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동아일보

<책갈피> 소동파

洪 海 里 2005. 12. 30. 09:41
05/12/19

[책갈피 속의 오늘]

 

1036년 소동파 탄생

정통 중식당에 가면 ‘둥포러우(東坡肉)’란 메뉴가 있다.

우리말로 동파육이라 하는 것으로 홍소(紅燒) 요리의 으뜸이다. 홍소란 고기를 기름에 볶고 간장에 오래 익혀 검붉은 색이 나도록 한 것.

동파육은 돼지고기를 껍질째 두껍게 잘라 기름에 튀긴다. 이것과 술 간장 소금 설탕 고추 대파 생강 등을 넣어 만든 조림장을 센 불에서 국물이 거의 없어질 때까지 조려 낸 다음 다시 약한 불로 푹 고아 낸다. 이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 쪽파로 예쁘게 묶어서 내는 요리다.

껍질은 쫄깃하고 살은 사르르 녹아내린다. 돼지 냄새는 온데간데없고 윤기가 자르르하다. 부드러운 삼겹살이 목구멍으로 미끄러지듯 넘어가면 입 안에 쪽파의 향기가 남는다.

동파육은 중국 북송시대의 문호인 소동파(蘇東坡·1036∼1101)가 개발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2월 19일은 그가 태어난 날.

동파는 문인으로서 최고의 경지에 올랐지만 ‘음식’으로도 일가를 이뤘다. 음식을 손수 만들기 좋아하고 미식가로서 이를 소재로 한 시를 많이 남겼다.

관료로서 순탄한 삶을 살지 못했던 동파가 44세에 후베이(湖北) 성의 벽촌 황저우(黃州)에 유배됐을 때는 가장 암울한 시기였다.

하지만 동파는 황저우가 돼지고기 맛 하나만큼은 최고라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기에 이른다. 얼마 안 가 황저우의 돼지고기는 중국 전역에 소문이 났고 지역경제는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가 이곳 사람들에게서 얼마나 존경을 받았는지는 동파육을 비롯해 동파완자(丸子), 동파금각(金脚), 동파사자두(獅子頭), 동파수구(繡球) 등 각종 돼지고기 요리에 동파란 이름이 많이 붙은 데서 짐작할 수 있다.

동파의 이름은 식(軾)으로 아버지 소순(蘇洵), 아우 소철(蘇轍)과 더불어 ‘삼소(三蘇)’라 불린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에 세 부자가 함께 이름을 올릴 정도로 문장에 뛰어난 집안 출신이다.

1069년 진사에 급제하고 당시 과거시험의 위원장이었던 구양수(歐陽修)에게 인정을 받아 문단에 등장했다. 그러나 왕안석(王安石)이 주동이 된 신법이 채택되자 이를 반대해 계속 지방으로만 떠돌았다.

동파 자신에겐 안된 얘기지만 어찌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가 관료로서 출세가도를 달렸다면 불후의 명작인 적벽부(赤壁賦)를 비롯해 주옥같은 시문서화와 동파육이 후세에 전해졌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장환수 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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