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풍류 洪 海 里 날 선 비수 같은 달빛이 눈꽃 핀 댓잎 위에 내려앉았다 달빛에 놀라 쏟아져 내리는 은싸라기 그날 밤 대나무는 숨을 놓았다 목숨 떠난 이파리는 바람에 떨고 대나무는 바람神을 맞아들여 텅 빈 가슴속에 소리집을 짓는다 그렇게 몇 번의 겨울이 가고 나면 대나무는 마디마디 시린 한恨을 품어 줄줄이 소리 가락을 푸르게 풀어낸다 때로는 피리니 대금이니 이름하니 제 소리를 어쩌지 못해 대나무는 막힌 구멍을 풀어줄 때마다 실실이 푸른 한을 한 가닥씩 뿜어낸다 사람들은 마침내 바람 흘러가는 소리를 귀에 담아 풍류風流라 일컫는다. - 시집『비밀』(2010, 우리글) * 내가 내는 소리 이름을 말할 수 없었다. 집을 짓는다는 건 숨을 놓고 지난 생각까지 다 말리는 것일 텐데, 한동안 푸르던 이파리의 환상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