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시집 1979~1981/《內陸文學》

내륙문학

洪 海 里 2020. 9. 20. 15:47

 

이 엽서가 오늘의 <내륙문학>을 탄생케 한 첫 번째 엽서입니다. 소중하게 생각되어 아직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습니다. 엽서 앞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당시 엽서 한 장의 가격은 5원이었습니다. 바로 이 엽서를 충북에서 거주하며 글을 쓰는 56명에게 보냈습니다. 그중에서 19명이 동참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1972년 봄, 그러니까 4월 25일, 〈내륙문학〉 창간호를 발간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엽서를 보낸 56명은 등단에 관계없이 신문이나 잡지에 한 편의 글이라도 발표한 분들을 총망라한 숫자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보잘것없는 작업으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당시로서는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창간호에 대한 몇 가지 참고사항을 말씀드리면 창간호 제자는 박재륜 시인이, 표지화는 이상숙 선생이 그려 주셨습니다. 당시는 가로쓰기를 하지 않고 세로쓰기를 했기 때문에 인쇄도 세로인쇄로 오른쪽으로부터 왼쪽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창간호는 500부를 찍었습니다.

 

창간호에 게재된 내용을 보면 창간사는 박재륜, 에 「보리밭 이야기」외 1편(박재륜), 「찾아간 마을」(정기환), 「三行淸閑」(김영삼), 「낙엽」(안병찬), 「여인」(한병호), 「善 · 그눈 3~6」(양채영), 「解氷史抄」외 1편(강준형), 「무정」(김병래), 「흑인촌에서」(강준희), 「가을 하늘 아래 종소리 울리면」외 1편(김기태), 「고독의 서곡」(김효동), 「靜 · 動」외 1편(정연덕), 「보리밭」(홍해리), 수필에 「어떤 편견」(권성호), 「욕망과 행복」(안수길), 「美語機」(최병학), 「鍮刀의 설화」(홍경식), 꽁트에 「합동결혼식」(반숙자), 창작에 「제로 · 포인트」(강덕식)가 실려 있습니다.

그외에 동인 주소록, 광고와 편집후기가 끝에 자리잡고 있는 창간호는 북문로에 있던 상당출판사에서 인쇄되어 1972년 4월 25일에 발행되었습니다.

연락처는 청주상고내 내륙문학동인회 편집실(전화 4912 홍해리)로 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창간호의 편집후기를 여기 적어 당시 상황을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창간호 편집후기

이야기는 신해년 년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주와 충주에서 각각 합동 시화전을 몇몇이서 계획했었다. 그러던 중 시화전을 여는 대신 동인지를 발간하자는 의견이 나와서 바로 구체적인 안을 세웠다.

그러나 한 장르만으로 하느냐 또는 종합적인 면모를 갖춘 동인지로 하느냐 하는 엇갈린 주장이 있었으나 종합적인 면모를 갖춘 동인지로 하기로 결정을 보고 동인을 모으게 되었다.

한 가지 유감스러운 일은 충북 전역에서 고루 모이지 못했고 또한 의당 참가해서 활동해야 할 여러 사람이 호응하지 않은 사실이다.

우리는 내륙도인 충북 도내에 동인지 하나 없다는 비참한 현실을 절감하고 등불을 밝힐 사명감에서 뭉친 것이다. 내륙도의 우렁찬 육성으로 전도적인 합창이 되도록 노력하여 이 지방의 문학풍토 조성 및 나아가서 한국 문학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도록 애써 나갈 것이다.

표지화를 그려주신 충주 이상숙 선생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출판을 맡아주신 상당출판사에 사의를 표한다. - 海 -

 

제2집의 내용은 에 「귀향길」외 2편(강준형), 「휴먼 마킷트」외 1편(김은수), 「폐허주의」(김효동), 「단양기행시초」(박재륜), 「용설란」외 2편(신인찬), 「세기속가」(안병찬), 「善 · 그눈 7~10」(양채영), 「소슬바람」외 1편(정기환), 「세월과 나 사이」외 2편(정연덕), 「가을의 노래」(최병준), 「평행선」외 1편(한상남), 「遺風」외 1편(洪江里), 「바람 한 점」외 2편(洪海里), 수필에 「초고인생 · 청서인생」(강덕식), 「여름」(강준희), 창작에 「관계」(반숙자), 「가성광인」(안수길), 「요나기」(윤강원), 「화해」(최병학)에 이어 동인 주소록과 편집후기가 실려 있습니다.

 

제2집 편집후기

금년 봄에 심은 나무를 우리는 온갖 정성과 정열을 기울여 가꿔 왔다. 제2집 준비로 분주하다가 편집을 마치고 인쇄에 맡기니 허탈감이 엄습하나 마음은 다시 제3집 준비로 치달린다.

이번에는 각각 1백여 매나 되는 창작물을 4편이나 싣게 됐다. 이만한 작품이면 문단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히 역량있는 작품이라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서둘지 않고 흥분하지 않으며 꾸준히 칼을 갈아 나갈 것이다.

수차 연락을 했어도 단 한 번의 소식도 없이 증발하듯 사라져버린 동인이 몇몇 있음은 서운하고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새로운 동인이 가담해서 보다 알차게 내륙을 키우게 된 점 무엇보다도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도 역량있고 동인 활동에 관심을 갖고 열심히 뛸 내륙인은 언제고 동인으로 받아드릴 예정이다.

지난번 사상 유례없는폭우로 박재륜 선생이 큰 수해를 당했으나 인명의 피해가 없었음은 불행 중 다행. 강준희 동인이 수마의 침입시 수훈을 세웠다는 얘기.

당초에 계획했던 사진 및 '작자의 변' 등은 지면 사정상으로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고 몇몇 동인들의 옥고를 다 싣지 못한 점 양해를 구한다.

표지화를 그려주신 충주 이상숙 선생과 목차 컷을 그려주신 청주교대 김연권 교수께 감사드리며 이번에도 쾌히 출판을 맡아주신 상당출판사에 고마움을 표한다. - 海 -

 

이렇게 동인들과 힘을 모아 작품집을 꾸준히 발간하면서 나는 큰 욕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 동인지를 계간지로 만들겠다는 야심이었습니다. 그러나 74년 직장을 서울로 옮기면서 그 꿈은 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겨우 4집까지 만들고 나서 그곳에 계신 동인들에게 모든 것을 넘기고 훌훌 청주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바라는 것은 누가 내륙문학회를 이끌고 나아가든 꾸준한 끈기와 욕심없는 열정으로 순수한 문학의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내륙문학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면서 몇 말씀을 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