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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들과 詩 / 중앙일보 2023

洪 海 里 2024. 9. 15. 15:52

김민호 기자(seejesus.tv., 2024.04.01.) 촬영.

 

 

<중앙시사매거진>

노정남│대신증권 고문 

경영할 때 시를 알았더라면


지난 6년여 동안 대신증권 대표를 맡았던 노정남 고문은 CEO 자리를 떠난 후 시와 열애에 빠졌다. 그는 1977년 한일은행에서 금융인으로서 첫발을 내딛었다. 1987년 대신증권 국제영업부로 옮긴 후 25년여 간 대신증권에 몸담으며 전문 금융 CEO 반열에 올랐다.
1998년 외환위기,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안정적으로 넘기며 성장을 이끌었다. ‘금융주치의 서비스’ ‘빌리브 서비스’ 사업은 고객과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노고문의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금융가에서 35년 넘게 뛰어온 노 고문은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은퇴 후 그는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대표직을 내던지고 바로 시와 사진, 드럼을 배우며 인생 2막을 열었다. 시간이 없을 때도 매일 아침 신문에 실린 시는 꼭 읽었다.
머릿속에 시 100수를 넣어 놓고 건배사 대신 시를 낭송하는 풍류가객이었다. 시를 읽고 낭송하는 걸 좋아했지만 써볼 생각은 못했다. 우연히 CEO들과 함께 IGM 최고위 과정의 시 수업을 들으며 시를 체계적으로 배웠다. ‘금붕어의 죽음’이란 시로 장원에 뽑히기도 했다.
“이해인 수녀, 용혜원 시인, 임보 시인, 나태주 시인이 쓴 감성적인 시들을 좋아했다. 어떻게 저 사물 안에 들어가서, 내 생각을 표현할까 고민하다보니 시에 눈뜨게 됐다. 시가 어렵게 느껴지는 건 짧은 한편의 시에 수많은 의미가 담기기 때문이다.”

동백꽃 속에는 적막이 산다/ 뚝!

홍해리 시인의 ‘동백꽃 속에는 적막이 산다’는 한 글자 시를 소개하는 그의 얼굴에 시심이 묻어났다. “시인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썼는지, 동백꽃이 떨어질 때 어떤 마음이었을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것이야말로 시의 매력 아닌가.”

노 고문은 무엇보다 CEO에게 시는 필수라고 강조했다. 일단 시 쓰기, 사진 찍기 모두 관찰력이 필요하다는 그는 애정을 가지고 관찰하다 보면 바로 그 지점에서 ‘창조’가 생겨난다고 말했다. 같은 꽃을 봐도 관심 깊게 들여다봐야 남들이 보지 못하는 꽃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시심은 동심이다. 동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시를 쓰기 어렵다. 시는 역지사지를 넘어 순수한 마음으로 상대가 돼야만 쓸 수 있다. CEO였을 때 시를 배우고 쓸 수 있었다면 훨씬 좋은 경영을 했을 것 같다. 일단 소통이 잘 될 수 있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생긴다. 만약 우리나라 지도층들이 시를 안다면 정치가 달라질 것이다.” 그는 요즘 뉴스를 장식하는 정치 이슈들을 바라보면서 국가 리더들이 ‘시심’을 회복하길 바랐다.
노 고문은 한결 여유를 찾은 모습이었다. 한 발짝 세상에서 물러나 자연인 노정남만의 즐거움을 기획하고 있었다. “친구들하고 밴드를 해보고 싶다. 60~70대가 돼서 연주도 하고 봉사도 하고 싶은데, 드럼 주자만 없었다. 그래서 퇴직하자마자 드럼 학원에 등록했다. 이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후배 CEO들 만날 때마다 시를 쓰든 음악을 하든, 취미 생활을 하라고 권한다. 자신에게도 좋고 CEO가 행복하면 회사에도 이익이다.”

<FEATURES> - 詩에서 경영을 한 수 배우다.<포브스코리아> 2013.05.24. (금).

