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동아일보

<책갈피> 에밀 소각령

洪 海 里 2005. 12. 30. 07:49
04/06/08

[책갈피 속의 오늘]

 

1762년 루소의 ‘에밀’ 소각령

인류는 이 책에서 어린이를 처음 발견했다.

장 자크 루소의 ‘에밀’.

‘20년에 걸쳐 명상하고 3년에 걸쳐 쓴’ 책은 근대 교육학의 기원이 되었다. 근대의 여명(黎明)을 밝힌 계몽주의 사상가의 인간론과 종교론을 들춰보는 ‘백과전서’로 읽힌다.

‘에밀’은 핍박을 자초했다.

그는 성서의 권위를, 신의 존재를, 영혼의 불멸성을 사그리 부정했다. 1762년 간행되자마자 책은 소각됐고 저자에게는 추방령이 떨어진다.

“최고의 스승은 자연이다!”

‘에밀’의 화두는 프랑스대혁명의 불씨를 잉태하고 있었다.

인간이 어떻게 자유를 잃어버렸는가?(‘인간불평등기원론’) 인간이 어떻게 자유를 되찾아야 하는가?(‘사회계약론’) 그는 자연과 문명의 대비 속에서 그 해답을 모색했다.

루소의 문명관과 자연관은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의 만개(滿開)였고 동시에 ‘낙화(落花)’를 예감했다. 내용과 표현에서 19세기 낭만주의를 손짓하고 있었으니 ‘세기말’의 동요는 필연적이었다.

그의 삶과 저작에서 패러독스는 생래적이다. 시대와 불화를 낳았고 동료와 충돌을 빚었다.

1758년 그는 백과전서파와 결별한다.

과학의 진보를 믿었던 볼테르는 루소를 수긍할 수 없었다. 문명이 인간을 부패하게 했다니? 루소가 “사유재산제는 치명적”이라고 공격하자 그는 “거지철학”이라고 맞받았다.

루소는 말년에 데이비드 흄과도 등을 돌렸다. 세상의 비난에 지친 그는 흄이 속으로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고 의심했다. 시대의 박해 속에서 그의 정신은 서서히 분열됐다.

그의 삶에서 까닭 모를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10대 후반에 만난 남작부인을 시작으로 숱한 여성 편력을 거쳤던 루소. 그는 결국 ‘어떻게든 시계 보는 법을 가르치고자 했으나 포기하고 말았던’ 하숙집 딸과 결혼한다.

그리고 5명의 자녀를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보육원에 보냈다. 다름 아닌 그 ‘에밀’의 저자가!

스위스 시계공의 아들로 태어나 인류의 지성사에 불멸의 화인(火印)을 새긴 루소.

그는 ‘참회록’에 자신의 생을 이렇게 요약한다.

“나의 탄생은 수많은 내 불행 가운데 최초의 것이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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