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능소화 / 영주시민신문 2021.07.08.

洪 海 里 2021. 7. 9. 03:47

권자미 시인의 詩읽기 156

 

능소화

  • 영주시민신문  2021.07.08 

 

 

능소화

 

- 홍 해 리

 

 

올라가야 내려가는 것을, 어찌
모르랴 모르랴만
너야 죽거나 말거나


인정사정 볼 것 없다고
숨통을 끊어야 한다며
흐느적이는 빈 구석 그늘 속으로

 

몰입이다
황홀이다
착각이다

 

천파만파 일렁이는 저 바람
막 피어나는 꽃이 눈부시게 흔들려
치렁치렁 그넷줄이 천길이네

 

흔들리던 바람이 길을 멈춘 대낮
그넷줄 잡고 있는 진이
팽팽한 치맛자락 속으로

 

깊은 뜰
높은 담을 넘어온
화담의 묵향이 번져

 

허공을 가벼이 뛰어내리는
화려한 절체절명의
가녀린 유혹

 

도발이다
일탈이다
광풍이다.

 

 

* 어느 집 담장을 넘어서 능소화가 피었다. 능소화가 피어야 비로소 여름이 시작되는 것 같다. 빗속에 뚝뚝 져 내리는 주황색의 꽃잎은 선비의 절개를 의미한다고 해서 옛날 양반집 뜰 안에 심었던 꽃이기도 하다.

담장을 넘어 온 능소화의 모습이 마치 구중궁궐에서 궁 밖 세상이 그리워 까치발로 담장 밖을 내다보던 궁녀의 모습을 닮았을까 얼핏 그런 전설을 들은 것도 같다.

늘어진 가지 끝에서 능소화는 피고 진다. 여름 땡볕아래 주황색 꽃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시인은 그네를 연상한다. 그 붉은 꽃잎에서 그네를 타는 황진이의 치맛자락을 생각한다. 화담 서경덕의 유혹을 생각한다.

그들 사이에 피어난 사랑이 한여름 땡볕아래 타는 듯 피어 화르르 일었다가 화르르 꽃처럼 졌다면 능소화는 간절하고 정열적인 꽃이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능소화의 만개는 ‘도발이다/ 일탈이다/ 광풍이다’에 까지 다다르는 것이다.

 

 -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