- https://jmagazine.joins.com/art_print.php

 

詩에서 경영을 한 수 배우다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가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 장석주의 ‘대추 한 알’ 중에서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글판에 붙어 유명해진 ‘대추 한 알’은 사람들 사이를 굴러다니며 화제가 됐다. 작은 대추 한 알에서 태풍과 벼락을 보여준 시의 힘은 생각보다 세다. 한국 경제와 기업을 책임지는 CEO도 시의 매력에 푹 빠졌다. 회식 자리에서도 시낭송으로 건배사를 대신하거나, SNS에 시를 올리는 모습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시를 공부해 창작하는 CEO도 많아졌다. 잔잔하지만 뜨겁게 불어오는 시 바람이 심상치 않다.
문학경영연구원 황인원 대표는 “인문학의 목표는 사람의 마음 읽기다. 시는 인문학의 최종 목적지이자 상상력의 보고다. 그동안 접근하기 어려웠지만, 시를 알면 경영을 잘할 수밖에 없다”며 고무적으로 평가했다. 시 쓰는 CEO들은 창조력 있는 기업을 이끄는 동력이 된다.
소니가 만든 워크맨은 야외에서 음악을 간편하게 들을 수 있는 오디오는 없을까 하는 아이디어의 산물이다. 애플의 아이팟도 음원을 합법적으로 사서 듣고 싶은 청소년 유저의 마음을 읽은 스티브 잡스의 통찰력이 빛난 사례다. 이렇듯 창의적 상상력과 통찰력은 서비스나 제품 아이디어로 연결되는 중요한 승부수다.
강신장 세계경영연구원(IGM) 원장은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에서 어떻게 미래를 해쳐나갈 것인가, 그 해답은 창조성에 있다. 다른 사람이 생각지 못한 질문 하나가 기업의 운명을 바꾼다. 고객의 마음을 읽기 위해서라도 CEO는 시를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창조 경제 시대의 해법을 ‘시’에서 찾았다.
시의 상상력은 완전히 다른 것들을 연결시켜 새로움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강 원장은 초코파이의 예를 들었다. “초코파이와 정(情)은 전혀 무관한 개념이다. 그런데 브랜드 매니저가 그 둘을 연결시키면서 대박이 났다. 정을 선물하는 건데 어떻게 정 없이 한 개만 선물하겠나. 그후 마트에서 박스 단위로 팔렸다.”
관찰력·통찰력을 비롯해 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능은 나열할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시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시를 좋아하는 CEO들은 쉽고 짧은 작품부터 읽으라고 조언한다.
최근 IGM에 시와 경영을 연계한 ‘싱크 디퍼런트(Think Different)’ 최고위 과정이 개설돼 꽤 많은 CEO가 시에 입문했다. 노정남 대신증권 고문, 이윤우 삼성전자 상임고문,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 이화경 오리온 사장, 조태권 광주요 회장, 김석수 동서식품 회장, 강태환 삼탄 부회장, 가수 유열 등이 이 과정에 참여해 시를 쓴다.
쟁쟁한 CEO들이지만 시 수업에서 만큼은 동심으로 돌아간다. 같은 주제지만 각기 다른 관점과 생각이 담긴 시들이 탄생할 때면 서로 놀란다. 전문 시인이 아닌 만큼, 수업 시간에는 철저히 어떤 사물의 마음을 보는 데 창작 초점이 맞춰진다. 추운 겨울날 붕어빵을 맛있게 먹으면서 붕어빵의 마음이 돼 봤다는 강 원장의 시는 수업 분위기를 가늠케 한다.


앗~뜨거!/ 빨간 불꽃이/ 숨을 멈추게 하고/ 뜨거운 쇠가/ 온몸을 지져도/ 붕어빵 한 마리는/ 이빨 악물고 참는다/ 한 입 위로 되고/ 한 조각 희망 되고 싶어서 - 강신장의 ‘붕어빵’

시는 어려운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마음의 표현이다. 스마트폰 중독에 빠진 대한민국, CEO들은 시집을 집어 들었다. 사색이 아닌 검색이 판치는 시대에 진정한 창조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장태평│한국마사회 회장

비전을 보여주는 사람이 리더다

장태평 한국마사회 회장은 1977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재정경제부와 국가청렴위원회 등을 거치며 2008~2010년 농림수산 식품부 장관을 지낸 정통 관료다.

