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시집 1979~1981/《內陸文學》

5원짜리 엽서 한 장

洪 海 里 2022. 2. 28. 10:34

5원짜리 엽서 한 장

 

홍 해

 

 

나이 30의 새파란 젊음이 피만 뜨거워 힘든 줄 모르고 뛰어다닌 끝에 『內陸文學』이 탄생하게 되었다. 동인지 제1집이 충북 도내에 거주하던 문인들 19명의 호응으로 세상에 빛을 발하게 된 것은 바로 5원짜리 엽서 한 장의 힘이었다. 당시 도내 신문과 잡지에 한 편의 글이라도 써서 발표한 적이 있는 56명의 시인 작가(?)들에게 아래 내용의 엽서를 발송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자궁인 충청북도가 60여 쪽의 얄팍한 글알을 낳았다. 그 날이 바로 1972년 4월 25일이었다.

내가 주관한 제4집까지 출판을 맡아 주었던 상당출판사는 북문로 2가에 있었다. 당시는 활판 인쇄였기에 조판이 끝나면 인쇄공을 데리고 골목에 있는 대폿집에 가서 막걸리와 비곗살이 많이 붙어 있는 돼지고기를 구어 대접하던 추억이 새롭다.

한 가지 밝혀 놓아야 할 것은 ‘내륙문학’이라는 제호의 탄생에 관한 일화이다. 충주에 가서 고 양채영 시인과 동인지 제호에 대한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암산, 무심천, 탄금대, 계족산, 상당, 중원’ 등의 명칭을 놓고 갑론을박하면서 막걸리를 퍼마시다 충북이 바다가 없는 내륙이라는 사실에 생각이 이르러 ‘그렇지, 내륙!’ 하고 우리는 손벽을 쳤다. 그리하여 『內陸文學』이란 이름의 동인지가 얼굴을 드러내며 고고의 울음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간 많은 회원들이 열과 성을 모아 50년의 역사를 기록하게 된 사실을 높이 평가하며 그분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특히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모임을 이끌어 온 임원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다음의 내용은 회원 여러분들이 내륙의 초기 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하는 사실을 한번 살펴볼 수 있도록 자료를 올려 놓는다.

 

<엽서 내용>

 

안내의 말씀

 

문학의 불모지라는 말은 들어온 우리 도내 일원에 걸친 문학동인지 “내륙문학”을 발간케 된 바 우리가 빛을 낼 수 있는 길은 서로가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뜻을 같이할 때 가능하리라 믿고 귀하의 작품을 다음과 같이 청탁하나이다.

 

다 음

1.원고 종류 – 시, 수필, 콩트 택일 (200자 원고지 15매 이내).

2.기간 - ‘72년 1월 31일까지.

3.보내실 곳 – 청주시 모충동 405. 홍해리 앞

 

1972년 1월 일

 

내륙문학동인회 발기인 대표

박재륜, 정기환, 양채영, 강준형, 홍해리.

 

___________________ 귀하

 

(위의 내용이 동인지를 내기 위해 원고를 청탁한 최초의 엽서 내용이다. 발기인 대표에 강준희 작가의 이름이 왜 빠졌는지 모르겠다.)

 

 

* 창간호 편집후기

이야기는 신해년(1971) 연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주와 충주에서 각각 합동 시화전을 몇몇이서 계획했었다. 그러던 중 시화전을 여는 대신 동인지를 발간하자는 의견이 나와서 바로 구체적인 안을 세웠다.

그러나 한 장르만으로 하느냐 또는 종합적인 면모를 갖춘 동인지로 하느냐 하는 엇갈린 주장이 있었으나 종합적인 면모를 갖춘 동인지로 하기로 결정을 보고 동인을 모으게 되었다.

한 가지 유감스러운 일은 충북 전역에서 고루 모이지 못했고 또한 의당 참가해서 활동해야 할 여러 사람이 호응하지 않은 사실이다.

우리는 내륙도인 충북 도내에 동인지 하나 없다는 비참한 현실을 절감하고 등불을 밝힐 사명감에서 뭉친 것이다. 내륙도의 우렁찬 육성으로 전도적인 합창이 되도록 노력하여 이 지방의 문학풍토 조성 및 나아가서 한국 문학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도록 애써 나갈 것이다.

표지화를 그려주신 충주 이상숙 선생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출판을 맡아주신 상당출판사에 사의를 표한다.
- -.(1: 1972425일 발행).

 

 

* 2집 편집후기

금년 봄에 심은 나무를 우리는 온갖 정성과 정열을 기울여 가꿔 왔다. 2집 준비로 분주하다가 편집을 마치고 인쇄에 맡기니 허탈감이 엄습하나 마음은 다시 제3집 준비로 치달린다.

이번에는 각각 1백여 매나 되는 창작물을 4편이나 싣게 됐다. 이만한 작품이면 문단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히 역량 있는 작품이라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서둘지 않고 흥분하지 않으며 꾸준히 칼을 갈아 나갈 것이다.

수차 연락을 했어도 단 한 번의 소식도 없이 증발하듯 사라져버린 동인이 몇몇 있음은 서운하고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새로운 동인이 가담해서 보다 알차게 내륙을 키우게 된 점 무엇보다도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도 역량 있고 동인 활동에 관심을 갖고 열심히 뛸 내륙인은 언제고 동인으로 받아드릴 예정이다.

지난번 사상 유례없는 폭우로 박재륜 선생이 큰 수해를 당했으나 인명의 피해가 없었음은 불행 중 다행. 강준희 동인이 수마의 침입 시 수훈을 세웠다는 얘기.

