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산책 / 마르크 샤갈

洪 海 里 2020. 5. 5. 16:49


* 마르크 샤갈, 「산책1917~18.




산책

 

洪 海 里

 

 

산책은 산 책이다

돈을 주고 산 책이 아니라

살아 있는 책이다

발이 읽고

눈으로 듣고

귀로 봐도 책하지 않는 책

책이라면 학을 떼는 사람도

산책을 하며 산 책을 펼친다

느릿느릿,

사색으로 가는 깊은 길을 따라

자연경自然經을 읽는다

한 발 한 발.



산책 · 2

 

洪 海 里


 

한발 한발 걸어가면

발로 읽는 책 가슴속에 비단길 펼치고

눈으로 듣는 책 마음속에 꽃길을 여니

줄 줄만 아는 산 책에 줄을 대고

한없이 풀어 주는 고요를 돌아보라

줄글도 좋고 귀글이면 또 어떤가

싸목싸목 내리는 안개, 그리고 는개

온몸이 촉촉이 젖어 천천히 걸어가면

산 책 속에 묻히리니,


입으로 듣고 귀로 말하라

인생은 짧고 산책은 길다.




  * 머리가 숨을 쉬는 가장 좋은 방볍은 가벼운 산책이라고 생각한다.

산책은 기분을 유쾌하게 한다.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의

「산책」에서처럼 좋아하는 사망의 손을 꼭 붙들고 거니는 것보다 더한 행복이

있을까. 그 어느 것의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는 무중력 상태의 자유로움이 그림 속에

가득하다. 이 그림을 그리던 시절 샤갈은 오래도록 동경해왔던 여인과 결혼하여

충족감에 젖어 있었고, 하늘을 붕 떠다니는 흐뭇한 꿈처럼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화가가 기쁠 때 그린 그림은 세월이 흘렀어도 그 기분 좋음이 보는

이에게까지 전해온다.

   건강과 생활습관 상의 관계뿐 아니라, 세상을 구성하고 잇는 많은 일들이

반드시 인과관계로 엮이는 것은 아니다. 만일 원인과 결과가 철저하고

정확하다면, 사람들은 정말로 숨막히게 기계처럼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세상의 인과관계란 느리고 느슨하게 이루어지기에 매력이 있는 것이다.

   - 이주은, 『그림에, 마음을 놓다』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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