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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그 후 / 고미석

洪 海 里 2006. 4. 19. 07:42

[광화문에서/고미석]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그 후…

[동아일보 2006-04-19 05:05]    

대략 이맘때였을 것이다. 대학 캠퍼스마다 왠지 수상한 기운이 떠돌았던 것도, 새 학기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라앉고 4월에 들어서면서 주변 공기에서 심상찮은 긴장감이 느껴졌던 것도.

4·19혁명을 기리는 행사로부터 막이 올라 5월이면 학교에서 거리에서 본격적인 시위들이 이어졌다. 인생의 봄을 맞은 청춘남녀들은 흐드러진 봄꽃 향기보다 최루탄의 매캐한 냄새에 더 익숙해졌다. 그 찬란한 ‘봄의 설법’(이동순 시인)을 뒤로 한 채, 인체를 교란하는 그 낯선 화학물질을 온몸으로 흡입하며 면역체계를 세워 나가던 시간들. ‘4월은 잔인한 달’이란 시어를 또 다른 의미에서 체득한 젊음들이었다. 그들은 1970년대와 1980년대를 통과하며 민주화 세력의 핵심과 ‘넥타이 부대’로 성장해 갔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포용하는 것이 민주사회라고 생각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함께 싸웠다. 모두가 기꺼이 미워했던 그 지긋지긋한 공동의 적, 군부독재라는 것만 사라지면 세상이 훨씬 살기 좋은 곳이 되고 사람들끼리는 더 사이좋게 살 것이라는 꿈을 품었다.

‘4·19가 나던 해 세밑/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반갑게 악수를 나누고/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하얀 입김 뿜으며/열띤 토론을 벌였다/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회비를 만 원씩 걷고/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그들은 김광규 시인의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읽으며, 자신들은 선배 세대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사회를 바꾸고자 노력했던 눈 밝은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에 서는 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4·19세대의 변신을 보면서 배운 게 많은 줄 알았다.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선배 세대와 달리 때 묻지 않은 순수한 가치를 추구하는 젊은 날의 열정을 꼭 지켜 갈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식민지에서 태어나 전쟁으로 배를 곯았던 세대, 맨땅에서 맨주먹으로 한국 사회를 일으켰던 앞 세대와는 달리, 비록 독재정권이라고는 하지만 더 나은 환경에서 자라고 혜택을 누렸기에 쉽게 현실에 길들여지거나 타협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제 중년의 얼굴로 거울 앞에 선 그들의 모습은 어떤가. 푸르던 젊은 날 이후, 얼마나 많은 망각의 강을 건너왔는가. 불의 앞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미래에 대한 기대로 부풀었던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세상의 부조리에 눈감고 남의 고통에 무관심한 것은 죄라고 생각했던 날들, 그토록 간절하게 미움이나 갈등 없이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꿈꾸었던 시간들로부터 얼마나 멀리 와 있는 것일까. ‘내’가 아니라 ‘우리’를 먼저 걱정했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늦은 것일까.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서 4·19세대에게 물었던 그 말은 이제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그대로 되돌아와 있음을….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고미석 문화부 차장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