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투명한 슬픔』1996

<시> 한강

洪 海 里 2005. 12. 4. 18:37
한강
 

강은 새벽마다
황금죽비를 들고
하늘을 친다
미처
잠 못 깬 별들이 혼비백산
떨어져 내리고
산천초목이 기절초풍해도
우리들은 그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면, 다시,
강물은 물방울 씨앗이 되기 위하여
바다로 바다로 흘러간다
햇빛과 교합하여 몸을 이루고
구름이 되어 몸을 숨기면서
거대한 천둥과 번개를 품고
불을 꿈꾸고 있다
본디 물은 불의 씨앗이었으니
우리들의 생각의 끝은 씨앗,
씨앗으로 길을 멈추어 보나
씨앗은 극히 작을 수밖에 없다
우주를 품기 위해서는
이 강이 한 때
불타는 역사의 장이었던 시절
고운 눈썹만 씻던 강물은
비명치는 법도 배우고
노도가 되어 달려가는 것을 익혔으나
이제는
푸른 허공에 비추어 보는 과거
깨어진 거울이 하늘에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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