지난 2월 그는 『잠언시집』이라는 시집으로 한국문화예술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개혁주의자’ ‘혁신가’라는 타이틀이 늘 따라붙던 인물이라 그의 시심은 더욱 세상을 놀라게 했다. ‘강물은 바람 따라 길을 바꾸지 않는다’는 공직에 몸 담았던 장 회장의 인생관이 그대로 담겨 있다.

강물은 바람 따라 물결치지만/ 바람 때문에 갈 길을 바꾸지는 않는다.

그의 필력은 일찍이 두각을 드러냈다. 초등학교 때 쓴 글이 조선일보에 실렸고 경기고 시절에는 문예반 활동을 하며 시를 썼다. 공무원 재직 중에는 공무원 문학모임 사민문학회 초대 회장을 맡았다. 글로 소통하는 걸 즐기는 장 회장은 블로그와 페이스북도 열심이다. 자작시와 사진을 올리는 그는 SNS에선 ‘태평짱’으로 불린다.

그는 국가 경영과 시가 그리 멀지 않다고 했다. “‘옛 선비들은 나라만큼 시를 사랑하였다. 국민만큼 시를 가까이하였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 시심은 통찰력을 길러주고, 확고한 비전과 열정을 갖게 만든다. 그래서 CEO가 시심을 가지면 조직이 창조적이고 아름다워진다.”

장태평 회장은 시를 통해 얻은 ‘통찰력’이 리더에게 도움을 준다고 믿었다. “시를 쓴다는 건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통찰력과 상상력을 가지게 한다.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바로 그 두 가지다. 국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의 꿈을 형상화해 비전을 보여 줘야 한다. 시가 이미지로 꿈을 보여주듯 말이다.”

그가 취임하면서 한국마사회도 대대적 변화를 겪었다. 특히 연봉제 도입으로 마사회 구성원들도 몸살을 앓았다. 장 회장은 “사람은 이익이 있어야 움직인다. 연봉제로 일부 손해 보는 사람이 생길 수 있겠지만, 90%는 이익을 본다. 그걸 여러 차례 설득해 시행하니 신뢰가 쌓였다”고 말했다.

성공적 연봉제 도입을 시작으로, 한국마사회의 큰 그림을 그렸다. 경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줄이고자 사회공헌활동에 힘썼다. 승마를 통해 정서장애를 치료하는 ‘승마 힐링 센터’와 사회적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 ‘꿈을 잡고(Job go)’ ‘태평짱과 함께 하는 말 많은 수다’ 같은 프로젝트는 시인 장태평이기에 가능했다.

장 회장은 경마공원의 테마파크화를 구상 중이다. “요즘 벤치마킹하러 여러 곳을 돌아다닐 때 담당 직원을 꼭 데리고 간다. 직원들 마음에 ‘아름다운 공원’을 심어 놓으면 지금 당장 이뤄지지 않아도, 내가 없어도 언젠가는 꽃을 피운다.”

그는 레저는 더 이상 여가 즐기기가 아닌 삶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라이프 인더스트리’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공공부문에서 산업을 이끌어 간다는 한국마사회의 비전도 세웠다. 경제통답게 사업 다각화도 계획 중이다.

“우리나라를 살릴 산업을 꼽으라고 한다면 바이오와 레저다. 싱가포르도 도시 기능이 침체되면서 경마의 최대 라이벌인 카지노를 개방했다. 경마를 밑바탕으로 회의·컨벤션 등을 유치하는 마이스(MICE) 산업을 일으켜 수익을 다각화해야 한다. 이제 한국마사회는 레저 산업의 KT가 될 것이다.”

