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는 소월이 있었거니, 남에 박목월(朴木月)이가 날 만하다. 소월의 툭툭 불거지는 삭주 구성조(朔州龜城調)는 지금 읽어도 좋더니 목월이 못지않아 아기자기 섬세한 맛이 민요풍에서 시에 발하기까지 목월의 고심이 더 크다… 요적(謠的) 수사를 충분히 정리하고 나면 목월의 시가 바로 한국시다.”
1940년 정지용(鄭芝溶)이 문예지 ‘문장(文章)’에 목월을 추천하면서 한 말이다.
목월의 시를 읽다 보면 민요가락의 향토색 짙은 서정, 소시민의 생활 속 소박함과 담담함, 토속적 시어에서 묻어나는 영혼과 내면의 세계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1916년 1월 6일에 태어난 목월은 조지훈(趙芝薰) 박두진(朴斗鎭)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46년 세 사람이 공동으로 낸 시집 ‘청록집(靑鹿集)’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의 시 세계는 자연을 소재로 해서 인간의 본성과 가치를 추구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목월의 시는 그중에서도 전통적인 민요조의 가락과 애잔한 비애가 두드러진다.
시집 ‘경상도 가랑잎’(1968년)에 실린 시 ‘이별가’를 보자. 생사를 초월한 그리움과 이별의 안타까움이 낯익은 경상도 사투리에 실려 절절히 피어오른다.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뭐락카노 뭐락카노/썩어서 동아 밧줄은 삭아 내리는데/하직을 말자, 하직을 말자/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그의 장남인 박동규(朴東奎) 서울대 국문학과 명예교수에 따르면 목월은 대구 계성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교정 나무에 ‘시인’이란 글을 칼로 새기고 ‘나는 커서 시인이 될 것이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꿈과 맹세를 잊지 않기 위해 목월은 일반 산문은 만년필로 썼지만 시는 꼭 연필을 깎아 노트에 먼저 쓰고 다시 원고지에 정갈하게 옮겨 썼다는 게 박 명예교수의 회고다.
한양대 교수와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낸 목월은 1978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평생 초심을 잃지 않고 우리말을 아름답게 갈고 다듬었다.
‘강나루 건너서/밀밭 길을/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로 시작하는 ‘나그네’를 읊으며 우리는 아직도 그를 기억한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