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공부

[스크랩] 한국어의 고저장단

洪 海 里 2005. 10. 19. 04:33
한국어의 고저장단

1. 들어가는 말

장단음이란 말을 처음 들은 것은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국어시간입니다. 국어 선생님은 시어머니란 별명을 들을 정도로 학생들의 언행에 잔소리가 많았고 특히 말의 소리를 길게 해야 뜻이 통할 뿐 아니라 말의 맛과 품위가 생긴다고 늘 강조하시곤 했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했고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장단음을 마스터해 보겠다는 학구열이,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두께인 2천 페이지 전후되는 문세영선생이 펴낸 진홍색 표지의 우리말 큰사전을 분에 넘치게 사게 했습니다.
어린 학생으로서는 과소비를 한 셈이죠. 그리고 열심히,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새로운 낱말을 찾으면서 장음부호를 익혔습니다. 국어 선생님은 한학에 조예가 깊었던 분으로, 고향이 경기도 분이었기 때문에 발음이 훌륭하셨습니다. 판서(板書) 또한 명필이셨는데 그 덕택에 나의 국어 노트는 다른 과목의 노트와는 달리 명필 흉내를 내어 깨끗했습니다. 시어머니 선생님의 서당에서 법첩(法帖)을 익힌 칠판의 글씨와 장단음을 지키면서 하시는 말씀은 닮은 꼴로 느껴졌습니다.
말하자면 시각으로 들어오는 글씨와 청각으로 느끼는 음성언어의 이미지는 ‘교양 있는 사람’, ‘잘 생긴 사람’, ‘고상한 사람’, ‘품위 있는 사람’으로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두 번째 장단음과의 인연은 1954년경 KBS의 인기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스무고개’의 사회자 장기범 아나운서였습니다. 저는 한 주도 빼놓지 않고 그 프로그램을 애청했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의 애청자가 됐던 것은 재치박사들의 위트와 유머 때문이기도 했지만 오히려 진행하는 아나운서의 말솜씨에 더 반해 있었습니다.
그 무렵 사회자에 대한 매스컴과 팬들의 반응은 ‘말씨가 점잖다’, ‘구수하다’, ‘부드럽다’ 등이었는데 저는 이런 수식어로서는 장기범 아나운서의 아나운싱에 흡족한 표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 느낌은 ‘편안한 음악’, ‘고상한 음악’을 듣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말이 말로 들린 것이 아니라 음악으로 들린 것’ 입니다. 저 뿐만 아니라 그 때 스무고개의 팬들은 사회자에게 반해 있었습니다.
언제나 인기 있는 아나운서는 되기 쉬우나 ‘반하게 하는 아나운서’는 되기 어려운 법입니다. 국어학의 지식이라고는 장단음 밖에 모르던 고등학생을 매혹시킨 그 무엇을 알고 싶었습니다. 정답은 의외로 쉽게 발견됐습니다. 그것은 마침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의 전부였던 장단음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회자의 아나운싱과 선천적으로 타고난 부드럽고 아카데믹한 음색에 있었습니다.
그 뒤에 제가 대학에서 국어학을 전공한 후에 추가로 알게 된 점은 두 가지로 모음의 명료성과 recital이었습니다. 장단음을 지킨다는 것은 말의 뜻을 구별짓게 하는 소위 변별력의 기능 외에 강약의 리듬을 타게 되어 음악적인 언어가 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 방:송 공사에서 ‘한국’과 ‘방송’은 장음이고 ‘공사’는 무거운 음절이기 때문에 ‘한’과 ‘방’과 ‘공’에 각각 악센트가 생겨 ‘강약 강약 강약’의 리드미컬한 말이 되는 것입니다.
여담으로 장기범 아나운서의 방송에 얼마나 반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일화(逸話)가 있습니다. 국산 영화였는데 도둑들이 숨어 있던 도피처에서 제니스 라디오의 다이얼을 돌리다가 범행 뉴스가 나오는 장면. “범인 체포는 시간 문제라고 낙관적인 견해를 표명했습니다”란 간단한 보도문장을 장기범 아나운서가 녹음을 한 장면이었습니다. 저는 이 짤막한 한 줄의 방송을 듣기 위해 당시 청계천 4가에 있던 천일극장(당시 2류 극장)을 다시 갔던 것입니다.

