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 담장을 넘어서 능소화가 피었다. 능소화가 피어야 비로소 여름이 시작되는 것 같다. 빗속에 뚝뚝 져 내리는 주황색의 꽃잎은 선비의 절개를 의미한다고 해서 옛날 양반집 뜰 안에 심었던 꽃이기도 하다. 담장을 넘어 온 능소화의 모습이 마치 구중궁궐에서 궁 밖 세상이 그리워 까치발로 담장 밖을 내다보던 궁녀의 모습을 닮았을까 얼핏 그런 전설을 들은 것도 같다. 늘어진 가지 끝에서 능소화는 피고 진다. 여름 땡볕아래 주황색 꽃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시인은 그네를 연상한다. 그 붉은 꽃잎에서 그네를 타는 황진이의 치맛자락을 생각한다. 화담 서경덕의 유혹을 생각한다. 그들 사이에 피어난 사랑이 한여름 땡볕아래 타는 듯 피어 화르르 일었다가 화르르 꽃처럼 졌다면 능소화는 간절하고 정열적인 꽃이 틀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