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은자의 북』1992

<시> 등잔 불빛 아래 잠 속에서

洪 海 里 2005. 11. 22. 06:54


등잔 불빛 아래 잠 속에서


洪 海 里

 

시대는 어둠
세상만사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천지의 칠흑 무한 자궁 속
홀로 잠들어 꿈으로 들면
천년 어둠이 흘러왔다
흘러가는 모습이 보였다
귀를 열면
문득문득 들려오는
짜르르 심지를 타고 오르는 기름소리
하나의 끈으로 우주를 밝히면서
빈 곳 없이 속속들이 채우려 해도
어차피 그댈 만나면
그림자로 길게 누워야 하는 숙명
바람 부는 날
숨을 헐떡이며
벼랑에 끝끝으로 서서
홀로 소리치다 소리치다
눈물로 전신을 사뤄 밝히는
호젓한 적막
등 시린 현실이여
그것은 한 점 슬픈 역사일 뿐인가
우수의 입술로 피우는
아름다운 불꽃 아래
그래도 조국은 아름다웠다
잠 가고 꿈만 남아 꿈도 깨이고
빈 방 홀로 밝는 동짓달
쓸쓸한 지창
흔들리는 불빛으로 눈을 씻었다
등잔불만 혼자서 사위고 있었다.

 

- 시집 『은자의 북』

(1992)


'시집『은자의 북』199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아카시  (0) 2005.11.22
<시> 별빛 미학  (0) 2005.11.22
<시> 늦은 봄  (0) 2005.11.22
<시> 고풍조  (0) 2005.11.22
<시> 늦은 봄날  (0) 2005.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