한국어의 모음과 recital에 관해 언급하겠습니다. 한국어의 발음이 어려운 점은 자음쪽보다는 모음에 있습니다. 물론 영남권에서 경음을 평음으로 한다든지 ‘ㅈ’을 북한에서는 혀끝소리를 낸다든지 하는 문제도 있지만 모음에 비해서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한국어에는 단모음과 이중모음 합해서 20개라고 하는데’ 란 애매한 표현을 쓴 것은 18개의 모음에서 ‘ㅚ’와 ‘ㅟ’를 단음과 장음 이중으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일본어에는 5개의 모음밖에 없다는 것을 감안해 보면 한국어 모음의 난해성을 쉽게 납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음의 어려움은 ㅟ, ㅘ, ㅞ, ㅙ 등의 이중모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ㅔ와 ㅐ, ㅚ뿐 아니라 ㅓ와 ㅗ에도 있습니다.
recital에 관하여, 미국의 Henneke란 학자가 쓴 책에 ‘Straight recital of news by an Announcer'란 표현이 있는데 참으로 의미 있는 말입니다. 아마 이 학자는 방송국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처럼 뉴스같은 딱딱한 방송언어까지도 미적 언어이어야 한다는 점을 일찍이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초창기 일본 방송은 미국 방송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모방이 체질화돼 있는 일본인들이 이 recital이란 철학이 담긴 말이 좋아 자기네의 방송 용어로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송신소(送信所)와 대칭되는 말로 방송국을 일명 연주소(演奏所)로 부르게 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일본의 NHK는 뉴스뿐 아니라 쇼프로그램, 중계방송 등 어느 분야의 방송을 듣건 ‘방송말’이 음악처럼 들리는 가히 연주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금의 KBS의 방송말의 수준은 국어학자나 방송전문가의 답이 없더라고 쉽게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아나운싱의 수준은 3단계로 나뉘어집니다. 초보는 책을 읽듯이 하는 reading 단계, 그 다음은 언어의 법칙을 지키면서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는 speaking의 단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마치 기악 연주자가 악기로 작품을 연주하듯, 하느님이 내려주셨다는 성대란 악기로 말을 유려하게 연주하는 recital의 단계가 있습니다. 물론 장단음을 구사해야만 이 3단계가 가능하겠지요.
완벽한 아나운싱을 實演하기 위하여 음성언어에서 어떠한 음운법칙을 체득해야 하는가? 그것은 대체로 동화작용(자음ㆍ모음), 모음조화, 구개음화, 연음법칙, 절음법칙, 표준억양, 경어법, 외래어 발음법, 한자 익히기 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동안 저는 장단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방송언어에 관한 수많은 강연 중 방금 위에 든 여러 음성언어 법칙을 모두 합한 것보다 장단음 한가지가 더 중요하다는 극단적인 표현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사실 대학교의 국어 국문학과에서는 국어학개론, 음운론 중에서 예사롭게 다루어지고 있는 이 장단음이 왜 아나운서 세계에서는 아나운서의 석기 시대라 할 수 있는 40년대 중반 무렵부터 오늘 현재까지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떠받들고 있는 것일까요?
참고 삼아 국어학에서는 소리의 길이 또는 장단음이라고 하는데 아나운서 세계에서는 자고저(字高低)나 장단음이란 표현을 이중으로 쓰겠습니다.

