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속의 오늘]
1978년 작가 조세희 ‘난쏘공’ 출간
직업 채권매매, 칼 갈기, 펌프 설치, 고층건물 유리 닦기, 수도수리공.
본적 경기도 낙원군 행복면 행복리.
장래 희망이 ‘달나라 천문대지기’였던 난쟁이 김불이씨. 그는 끝내 벽돌공장 굴뚝에서 뛰어내려 숨진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970년대, 그 눈부신 고도성장기의 음지(陰地)에서 쏘아올린 조세희의 연작소설은 ‘난쏘공’으로 불리며 시대의 보통명사가 되었다.
난쟁이는 산업사회의 그늘에서 성장이 멈춰버린 공장노동자였고,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은 도시빈민이었다.
철거민들은 울부짖는다. “아파트에 들어가야 할 사람은 저희예요!” 하지만 낙원으로 들어갈 열쇠는 ‘그들에게’ 주어진다. “법은 그들 곁에
있다!”
소설은 슬프고도 아름답다.
선과 악, 강자와 약자, 지배와 피지배의 이분법적 세계가 극명하게 갈린다.
난쟁이 가족이 사는 판자촌과 ‘다른 세계’는 개천을 사이에 두고 있다. 거기에선 매일같이 고기 굽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건너온다. “엄마,
큰오빠가 또 고기 냄새 맡으러 갔나 봐!”
그러나 짧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에 얹힌 ‘모더니즘의 실험’은 이 어둡고 살벌한 이야기에 환상의 옷을 입힌다. 비극적 현실과 낭만적 꿈은
연작의 한 제목 ‘뫼비우스의 띠’처럼 경계를 지을 수 없게 되었다.
1978년 출간된 ‘난쏘공’은 최대의 스테디셀러다. 150쇄를 넘겼다. 지금도 ‘난장이…’가 팔리는 건 우리가 자라지 못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웃자라고 만 건가.
“역사에는 생략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전두환을, 노태우를, ‘광주(光州)’를 건너뛰었다. 20세기를 끙끙 앓았는데 그걸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그래서 쓰기 시작한 게 장편 ‘하얀 저고리’다.
“전라도 담양에서 한 노파가 대숲이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묻더군요. 산 사람이 싸우지 않으니 죽은 자들이 죽창을 만들어 놓고
새벽이면 사라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제 나라에서 ‘망명(亡命)’해 버린 언어를 불러내느라 십수년째 탈고를 미루고 있다.
하나 부지런히 피고 지는 게 또 세월이다. 분명 한 시대는 갔다.
그러나 작가는 아직 이야기를 끝내지 못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키 117cm, 몸무게 32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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