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커니 잣거니』(미간)

죽음竹音

洪 海 里 2022. 2. 21. 18:05

죽음竹音

 

洪 海 里

 

 

죽음이란 말이 왜 그리 무거운가

죽음은 대나무가 내는 소리가 아닌가

한 칸 한 칸 쌓아 올린 빈 탑마다

세상의 소리를 다 모았으니

그 얼마나 황홀한 궁전인가

날마다 펼치는 궁정음악회

우주의 소리란 소리

청아하고 애절한 소리를 다 모아

들려 주는 합창이니

죽음이란 얼마나 눈물겨운 공양이요 공연인가

백조가 마지막으로 들려 주는 울음이 아닌가

우리도 기왕에 한 말씀 남기려면

대나무 우는 소리가 어떨지

땅 속으로는커녕 대처럼 옆으로 뻗지도 못하고

무한 천공으로 치솟아 보지도 못 했으니

언제 세상 소리 다 모아

땅과 하늘을 이어 볼 수 있겠는가

대[竹]는 죽은 후에도 모든 소릴 뽑아내니

우리가 죽는다는 것도

죽은 대나무 소리를 따를 일이 아닐런가

마당가 몇 그루 오죽烏竹

한겨울에 얼어죽었다

봄이면 되살아나는 걸 보며

죽음학을 해마다 펼치게 되네.

 

- 월간 《우리詩》 2023.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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