통상적으로 아나운서 세계에서는 자고저(字高低)를 지키는 정도에 따라 방송의 점수를 매겨 왔습니다. 필자가 정년 퇴직한 96년도까지 선배 아나운서는 후배의 방송을 듣고 모니터 하는 일이 습관화되어 있었습니다. 감청 장소는 방송국 뿐 아니라 지방의 출장지 또는 집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모니터의 내용은 국어학의 모든 음성언어 전반이었으나 역시 주로 다루어지는 것은 장단음이었습니다. 자고저(字高低)는 아나운싱의 나침반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고저(字高低)의 수난(?) 시기는 심심치 않게 60년대 초부터 간간이 일어났습니다. 그 사건(?)의 내용은 장단음을 지키면 말이 딱딱하고 부자연스럽다는 것이 요지였습니다.
그러나 그 속사정은, 방송은 아나운서만이 해야한다는 원칙에 반발하는 방송인들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저의 기억으로는 최초의 외부 방송인 출현은 60년대 중반 전후 어린이 프로그램의 코미디언들이었습니다. 자고저(字高低) 훈련이 전혀 되지 않았던 외부 인사를 출연시키기 위해서는 자고저(字高低)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자고저(字高低)는 방송에 나오고 싶은 외부인에게는 걸림돌이 되었고 아나운서들에게는 그들을 저지하는 방패가 된 셈이기도 합니다. 저는 지금도 다음과 같은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전문 지식을 요하는 프로에는 다소 언어의 훈련이 안되었더라고 전문 지식을 살리기 위하여 외부인사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모든 분야에 자격증과 면허증이 필수적이듯 훈련받지 않은 퍼스낼리티이니 전문 MC이니 하는 미명으로 치장된 외부인의 방송 출연은 저의 방송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저는 이들을 방송의 천재라 부르고 싶습니다. 저의 경우 수 십 년 방송 생활을 하고도 지금도 쩔쩔매는 방송을,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쉽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방송은 한마디로 완성미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장단음을 지킬 줄 모른다는 말입니다. 아나운서들의 국어 사랑은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KBS는 역사는 있으나 전통이 없습니다. KBS의 조직체에서 역사에 걸맞는 전통이 있는 곳은 아나운서실 뿐이라고 자부합니다. 그것은 국어가 매개가 되어 마치 장인(匠人)들의 도제제도(徒弟制度 : 내림공부)처럼 수 십 년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선배와 후배들을 가르치고 배우는 사이가 되어 형님 같은 선배와 아우 같은 후배의 정이 싹터왔던 것입니다.

2. 장단음의 역사적 배경
15C 훈민정음 창제 이후 문헌에는 각 글자의 왼쪽에 반드시 무점(無點), 일점(一點), 이점(二點)을 찍었는데 이것을 사성점(四聲點) 또는 방점(傍點)이라 불렀습니다. 훈민정음에서 사용된 방점은 국어의 성조체계(聲調體系)를 중국의 음악체계(音樂體系)에 의존하여 설정한 것입니다. 중국어는 본래 성조(聲調) 언어였으므로 국어에서도 이를 중시하였으나 이 사성체계가 국어에는 적합하지 않음을 발견하고 사실상 입성(入聲)이란 성조(聲調)가 있을 수 없음을 지적하여 입성(入聲)에 대하여 특수한 방점(傍點)을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15C에는 성조(聲調)를 가려서 발음했고 훈민정음에서는 방점으로 표시하고 평성(平聲), 상성(上聲), 거성(去聲)으로 부르다가 17C에 소멸되었습니다(김사영씨 동아대백과사전).
그런데 훈민정음해례에는 이 방점의 본질에 대하여 안이화 화이거(安而和 和而擧)와 같은 막연한 설명만 있을 뿐 아무런 구체적 설명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훈민정음언해에는 좌가일점즉거성 이즉상성 무즉평성 입성가점동이촉급(左加一點則去聲 二則上聲 無則平聲 入聲加點同而促急)이라 했습니다. 즉 점 하나 찍힌 거성(去聲)은 높아가는 소리요 점 없는 평성(平聲)은 낮은 소리라 했으나 입성(入聲)은 높낮이에 관한 설명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고저장단음(高低長短音)이 훈민정음 당시에 갑자기 나타났다고 보기는 어렵고 다만 이 시기에 활자화되었을 뿐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때 정착된 방점은 현대로 이어져 오면서 원래 성조음가(聲調音價) 대로 계승된 것과 반대로 상성이 거성으로 거성이 상성으로 바뀐 음도 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한 것은 표음문자의 음운은 가변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요즈음에도 중국어는 까다로운 사성체계(四聲體系)의 발음 때문에 배우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하물며 당시의 백성들은 오죽했겠습니까? 얼마나 당시의 언중(言衆)들이 성조(聲調)를 안 지켰으면 동국정운(東國正韻)이란 책이 나왔겠습니까? 아마 못 지켰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또한 15C의 방점과 관계없이 성조를 단순하게 모방한 조선식의 장단음이 생겼을 것이란 가정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쓰고 있는 장단음의 어휘들은
1) 15C 당시의 방점성조(傍點聲調)가 그대로 계승된 장단음
2) 15C 방점성조(傍點聲調)의 변이형(變異形)의 어휘
3) 15C 방점을 모방한 새로 탄생한 어휘들의 총화(總和)가 현재 쓰고 있는 장단음의 낱말이라 보아도 무리가 아닐 것입니다.
방송에 임하는 남녀 아나운서들은 볼펜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띄어읽기와 장단음을 체크하기 위해서입니다. 필자의 경우 신인 아나운서로 시작하여 정년 퇴직할 때까지 단 하루도 장단음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장단음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새삼 돌아보게 합니다. 어느 아나운서는 자고저가 잘되는 약을 약국에서 팔면 좋겠다는 농울 하던 일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장단음의 필요성은 4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의미의 변별력(辨別力: 區別)
2) 표준 억양(미적 언어)
3) 품위있는 언어
4) 발음의 편리성
위의 4가지의 필요성 가운데 대체로 국어학자들은 1)번을 인정하는 셈으로 1989년 3월 발표된 표준발음법에도 소리 길이의 중요성만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음성 언어를 연구한 언어학자들은 1)번과 2)번까지를 장단음의 역할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필자는 다년간 언어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3)번과 4)번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것입니다.

