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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고발

洪 海 里 2006. 5. 3. 06:12

[책갈피 속의 오늘]

 

1808년 프린시페 피오 언덕의 처형

[동아일보 2006-05-03 04:45]   

1808년 스페인의 프린시페 피오 언덕에서 벌어진 처형. 낯선 이름의 이 비극은 스페인 화가인 고야의 그림 ‘1808년 5월 3일’이 없었더라면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고야의 그림은 무장한 군대가 맨주먹인 사람들을 학살하는 비인간적 폭력을 고발하는 이미지의 원형처럼 존재하고 있다. 이 그림은 이후 마네의 ‘막시밀리안의 처형’과 피카소의 ‘한국전쟁의 학살’에도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1808년 스페인을 점령해 페르난도 7세를 추방하고 자신의 형제인 조제프 보나파르트를 스페인의 국왕으로 선포하자, 마드리드에서는 시위가 들불처럼 번졌다. 나폴레옹의 군대는 시위를 무력 진압하고 체포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했다. 당시 목숨을 잃은 사람은 400여 명. 이 중 44명이 5월 3일 새벽 프린시페 피오 언덕에서 학살당했다.

고야의 그림은 사건이 일어난 지 6년이 지난 1814년에 제작된 것. 고야는 프랑스 점령 기간에도 계속 궁정화가로 일했던 탓에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페르난도 7세가 복귀한 뒤 처형당할 뻔했지만 이 그림 덕택에 목숨을 건졌다는 말도 전해지고 있다.

당시 고야는 시위 현장의 폭력을 묘사한 ‘1808년 5월 2일’과 ‘1808년 5월 3일’을 연작으로 그렸다. 그중 시위가 진압된 뒤 처형 현장을 그린 후자가 더 유명하다.

고야가 당시 처형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는 소문이 있지만 46세에 이미 귀가 멀었고 그림을 그릴 당시 68세의 노인이었던 고야가 그랬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미술사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고야는 당시 상황을 전하는 사람들의 입술 모양을 보고 상상력을 덧붙여 상황을 묘사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1808년 5월 3일’에는 대담한 묘사와 함께 몽환적 분위기가 물씬하다. 총구 앞에 내동댕이쳐진 사람들은 동영상으로 변환하면 당장이라도 비명과 탄식과 절규를 쏟아낼 것만 같다. 반면 수도원의 종탑을 배경으로 어스름한 등불이 현장을 비추는 언덕의 분위기는 꿈속 같아 더욱 처연하다.

고야의 그림으로 인해 프린시페 피오 언덕의 처형은 역사를 뛰어넘어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을 학살하는 폭력을 고발하는 상징성을 갖게 됐다. 우리 역사에서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