당초에 계획했던 사진 및 '작자의 변' 등은 지면 사정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고 몇몇 동인들의 옥고를 다 싣지 못한 점 양해를 구한다.

표지화를 그려주신 충주 이상숙 선생과 목차 컷을 그려주신 청주교대 김연권 교수께 감사드리며 이번에도 쾌히 출판을 맡아주신 상당출판사에 고마움을 표한다. -  -. (2: 19721015일 발행).

 

* 제3집 속표지에 밝힌 ‘우리의 말’

4월이다. 『內陸文學』이 창간된 지 어언 한 돌이다. 우리들의 작업은 항시 새로운 출발이며 일회적이다. 창작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흥분과 집중이요, 산고이며, 태어난 생명은 그것대로 하나의 독립된 세계이며 우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학적 불모지인 내륙분지에 신풍을 불러와야 할 염원과 함께 출범했다. 분지의 누런 하늘에 남풍을, 비를, 함박같은 눈송이를 초대했고, 또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자긍과 염원과 인내를 동시에 이해한다. 삶을 사랑하고 외경하는 자들과 함께 있으므로서다. 우리는 환희와 참회와 확신을 가지고 내륙의 숲을 가꾸어 간다. 누구든지 와서 이 수풀 중의 하나가 되라. 우리는 전천후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 제3집 편집후기

지난가을에 제2집을 내고 반년 만에 3집을 내게 됐다. 이제는 굿굿하게 밀고 나갈 자신이 생겼다. 동인들의 결의 또한 대단하다. 우리는 불 밝히는 나무로 자랄 것이다.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을 재미로 알고 연4회의 산고를 각오하고 있다. 동인이란 이름만 붙이고 있는 다수보다 창조적인 소수자의 역할이 중요할 뿐이다. 우리는 모두에 대한 도전과 응전으로 작업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이번에 네 사람의 특집을 엮었다. 앞으로 몇 명씩 특집을 엮어나갈 계획이다.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하여 들어온 원고를 다 싣지 못한 점 양해를 구한다. 표지를 맡아주신 청주상고 이상중 선생과 교정을 보느라 수고해준 대성여고 어계수 양에게 감사드린다. - 海 -. (제3집 : 1973년 4월 25일).

 

 

제4집에 밝힌 ‘우리의 말’

우리로 하여 공연히 분노케 하던 어둡고 괴로운 계절도 갔다. 소시민적 근성을 버리지 못하는 주변의 숱한 무리를 위해 우리는 외친다. 우리는 한 줄의 시를 쓰는 일에, 한 편의 창작을 생산하는 일에서 무엇보다도 더 큰 희열과 생명의 향기를 느끼고자 이 불모의 광야를 밝히는 언어로, 그 불모의 대지에서도 결실을 맺는 역사를 보여줄 것이다. 우리의 길은 멀고 험하다. 그러기에 우리의 발걸음은 그만큼 굳세고 힘차다. 우리는 전신으로 걸어 나갈 것이다.

청순한 바람이 인 다음에는, 비가 내린 다음에는, 동면을 깬 다음에 구근이 어떻게 그 굳은 지표를 뚫고 솟아오르는가를 보여줄 것이다.

서리치는 칠흑의 밤하늘에 푸른빛을 발하는 별처럼 생기 있는 삶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잡초의 건강과 몇 길 물속에서 닦인 돌의 예지와 숨결과 열을 우리는 선사하며 끊임없이 신생할 것이다.

무쇠를 갈 듯이 우리는 우리의 이즘도 만들고 에꼴도 형성하며 에스프리를 가꿔 나갈 것이다.

 

* 제4집에는 편집후기는 ‘우리의 말’로 대신함.

 

<마지막 원고 청탁서>

 

_____ 선생님께,

 

그간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동인지 ‘내륙문학’을 제4집까지 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우리가 지녔던 포부와 자세를 상기하면서 더욱 열과 성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자부해도 좋을 만큼 전국적인 수준에 올라선 것만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어느 정도 우리가 질적인 면에서 향상하여 지역사회는 물론 한국문학의 발전에 기여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겠습니다. 동인 여러분께서도 더욱 분발하시고 책임과 의무감을 갖고 동인 활동에 배전의 노력과 협조가 있으시길 고대합니다.

다음과 같이 제5집을 계획하고 있사오니 차질이 없도록 준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 음

1.원고 : 시(5편 이상), 소설(100매 이내)

1.원고 제출 기일 : ‘73년 12월 18일까지

1.제출처 : 내륙문학회 편집실(전화 2476번) 한국문협 청주지부

청주시 북문로 2가 57-4

1.회비 : 10,000원

1.발간 예정일 : ‘74년 1월 20일

단, 원고 및 회비가 기일 내에 들어온 분에 한해서 편집을 하겠으며 다시 연락드리지 않겠사오니 제5집에 빠져도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1973년 11월 1일

내륙문학회 편집실.

 

 

* 이 편지가 내가 ‘내륙문학‘을 맡아 일을 하면서 회원들에게 보낸 마지막 원고 청탁 내용이다. 1974년 직장을 서울로 옮기면서 내륙과의 관계가 점점 소홀하게 되었음을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회원 여러분의 이해를 구한다.

이 자리를 빌어 『內陸文學』이 더욱더 발전하여 이 나라 문학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아울러 여기까지 이끌어 오신 회원 여러분과 임원진 여러분께 다시 한번 고마운 말씀을 올린다.

(단, 한국문인협회 청주지부에 관한 내용은 ‘내륙문학’은 충북 전역에 걸친 동인지이기에 여기에는 언급하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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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륙문학 50주년 기념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