A. 의미의 변별력(辨別力)
장단음이란 용어 외에도 자고저, 동형이의어(同形異義語) 또는 쌍둥이 말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사:람이란 2음절어에서 ‘사’에 악센트가 있기 때문에 강약의 리듬이 생기면서 사:람과 같은 고저의 모양을 띠게 되기 때문입니다. 밤:(栗)/ 밤(夜), 거:리(距離)/ 거리(街)에서처럼 형태소는 같지만 장단에 따라 뜻이 달라지기 때문에 동형이의어 또는 쌍둥이 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을 이루는 낱말이 유만근 교수(성균관대)에 의하면 무려 7185쌍으로 약 15000단어가 된다고 합니다.이 한가지 예만으로도 장단음의 중요성은 증명될 수 있겠습니다. 이 가운데 빈도수가 높고 방송에서 자주 쓰이는 어휘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장음은 눈:(雪)으로 장고모음은 명:(命)과 같이 표시합니다.
가장(家長)/ 가:장(假裝, 假葬)
가(去)/ 가:(邊)
가네(去)/ 가:네(耕, 磨)
가재(家財)/ 가:재(石蟹 )
가정(家庭)/ 가:정(假定)
개성(開城)/ 개:성(個性)
개발(開發)/ 개:발(犬足)
가마(가마솥, 도자기 가마, (정수리에 있는) 가마, 가마니)/ 가:마(四人轎, 輦)
가시(찔리는)/ 가:시(可視)
거리(街)/ 거:리(距離)
고문(拷問)/ 고:문(古文)
고성(固城, 高聲)/ 고:성(古城)
고전(苦戰)/ 고:전(古典)
고도(苦戰)/ 고:도(古都)
과장(課長)/ 과:장(誇張)
간(鹽)/ 간:(肝)
간부(幹部)/ 간:부(奸婦, 姦婦)
감사(監査, 監事)/ 감:사(感謝)
감정(鑑定)/ 감:정(感情)
걸려(걸리어)/ 걸:려(걸:기 위해)
경계(境界)/ 경:계(警戒)
경기(京畿)/ 경:기(競技)
경로(經路)/ 경:로(敬老)
경비(經費)/ 경:비(警備)
경주(傾注)/ 경:주(慶州)
고목(枯木)/ 고:목(古木)
구두(신발, 句讀)/ 구:두(口頭)
광주(光州)/ 광:주(廣州)
고해(苦海)/ 고:해(告解)
과거(科擧)/ 과:거(過去)
금주(今週)/ 금:주(禁酒)
기생(寄生)/ 기:생(妓生)
구(丘)/ 구:(具)
군정(軍政)/ 군:정(郡政)
굴(石花)/ 굴:(窟)
경상(經常, 經床)/ 경:상(慶尙)
내(나의)/ 내:(川)
네 집(너의 집)/ 네:집(四家)
눌리다(눋게 하다)/ 눌:리다(눌러지다)
노비(奴婢)/ 노:비(路費)
눈(眼)/ 눈:(雪)
대(竹)/ 대:(代)
돌집(아기의 생일집)/ 돌:집(石造建物)
대목(설-)/ 대:목(大木)
대비(댓가지로 만든 비)/ 대:비(對比, 大妃)
대사(臺詞)/ 대:사(大事, 大使)
말다(밥을 물에-, 종이를-)/ 말:다(그만두다)
말(馬)/ 말:(言語)
면(綿)/ 면:(面, 麵)
면직(綿織)/ 면:직(免職)
모자(帽子)/ 모:자(母子)
무력(無力)/ 무:력(武力)
부자(父子)/ 부:자(富者)
부정(不正, 不淨)/ 부:정(否定)
병(甁)/ 병:(病)
비단(非但)/ 비:단(緋緞)
부채(扇)/ 부:채(負債)
변(邊)/ 변:(卞)
사과(과일)/ 사:과(謝過)
상품(商品)/ 상:품(上品)
새소리(새로운 소리)/ 새:소리(새의 소리)
새집(新屋)/ 새:집(鳥巢)
시계(時計)/ 시:계(視界)
서리(霜)/ 서:리(署理)
섬(大斗열말)/ 섬:(島)
성인(成人)/ 성:인(聖人)
실패(失敗)/ 실:패(絲卷)
사막(沙漠)/ 사:막(四幕)
선수(先手)/ 선:수(選手)
선발(先發)/ 선:발(選拔)
솔(松)/ 솔:(刷毛)
안(內)/ 안:(案)
양가(良家)/ 양:가(兩家)
여권(女權, 旅券)/ 여:권(與圈)
