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化된 洪海里

양 치는 시인 / 이동훈(시인)

洪 海 里 2020. 7. 15. 11:35

양 치는 시인

 

이 동 훈

 

 

서울의 시수헌詩壽軒은
시를 오래 쓰겠다는 사람들의 아지트 같은 곳인데
머물렀다 떠나는 사람 중에

홍해리 시인과 박흥순 화가는 살림을 낸 것도 아니면서
수십 년 동거하다시피 지내고 있다.
어느 해 우연찮게 그 집에 들렀다가
박흥순 화가의 그림 한 점*을 오래 보았다.
신작로 미루나무는 미루나무끼리 어깨를 잇고
양 떼는 저희들끼리 어깨맞춤하고
양치기는 양 한 마리라도 길 밖에 날까 봐
장대 잡고 뒤에서 따르는데
다들 저녁밥 짓는 마을로 걸음이 바삐 움직인다.
이웃 나라 천진에서 만났다는 양 떼 그림을 두고
이웃 동네 삼수에서 양치기로 지냈다는
백석 시인을 생각한 것은 이즈음의 일이다.
문단에 한 개의 포탄처럼 내린 백석이
정주, 서울, 도쿄, 통영, 함흥, 만주, 평양 다니며
종당엔 그 험하다는 삼수에 갇혀 양치기가 되었다는데
쓰고 싶은 글도 못 쓰고 묻혀 살았다는데
아주 불운만은 아닌 건
새끼 양을 손수 받는 일에 감격하고
뛰노는 그 양을 알아보고 제 볼을 비벼대는 마음이 있어서다.
친구 허준이 삼수갑산인들 오지 않을 리 없고
고구려 벽화 모사에 바쁜 정현웅도
거름내고 우유 짜는 백석의 초상화를 눈에 담아간다.
호박꽃 초롱 보는 날이면, 백석은 남쪽으로 내려간 제자
강소천을 생각할 거다.
나타샤로 불리는 여류들이 꿈으로 와
초롱에 든 반딧불처럼 깜박깜박하는 날도 있었을 거다.
그러고 보니
홍해리 시인의 제자인 박흥순 화가도
시인의 초상화를 여럿 그렸으니
홍해리 시인에겐 박흥순이 강소천이자 정현웅인 셈이다.
시수헌에 여류가 있는지 알 수 없으나
그곳이 어디든 불원천리하고 달려오는 허준 대신
아담한 임보 시인이 술상을 내기도 한다.
시수헌에 양치기 그림이 아직 있는지 묻지 않았으나
양 치는 마음들이
천진과 삼수와 서울을 잇고 있으려니 생각한다.

 

                                                         * 박흥순, <천진의 인상>,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