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동아일보

<책갈피> 제2의 성

洪 海 里 2005. 12. 30. 07:19
04/01/08

[책갈피 속의 오늘]

 

제2의 性…1908년 시몬 드 보부아르 출생

“여자? 아주 단순한 거지. 여자는 자궁이며 난소야. 요컨대 암컷이지. …남자들이 암컷이라고 내뱉을 때 그 말은 경멸하는 것처럼 들린다. 남자들은 자신을 수컷이라고 하면 더욱 득의만만해지는데 말이다. 왜 그럴까? 여자를 자연(自然) 속에 놓아주지 않고 그녀의 섹스 속에 감금시키기 때문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性)’. 그것은 가히 혁명이었다. 이 방대한 에세이는 ‘페미니즘의 경전’으로 떠오르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알베르 카뮈는 “프랑스 남성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며 분노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작가 프랑수아 모리아크는 ‘포르노’라고 혹평했다. 논란이 됐던 외설 표현. ‘남자라고 하는, 신에 가까운 동물이 어찌하여 점액으로 더러워진 채 육체의 맨 아랫부분에 수치스럽게 자리 잡은 여자의 치부에 이끌릴 수 있느냐….’

보부아르는 소르본대에서 철학교수 자격시험을 준비하던 중 ‘나보다 완전한 닮은꼴’ 장 폴 사르트르를 만난다. 두 사람은 나란히 수석과 차석으로 시험에 합격한 뒤 계약결혼에 들어가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보부아르에게 남성은 ‘타자(他者), 그것은 지옥’이었다. 그러나 예외적인 시기도 있었다.

그녀는 1947년 미국여행에서 작가 넬슨 앨그렌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이때 그녀는 더 이상 전사(戰士)가 아니었고 이제 막 사랑에 눈뜬 여인의 본능에 흐느낄 뿐이었다. 그녀는 “나는 당신의 포로”라고 애원하며 그를 ‘악어’로, 자신을 ‘개구리’로 표현한다.

보부아르는 사후에 “작가의 명성을 위해 타인의 삶을 난도질한 양성애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영국의 여성작가 비앙카 람블린은 “나는 17세 때 보부아르와 사랑에 빠졌으나 그녀는 싫증이 나자 나를 사르트르에게 넘겨버렸다”고 폭로했다. 보부아르는 그녀 외에도 많은 제자들을 사르트르에게 바치며 질투심으로 괴로워했다고 한다.

말과 글을 사람과 일치시키고자 하는 것은 숭배자들의 부질없는 노력일 터이나, 보부아르도 결국은 ‘길들여진 제2의 성’을 살았던 것인가.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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