열대(熱帶)/ 열:대(十臺)/ 열:때(開時)
오기(來)/ 오:기(五期, 傲氣)
영동(嶺東)/ 영:동(永東, 永同)
영리(營利)/ 영:리(怜悧)
유(兪, 劉)/ 유:(柳)
오산(烏山)/ 오:산(誤算)
일(一)/ 일:(事)
원시(原始)/ 원:시(遠視)
원인(原因)/ 원:인(遠因)
자기(自己)/ 자:기(磁器)
재수(財數)/ 재:수(再修)
전기(前期, 轉記)/ 전:기(電氣)
전세(傳貰)/ 전:세(戰勢)
전통(傳統)/ 전:통(箭筒)
전주(全州)/ 전:주(電柱, 傳注)
전매(轉賣)/ 전:매(轉賣)
조(曺)/ 조:(趙)
정(丁)/ 정:(鄭)
정당(政黨)/ 정:당(正堂)
정상(頂上)/ 정:상(正常)
정액(精液)/ 정:액(定額)
종(種)/ 종:(奴)
장사(상인)/ 장:사(壯士, 葬事)
장수(長壽)/ 장:수(將帥)
준다(授與)/ 준:다(減少)
줄(線)/ 줄:(연장)
천도(天道)/ 천:도(遷都)
천명(天命, 千名)/ 천:명(闡明)
처형(妻兄)/ 처:형(處刑)
천직(天職)/ 천:직(賤職)
총(銃)/ 총:(總)
최고(催告)/ 최:고(最高, 最古)
키(器, 身長)/ 키:(key)
타력(他力)/ 타:력(打力)
타살(他殺)/ 타:살(打殺)
타도(他道)/ 타:도(打倒)
타성(他姓)/ 타:성(惰性)
파장(波長)/ 파:장(罷場)
편지(展開 한지)/ 편:지(片紙)
포기(풀 한-)/ 포:기(抛棄, 暴棄)
풀(草, 접착제)/ 풀:(pool)
하등(何等)/ 하:등(下等)
한(一)/ 한:(恨, 限, 漢, 韓)
한데(그런데, 한곳)/ 한:데(露天)
한식(寒食)/ 한:식(韓式, 韓食)
한자(一字, 一尺)/ 한:자(漢子)
항구(恒久)/ 항:구(港口)
하품(-이 나오다)/ 하:품(下品)
한방(一房)/ 한:방(韓方)
향(香)/ 향:(向)
현(絃, 弦, 玄)/ 현:(現)
호적(胡笛)/ 호:적(戶籍)
화기(和氣)/ 화:기(火氣)
화랑(花郞)/ 화:랑(畵廊)
화장(化粧)/ 화:장(火葬)
환상(環狀)/ 환:상(幻想)
회(灰)/ 회:(膾, 會)
회의(懷疑)/ 회:의(會議)
장단음 길이의 비율은 영어가 1.8 : 1인데 비하여 우리말은 2.88 : 1로 길이에서 보더라도 영어권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장단음의 성격
A. 단어의 첫 음절에서만 긴소리가 나며 둘째 음절에서는 장음이 소멸됩니다
예) 한:국, 정:확, 駐:韓, 公正
단 합성어와 일부 파생어의 경우에 긴소리는 인정합니다. 이 때의 긴소리를 반장음(半長音)으로 한 것은 말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반장음이 학계의 정설은 아니고 故 南廣祐선생과 필자의 주장입니다. 반장음 표시는 [ㆍ]로 합니다.
한:국 방ㆍ송 공사. 첫눈ㆍ(雪)이 내린다.
대:성ㆍ황(大盛況)을 이루다.
필자의 이와 같은 주장의 배경은 이러합니다. 1950년대 말경 당시의 서울 중앙방송 국장 이운용 선생은 독문학자이면서 한학에도 조예가 깊어 장단음을 철저하게 지키셨습니다. 한번은 시상식장에서 全國 大:學 放:送劇 競: 演 大:會란 상장 낭독에서 장단음의 길이의 비율을 한결같이 양 3:1 정도 지나치게 길게 하여 폭소가 터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KBS 아나운서실에서는 장단음의 길이의 비율에 관하여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B. ㅓ, ㅕ, ㅝ가 길게 소리날 때는 조음점(調音点)이 높기 때문에 장음과 구별하기 위해 [ㅡ]부호를 장음 위에 덧붙입니다
예) 영:동[永東永同] 원:시[遠視]

