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과 아래 洪 海 里 그늘이 있는 곳은 어디인가 그늘이 그늘그늘 드리워진 곳은 어디인가 그늘은 늘 아래 존재한다 그늘은 미끄러워 잡히지 않는다 그런 걸 알면서도 나는 '그늘 아래'라고 겁없이 쓴다 그늘에 아래가 있는가 그러면 그늘의 위는 어디인가 그래 어쩌자고 나는 그늘 아래로 파고 드는가 그냥 그늘 속으로 기어들지 않는 것인가 그늘은 무두질 잘 해 놓은 투명한 가죽이다 그늘에서 가죽에 막걸리를 먹여야 좋은 소리가 난다 그늘의 소리가 배어 있다 나온다 그늘북은 항상 얻어맞는 잔잔한 슬픔이다 그게 아니다 북은 젖어 있는 팽팽한 희망이다 그래 나는 늘 그늘이고, 아래에 있고 싶다. - 《시향》제47호(2012. 가을) - 시집『독종』(2012, 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