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애란愛蘭』1998

<시> 난이여 사랑이여

洪 海 里 2005. 12. 10. 04:18
난蘭이여 사랑이여
- 애란愛蘭
홍해리(洪海里)
 

  부시게 마음이 가벼운 봄날 먼지 알갱이 하나에 천년
굴을 파다 문득 하늘에 날아가는 한 마리 새를 보네
한평생을 사는 것이 모래 한 알밖에 아니 먼지 알갱이
에 더하겠느냐 땀 한 방울도 못 되는 목숨으로 살아가
면서 악머구리로 세상이 시끄럽게 울어쌓아도 제자리
에서 제때에 푸르게 몸 떠는 목련꽃의 무심한 하양을
보아라 사랑이여 세상에 서럽지 않은 애달프지 않은
아프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겠느냐 쓰라린 상처 하나
없는 사람 세상에 어찌 홀로 설 수 있겠느냐 보드라운
봄밤이 꿈결같이 펼쳐지고 눈안으로 빨려드는 저 먼
산자락의 달빛 별빛 그리고 가늘게 흐르는 바람의 희
미한 그림자 사이로 너무 멀리 가버린 가슴속의 풀꽃
향기 입술에서 다시 살아날 때 버선발로 달려나올 진
달래 꽃잎 같은 사랑을 보아라 두견새 한 마리 날아와
온 산천을 흔들 때면 목숨 가진 것들마다 퍼렇게 멍이
들어 온몸으로 발광하는데 소리없는 소멸 속에서도 찬
란히 피어나는 느릅나무 속잎이나 원추리 새순 같은
것이나 또는 찬란한 추락이 아닌 부리 노란 새새끼의
첫 비상도 저 부신 햇빛 속에 빛나고 있음을 ㅡ 그러
면 알리라 사랑도 상처로 씻고 눈물로 씻어서 드디어
빛나는 별이 되는 법을 겨울 개울 물소리를 들어보면
눈 내린 어둡고 깊고 춥던 바람소리 설해목 우지지던
새들 노루들 꽁꽁 얼어붙던 밤 다 지나고 이제야 목이
터져서 봄날 아지랑이 아른아른 오르내리고 비 오고
물안개 버들개지 틔우니 꽃구름이 꽃비 뿌려 그것을
뒤집어쓴 우리도 꽃이 되어 하늘로 하늘하늘 날아오르
는 것을 그리운 마음의 날개를 타고 한나절의 세상살
이 따뜻하게 다지고 다지는 것을 ㅡ 난이여 그대를 가
만히 들여다보면 쓸쓸한 슬픔이 아침 햇살처럼 이파리
마다 젖어오나니 늘 푸르거라 난이여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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