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리 시인의 아내에 대한 3편의 절창絶唱
17. 20. 21:00
최 길 호(목사)
1.
2021년 7월 10일 홍해리 시인의 시선집 [마음이 지워지다]가 출간되었다.
이번 시선집은 홍 시인의 관여없이 출판사에서 직접 계획한 것이다.
시인의 아내는 오랫동안 치매를 앓다가 지난해 11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 동안 아내에 대해 썼던 작품에서 선정한 총 119편의 시가 실려 있다.
이 시선집이 치매 가정에 구급차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작품 숫자를 119편으로 정했다고 한다.
시집의 제목이 [마음이 지워지다]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치매는 마음이 지워지는 병이다.
아내가 그 곁을 떠나간 이후 그의 마음을 지키고 있었던 정서들도
하나 둘씩 지워졌을 것이다.
2.
그동안 시인이 치매를 앓고 있던 아내를 사모하며 썼던 시집이
4권이나 된다.
이 시집은 아내를 떠나보내는 작별의 시이기도 할 것이다.
단연 자신의 마음이었던 아내에 대한 회오와 사랑 그리움을 담은 절창이다.
시를 한 편 한 편 읽어가며 가슴이 축축해졌다.
모든 남편들에게 아내가 주는 의미에 대해서 절절한 깨달음을 주는 글이다.
3.
손톱 깎기
맑고 조용한 겨울날 오후
따스한 양지쪽에 나와 손톱을 깎습니다
슬며시 다가온 아내가 손을 내밉니다
손톱을 깎아 달라는 말은 못 하고
그냥 손을 내밀고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겨우내 내 손톱만 열심히 잘라냈지
아내의 손을 들여다본 적이 없습니다
손곱도 없는데 휴지로 닦아내고 내민
가녀린 손가락마다
손톱이 제법 자랐습니다
손톱깎이의 날카로운 양날이 내는 금속성
똑, 똑! 소리와 함께 손톱이 잘려나갑니다
함께 한 지 마흔다섯 해
처음으로
아내의 손을 잡고 손톱을 잘라 줍니다
파르르 떠는 여린 손가락
씀벅씀벅
눈시울이 자꾸만 뜨거워집니다.
옷
아내는 나의 옷이었다
스물 몇 해 걸쳐 지은
무봉천의無縫天衣
나는 평생 아내를 입고 살았다
이제는,
솔기 터지고 지퍼도 고장난 옷
낡고 해지고 헐렁해진 착한 옷
내가 업고
가야 할 단벌 업고 業苦.
늙마의 집
혼자 사는 집
반절은 빈 집
아내를 병원에 두고 온 날 밤
집의 반이 빈 반집이 되었다
단잠을 자던 집
잠도 달아나 버렸다
허공중에 맴도는 삶
아내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절반이 빈 집을 두고
말없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4.
시인은 아내의 치매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라고 자책한다.
그 아내를 돌보며 처음으로 아내를 가까이 자세히 대하며 느끼는
감정들이 감정선을 건드린다.
손톱도 깎아 주어야 하는 아내, 어쩌면 아내는 남편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던가!
그러면서도 아내는 남편의 옷이고 남편의 집이다.
다른 시에서는 '안에 있는 해'라고도 한다.
집사람이 결코 아내를 낮추는 표현이 아니라 아내는 집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아내가 사라지면 안식의 장소인 집은 사라진다.
5.
이 시선집의 마지막 시에 아내를 보내는 이별의 마음이 짧고 깊게 표현돼 있다.
이 시선집이 치매 가정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불러 일으켜 사회가 함께 도움의
방법을 모색하는 촉매제가 되면 좋겠다.
흰 그림자
아내가 하얀 옷을 입고 가고 있었다.
빛나는 흰빛, 그림자도 뵈지 않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홀로 가고 있었다.
기해년 정월 그믐 경칩의 새벽이었다.
[출처] 홍해리 시인의 아내에 대한 3편의 절창(絶唱)|작성자 최길호 은혜의 창
* http://blog.naver.com/deepin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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