C. 訓(뜻)에 따라 길이가 달라집니다
長: ‘길다, 오래다’ 일 때는 단음 - 長音, 長久, 長壽, 長篇, 長期
‘어른, 맏, 자라다’ 일 때는 장음 - 長:久, 長:男, 長:女, 長:者, 長:老, 長:成, 長:官
强: ‘세다’ 일 때는 단음 - 强力, 强度, 强調, 强弱, 强壯劑, 强權
‘억지’ 일 때는 장음 - 强:制, 强:盜, 强:占期, 强:行, 强:奸, 强:奪
從: ‘따르다’ 일 때는 단음 - 從量制, 從事, 從軍, 從屬, 從來, 從當
‘同宗’ 일 때는 長音 - 從:祖父, 從:足, 從:弟, 從:姪
滿: ‘가득하다’ 일 때는 장음 - 滿:期, 滿:契, 滿:員, 滿:點, 滿:發, 滿:潮, 滿:面
그 밖의 경우 단음 - 滿洲, 滿洲語, 滿足(행복의 동의어가 되었으며 滿의 實辭의 구실이 소멸되었음)

D. 영어에 불규칙동사가 있듯이 뜻과 관계없이 장단음으로 굳어진 낱말들이 있습니다
大: 大邱 大田의 지명과 대구(魚名)만 단음이고 그 밖의 어휘는 장음
大:學, 大:門, 大:家, 大:使, 大:端, 大:路, 大:將
正: 1월일 때만 유일하게 단음 - 正月, 正初, 正二月
그 밖의 경우는 장음 - 正:確, 正:統, 正:道, 正:式, 正:直, 正:午
手: 手帖, 手段, 手工, 手匣은 단음
手:苦 手:巾은 장음
將: 將軍, 將來, 將次는 단음
將:帥, 將:兵, 將:校, 將:棋, 將:星은 장음

