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아래 선 시인
如 然
시인은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그래서 사무실에 나가면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신다
아무도 없는 날에는
누구든지 함께
먹고 마셔 줄 사람이
곁에 있어야 할 것만 같아서
술 한 잔 못하는 나는
오늘도 시인과 마주 앉아
가난한 시인의 밥을 축낸다
막걸리 반 잔 내 앞에 따라 놓고
시인이 막걸리 병을 다 비울 때까지
나는 야금야금 안주만 먹는다
침묵하는 시인의 속내가 두려워
이것저것 시답잖은 수다도 떤다
시 같지 않은 시를 들고 가서
이건 어때요 저건 어때요
괜스레 시인의 머리를 어지럽힌다
오늘만큼은 시름 모두 내리시고
피곤한 몸으로 퇴근하시어
죽음처럼 달콤한 잠 주무시고
아침에 해 뜨면 눈 뜨시라고
매화 방긋 벙글 때
허허 웃으시라고.
- 홍해리 시 「역설 - 致梅行 · 230」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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