牛耳洞 이야기

시가 있는 솔밭공원 / 임채우(시인) / 「강북구소식」 제321호(2022.01.25.)

洪 海 里 2022. 1. 25. 16:46

시가 있는 솔밭공원

 

임 채 우(시인)

 

 

  우이경전철 종점 한 구간 전 솔밭공원역에서 내려 4·19묘지역 쪽으로 100여 미터 족히 내려가면 '우이동솔밭공원'이 있다. 100여 년 된 소나무 1천 그루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솔밭공원은 분명 도심을 부유하는 푸른 섬이다. 공원 부지는 약 1만5천 평, 올려다보면 소나무 가지 사이로 삼각산三角山이 우러러 보이는 북한산 자락에 평평하게 소나무 군락지를 골라 1997년에 공원의 형태를 갖추었고, 2008년에 새로이 단장했다. 인근 주민들이 소나무 숲에서 산책을 하고 운동도 하는 등 좋은 쉼터가 되고 있다.

 

  우이동 솔밭공원에 가면 시詩가 있다. 소나무 숲 오솔길에 열다섯의 시목詩木과 한 개의 노래비가 있다. 시목에는 작고했거나 현재 활동 중인 우리나라 대표시인들의 시가 나무판 위에 새겨져 있다. '우리詩'의 홍해리 시인께서 구청의 요청에 직접 시인과 작품을 선정하셨다고 한다. 또한 소나무를 유독 사랑했던 고 박희진 시인께서 고령의 이생진 시인님을 만나 소요하며 한담을 자주 나눈 곳도 바로 솔밭공원이었다. 박희진, 이생진, 홍해리 시인은 모두 솔밭공원을 누구보다 사랑한 우이동 사람들이다. 예로부터 북한산 자락은 시인을 비롯한 예술인들이 깃들어 살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옛날이 아니라 우리 세대에 '우이동 시인들'이라는 시인들의 모임이 있었다. 솔밭공원 인근 부르면 답할 만한 거리에 사시던 이생진, 임보, 채희문, 홍해리 네 시인께서 세상의 번잡스러움에서 벗어나 이곳에서 소요하며 1987년에 첫 동인지를 내고 낭송회를 가졌으니, 그 동인지 이름이 《우이동牛耳洞》이었다. '우이동 시인들'은 '(사)우리詩진흥회'로 이어지면서 오늘날에도 이곳을 태실로 삼아 시 정신을 면면히 이어가고 있다.

 

  한파가 몰아닥친 겨울 아침, 세상은 온통 꽁꽁 얼어붙었는데 솔밭공원의 소나무 숲은 오히려 짙푸르다. 논어에 '송백후조松柏後凋'라 했던가. "날이 차가워진 연후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나중에 시듦을 안다"라는 말이 있다. 영하의 산책길에는 거니는 사람 드물고, 배드민턴장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삼각산송림정三角山松林亭' 앞 너른 마당에는 아침 운동하는 사람들이 그림자처럼 몸을 놀리고 있다. 뭔가 마음이 번잡스러울 때, 세상살이가 너무 소람스러울 때, 잠시 솔밭공원 소나무 숲길을 거니노라면 시목에 담긴 시구 하나가 문득든든한 버팀목이 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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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동솔밭공원 · 1

 

 

洪 海 里

 

 

백년 묵은 천 그루 소나무가 방하착하고

기인 하안거에 들어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나무 속 결 따라 신들의 궁전으로 가는 길

울려나오는 금강경의 물결도 숨죽이고 흐른다

수천수만 개의 푸른 붓으로 비경秘經을 새기고 있는

노스님의 먹물은 말라붙어 버렸다

땅속 천 길 이엄이엄 흐르는 천의 냇물이여

내 마음의 다랭이논에 물꼬를 열어

바람의 땅 낮은 곳을 따라 흐르는 온전한 물소리

잠깬 물고기 한 마리 날아올라

천년 세월을 면벽하고 나서 쇠종에 매달리니

바람이 와! 화엄華嚴의 춤을 춘다

무거운 침묵으로 빚은 야생의 시편들

눈 밝은 이 있어 저 바람의 노래를 읽으리라

귀 밝은 이 있어 저 춤을 들으리라

마음 열고 있는 이 있어 물처럼 흘러가리라

저들 나무 속에 숨겨진 비경을 나 어이 독해하리

잠깐 꿈속을 헤매던

속눈썹 허연 노스님이 땅바닥에 말씀을 던져 놓자

시치미를 뚝 떼고 있던 소나무들

몸 전체가 붓이 되어 가만가만 하늘에 경을 적고 있다

잠 못 드는 비둘기 떼 파닥이며 날아오르다

소나무 주위를 푸르게 푸르게 맴돌고 있다

북한산이 가슴을 열어 다 품고 있는 것을 보고

구름장 하얗게 미소 짓고 소리없이 흐르고 있다

이윽하다

좀 좋은가.

                    -『우리詩』(2011.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