덧붙여 필자가 ꡑ98년 3월에 낸 악센트가 찍힌 한국어 발음사전 집필 중 특이한 작업 내용이 방송인들에게 도움이 될까하여 극히 일부만 소개하겠습니다. ‘同’의 성조는 평성으로 단음입니다. 그런데 둘째 음절에 형식 형태소(形式形態素)가 오면 연음(連音)이 되고 실질 형태소(實質形態素)가 오면 절음 현상이 일어나 첫음절에서 장음이 됩니다.
‘同和’에서 ‘和’는 허사(虛辭)이기 때문에 同은 단음으로, ‘同化’에서 ‘化’는 실사(實辭)이기 때문에 장음이 되는 것입니다.
ㆍ둘째 음절에 형식형태소가 오면서 단음이 될 때,
同窓 ,同僚, 同胞, 同甲, 同和, 同氣間
ㆍ둘째 음절에 실질형태소가 오면서 장음이 될 때,
同:化, 同:期, 同:行, 同:席, 同:格, 同:參
ㆍ언중(言衆)들이 현명할 때가 있습니다. ‘일:가 친척’에서는 길게, ‘一家를 이루다’에서는 짧게, 또 鄕愁(향:수)는 길게 香水(향수)는 변별력을 주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짧게 하는 경향을 그대로 반영했습니다.

4. 맺는 말
아직도 많은 국어 학자들은 우리말에서 표기와 발음이 일치하지 않는 어휘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음운 현상을 모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상아탑 학문 일변도의 국어 발음 경시의 경향이 있습니다. 정확한 자료에 의한 것은 아닙니다마는 영어와 불어는 표기와 발음이 일치하지 않는 어휘가 약 90% 이상 일치합니다. 한글 맞춤법 및 표준어 규정 제1장 총칙 제1항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나는 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합니다’에 의하여 소리나는 대로 적힌 표음주의의 말은 표기와 발음이 일치하겠지만 어법에 맞도록 적은 형태주의의 표준어는 당연히 표기와 발음이 일치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한국어의 발음은 형태주의로 사정된 표기와 발음이 일치되지 않는 어휘가 30%에서 40%정도 될 것이란 가설을 어느 언어학자와 사적인 대화에서 확신을 갖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제1항의 원칙 외에도 여기에서 크게 작용하는 것이 또한 장단음입니다. 방송언어는 음악입니다. 악기를 다루기 위하여 바이엘, 체르니 같은 입문교본을 익혀야 하듯 방송말을 표준발음과 음악적으로 연주(演奏)하기 위해서는 여러 음운법칙을 체득해야 하겠으나 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장단음입니다. 악보의 시창력(視唱力)이 없는 성악가가 있을 수 없듯이 장단음에 무지(無知)한 방송인도 있을 수 없습니다.
결혼식에 축의금 대신 자신이 쓴 서예 작품을 내놓는 교장 친구가 있습니다. 서력(書歷)이 30 여 년이나 된다고 하는데 저의 안목으로는 대서소 수준의 글씨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서법의 기본인 ‘永’ 字八法과 운필(運筆)과 집필(執筆)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데생을 거치지 않은 화가는 ‘이발소류’의 그림 밖에 나오지 않는 법입니다. 피카소는 만년에도 시간만 나면 소묘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 서단(書壇)에 파격을 불러들인 秋史 선생도 준거(準據)에는 철두철미하여 친구 윤정현이 예서체(隸書体)로 써 달라는 아호 침계(梣溪)에서 침자 예서체가 법첩(法帖)에 보이지 않아 10년도 훨씬 넘은 후 수당서(隨唐書)에서 발견하고 나서야 써 주었다는 일화에서 볼 수 있듯 모든 위대한 예술은 기본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방송언어도 수파리(守破離)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선 철저하게 지킨 연후에는 다소 파격을 해도 좋습니다. 멋과 떨어질 때 멋들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현대는 자격증의 시대라고 합니다. 운전을 하려고 해도 면허증이 필요합니다. 비아나운서 출신의 공개 시험이나 검증도 거치지 않은 채 게다가 교육도 전혀 받지 않은 소위 유명 전문 MC들. 저는 이들을 방송의 천재라고 부르고 싶다고 했습니다. 또한 이들은 일반 서민 근로자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한 부(富)를 누리는 특권층 방송인들입니다. 바이올린이란 악기는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 바이올린도 되고 깡깡이(바이올린의 속칭)도 됩니다. 그레샴의 법칙이 판치는 한국의 방송풍토에서 옥석의 구별 능력을 상실한 한국의 시청자들은 깡깡이의 음악을 바이올린 연주로 착각해 듣고 있습니다
 
출처 : 시읽어주는여자의꿈이야기 |글쓴이 : 시읽어주는여자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