 

김연신│성동조선해양 사장

시처럼 사람 마음 읽어라

봄을 맞은 조선소의 태양 아래 길이 280 , 63빌딩을 눕혀놓은 길이의 대형 선박이 모습을 드러냈다. 4월 1일 성동조선해양의 새 수장이 된 김연신 사장. 취임식 날 경남 통영 본사에서 만난 그는 어려운 숙제를 받아든 것처럼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이곳은 8000여 명이 일하는 거대한 일터다. 이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내 경험과 통찰을 발휘해야 하는 자리구나 싶다. 그것이 사장의 역할 아닌가.”

김 사장은 조선업계 거물로 이름을 날렸다. 고려대 재학시절의 데모 전력으로 취업이 안 될 때,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그를 발탁했다. ‘다시는 데모 안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1978년 당시 대우중공업에 입사해 20여 년을 대우맨으로 열정을 다했다. 한국선박금융 사장으로 일할 땐 1조5000억원 규모의 선박펀드를 운용하던 큰손이었다. 조선업계는 성동조선해양를 이끌 김 사장에게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눈길을 끄는 건 그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시집을 펴낸 시인이라는 점이다. 42세에 시인으로 등단해 『시를 쓰기 위하여』 『시인의 바깥에서』 『시인, 시인들』 3권의 시집을 냈다. 등단은 늦었지만 일찍이 문재를 드러낸 인물이다. 경기고 시절 백일장 장원을 휩쓸며 뭇 문학청년들의 질투를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영업을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시인의 꿈은 접어야 했다.
바쁜 시간을 보내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과거 대우빌딩 엘리베이터에서 책 읽는 사람은 김 사장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는 30대에는 읽기만 하고, 40대에는 글을 쓰고, 50대에는 운동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품었다. “시인의 꿈은 항상 있었다. 30세부터 10년 동안은 꿈에서만 시를 썼다. ‘꿈속의 시인’이라는 시처럼 매일 밤 꿈에서 시를 쓰곤 했다. 왜 그랬는지 모른다.”
김연신 사장은 단 한 번도 진급에서 누락된 적이 없다. 고속 승진으로 이미 39세에 부장을 달았다. “회식하고 집에 가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느새 직원들에게 내가 이룬 무용담만 얘기하고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40세에 작심하고 쓴지 2년여 만에 시인이 됐다. 어쩐지 시인과 베테랑 세일즈맨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회사도 사람이 모인 곳이기에 사람을 아는 게 중요하다. 결국 인문학과 시는 사람을 이해하는 열쇠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거꾸로 그는 “돈버는 방법이 궁금하지 않냐”고 물었다.
“그 사람이 뭘 원하는지 알아내면 돈을 벌 수 있다. 그걸 이타적 자본주의라고 하는데, 목마른 사람한테 물을 줘야지 빵을 줘봐야 소용없다. 내가 주방 가구 회사에서 일했는데 그 업계는 돈을 많이 번다. 우리 어머니 세대는 부뚜막에서 불편하게 일했는데 부엌 가구가 생겨나면서 허리 펴고 일한다. 이게 바로 사업가의 상상력이다. 필요한 걸 제공하고, 불편한 걸 개선하는 것만으로 변화는 일어난다. 시인이 시를 쓸 때와 비슷한 마음이 돼야 가능한 일이다.”
김 사장이 영업 부사장으로 일하던 지난 3월, 성동조선해양은 친환경 벌크선 10척 수주를 따냈다. 요즘 기업들이 연료를 덜 쓰는 배를 원한다는 걸 꿰뚫었기 때문이다. 시인이 가진 따뜻한 관찰의 눈이 빚어낸 성과다.
최근 뜸해진 시집 소식을 묻자 김 사장은 새로운 시에 대한 구상을 이어나갔다. “ ‘강가의 풀숲에 우리가 누워’라는 시가 있는데, 그 장면에는 입밖으로 표현되지 않은 수많은 말들이 지나간다. 이젠 그런 시를 1차적으로 쓰는 게 아니라 영상이나 음악을 넣어 종합 예술로 만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