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투명한 슬픔』1996

<시> 무선호출기

洪 海 里 2005. 12. 4. 18:38
무선호출기
洪 海 里
 

사람들 모여 사는 사랑마을에
한울님 홀로 계신 환한 마을에
삐삐, 삐이삐이, 삐삐삐-----
시도 때도 없이 신호를 보내면
슬픔은 슬픔에게 천둥으로 뛰어가고
고통은 고통에게 진눈깨비로 내려 쌓이고
밤은 밤에게 먹장구름으로 울고 있다
마음은 마음에게 삐이 삐이거리다 말고
배꼽은 배꼽에게만 신호를 보내고 있다
절망이 절망에게 무릎을 꿇듯
장미꽃은 장미꽃에게 무릎을 꿇듯
죽음 또 다른 죽음에게만 가 닿는지
어둠이 어둠에게 번쩍번쩍 칼을 날리고
하얀 눈이 시새워 내린 밤에도
그 아름답고 황홀하던 小雪날에도
내 가슴의 삐삐는 울리지 않았다
찌르르 찌르르르 가슴에 오는 전율
더운 사랑의 꽃소식은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사람들에게만 삐삐거리고
한울님은 혼자서 낑낑거리고
거리의 가로등이 꺼져버린 밤
하늘에 반짝이는 적십자
높이 솟아 반짝이는 빨간 십자가
홀로
삐이삐이 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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