슬슬 솟아오르니

곤줄박이 꽃마리 오목눈이 제비꽃

누군들 가슴 설레고 두근대지 않겠느냐

삶이란 스스로 자신을 세워가는 일,

금방 꽃비 내려 주체하지 못할 텐데

달뜨는 마음 어쩌지 못하는 사랑아

무작정 봄을 타고 날아올라라

아지랑이 하늘이 맑고 푸른 날

오늘은 나른한 일탈도 죄 되지 않으리니,

 

부러워 마라

꽃은 피어서 또 다른 세상을 열고

새는 날아서 제 길을 가지 않느냐

살아 있어 꽃이고 새인 것이다.

 

- 시집『독종』(2012, 북인)

 

 

청명시편淸明詩篇

 

洪 海 里

 

 

시의 첫 행을 찾아내듯

봄은 그렇게 온다

첫 행은 신의 선물이다

봄도 첫 행도 첫 입맞춤처럼 어렵게 온다

힘들게 와서 오히려 다디달다

신이 내려주는 은총일까

밤 새워 끙끙대며 애 낳는 일일까

헛구역질을 하다 하다 몸푼 아낙처럼

꼬물꼬물 기어다니는 첫 행을 본다

봉긋하다 탱탱 불어 터지는 꽃망울

자글자글 봄빛에 우우우 입을 벌리고 있다

달싹달싹 흙을 들어올리는 새싹처럼

생각 하나가 나를 밀어올리던 기억이 파랗다

반어법에 젖어 있고 역설에 능한 일상에서

동틀 무렵 젖몸살 앓는 바람은 묻고 있다

우리가 꿈꾸는 시는 어떤 것인가?

꿈 깨는 시?, 절절한 절정?, 만만한 바닥?

퇴고하듯 집수리를 하고 있는

까치 부부의 목청이 청아한 봄날

청명시편에 매달려 목이 멘다, 나는.

 

- 시집『독종』(2012, 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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