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민 기자의 酒변잡기]
와인 감별 ‘고수와 하수 사이’
얼마 전 동창모임에서 뜻하지 않게 와인 맛을 구별하는 테스트를 하게 됐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신 후
지역과 빈티지를 읊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순순히 내기를 받아들인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날 한 친구가 들고 온 와인은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키안티 클라시코, 프랑스 보르도의 무통 카데, 칠레의 몬테스 알파 카베르네 소비뇽
등 3가지. 다들 개성이 뚜렷해 전혀 모르는 사람도 주의 깊게 맛을 보면 다 구별해낼 수 있는 와인들이다.
몇 번을 반복해도 정확하게 다 맞혔다. 내기가 끝난 후 다들 다시 한번 맛을 보고는 그제야 누구나 할 수 있다느니, 내기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다느니 하고 떠들어댔지만 이미 끝난 후였다.
와인에 대한 지식은 이처럼 상대적이라 일행보다 조금만 더 알아도 전문가 행세를 할 수 있다. 다만 몇 가지 지켜야할 원칙은 있다.
제일 먼저 “와인은 마시는 사람마다 기준이 틀려서 정해진 규칙은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마시는 게 최선이다”라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사소한 실수는 이 논리로 대충 얼버무릴 수 있다.
누군가 와인을 추천하면 “조금 무겁지 않을까요”라고 되물어준다. 사실 “조금 가볍지 않을까요”라고 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무겁다’와
‘가볍다’는 상대적이고 애매한 표현인 데다 ‘조금’ 그렇다는 데 누가 시비를 걸랴. ‘드라이하다’나 ‘스위트하다’ 같은 형용사보다 훨씬
안전하다.
말은 아끼되 액션은 최대한 화려하게 한다. 테이블 위에 잔을 놓고 틈틈이 돌려준다. 원래 이 행위는 가라앉은 향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지만
일행을 압도하는 데도 효과가 있다. 후루룩 소리를 내며 입안에서 와인을 돌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로 한두 번만 연습하면 누구나 능숙하게 할 수
있다.
와인에 대한 느낌을 표현할 때는 ‘향기’라는 직접적인 말 대신 ‘아로마’나 ‘부케’, ‘부엽토’나 ‘카시스’처럼 남들이 잘 모르거나 못
맡아 봤을 향과 관련된 단어를 몇 개 준비해 적절히 사용한다.
마지막으로, 취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자칫 한 자리에서 처음에 했던 말과 다른 말을 하기라도 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하지만 가장 흥미진진한
것은 자신의 진짜 실력을 숨긴 채 하수의 이런 노력을 느긋하게 감상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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