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청별淸別』(1989)

<시> 섬에 가면 - 보길도 시편 13

洪 海 里 2005. 11. 13. 07:23

섬에 가면

- 보길도 시편 13

 

섬에 가면
섬처럼 아름다운 비밀을 품고
섬이 되어 사는 사람이 있다
너무 아름다워 남에게 말할 수 없고
말해서는 안 되는 비밀
밤마다 꿈은 그 비밀을 안고
하늘까지 솟구치고
그때마다
진주를 기르는 조개처럼
바람의 말 파도의 말로 꽃피우는
섬이 있다
아침이면 바다가 섬보다 먼저 잠깨어
안개를 피워 섬을 감싸고
한평생 반딧불처럼 품고 살아갈
고운 비밀을 닦아 주느니
그리움은 반짝반짝 빛나는 문법
영혼의 빈 들판을 홀로 헤매이다
살 속에 뼛속에 비밀의 집을 세운다
가끔 바다가 해일을 몰고 와서
그 집을 덮치기도 하고
갈매기 떼로 몰려와 우짖어대는
섬에 가면
섬처럼 아름다운 비밀을 품고
섬이 되어 사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