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
1899년 어니스트 헤밍웨이 출생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는 ‘행동의 작가’였다.
그의 생(生)은 모험으로 가득했고, ‘삶과 승부를 겨루는 폭력(暴力)’은 그의 작품에 정착했다.
그는 평생 전쟁에 몰두했다.
이탈리아, 터키, 스페인, 중국, 프랑스…. 전쟁이 있는 곳에 그가 있었다. 전쟁의 허무(‘무기여 잘 있거라’)와 동지애(‘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전쟁문학의 걸작을 낳았다.
1차 세계대전 때 박격포탄의 파편이 200여 군데에 박히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 파편의 상당수는 죽는 날까지 그의 몸속에 남았다.
2차 세계대전엔 조직적으로 관여했다. 쿠바에서 ‘크룩 팩토리(crook factory)’라는 사설 첩보망을 운영했다.
대서양에서 거대한 녹새치를 낚았고(‘노인과 바다’), 아프리카에서 수렵여행 중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여명의 진실’).
그는 특히나 투우(鬪牛)에 매료됐다. 일주일에 다섯 번 투우와 맞섰고, 쇠뿔에 매달려 있다 내동댕이쳐지는 바람에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
스물일곱이 되던 해 발표된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로 문단에서 그의 위치는 확고해졌다. 소설은 그 때문에 유명해졌으나 그 자신 경멸했던
표현인 ‘잃어버린 세대’의 기록이다.
1950년대 초반 그의 명성이 소진되어 갈 무렵 ‘노인과 바다’는 그에게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그는 1960년 들어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린다. 전기쇼크 치료를 받아야 했다. 마침내 62세 생일을 며칠 앞두고 아끼던 엽총으로
자살하고 말았으니.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그 자신, 그리고 동생에 이르는 ‘자살의 대물림’이었다.
“무엇보다도 우선 견뎌내야 한다”고 했던 헤밍웨이. 그러나 그는 가혹하게 자신을 끝냈다. 그의 생과 죽음도 20세기의 한
징후(徵候)였던가.
죽기 전 그는 아프리카의 대자연과 하나가 되고자 했다. 거기서 생명을 숨쉬었다. ‘동틀 무렵 진실이었던 것이 한낮에는 거짓이 되는’
아프리카의 내면(內面)에 스미고자 했다.
그는 한 마리 ‘킬리만자로의 표범’이었다.
“킬리만자로의 정상에는 얼어 죽은 한 마리 표범의 시체가 있다. 표범이 이처럼 높은 곳에 무엇을 찾으러 올라왔는지는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는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누가 그만큼 자신의 예술을 ‘살아냈던가’.
'책갈피 속의 오늘·동아일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갈피> 헤르만 헤세 (0) | 2005.12.30 |
---|---|
<책갈피> 생텍쥐페리 (0) | 2005.12.30 |
<책갈피> 코난 도일 (0) | 2005.12.30 |
<책갈피> 개벽 창간 (0) | 2005.12.30 |
<책갈피. 침묵의 봄 (0) | 2005.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