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 !
동백꽃 속에는 적막이 산다 / 홍 해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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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오륙십에 담배불이나 다독이고
잿불이나 살리려는 사내들은
겨울바다 동백숲을 와서 볼 일이다
떨어진 꽃송이 무릎 아래 쌓여
숯불처럼 다시 타오르고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은 먹어
다리께 이끼가 퍼렇게 돋고
허리도 불을 만큼은 불어
폐경을 했음직도 한 동백나무숲
저마다 더욱 왕성한 성욕으로
가지마다 꽃을 꽂고 모닥불로 타오른다
나이들수록 눈웃음이 곱고
잘 익은 보조개 샐샐거리며
저 막강한 겨울바다 파도소리
돌아오지 않는 사내들의 외침소리
맨몸으로 서서 가슴에 묻는
나이들어도 젊은 여자들이 있다
젊어도 늙은 사내들은
겨울바다 동백숲 앞에 서서
왼종일 동백꽃이나 볼 일이다
겨울바다나 바라볼 일이다.
예송리 동백꽃 [보길도 시편] / 홍 해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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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고 싶습니다
녹아지고 싶습니다라고
여우바람으로
자맥질치는 불길
미친 이 불길 잡아달라고
눈비를 맞아 봅니다만
밤마다 고개드는
죄를 죽입니다만
눈서리가 매서울수록
오히려 뜨거워만 집니다
마침내는 왈칵
각혈 쏟고 말았습니다. 부처님.
선운사 동백꽃 / 유 안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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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에 나비가 있다면 사고 나겠지
동백꽃이 오월에 핀다면
나비가 투신 자살하겠지
겨울에 피길 잘했지
살면서 부산피는 것도 잘하는 짓은 아냐
섬에서 혼자 피길 잘했지
동백꽃과 나비 / 이 생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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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 석자를 분해한다
뚝뚝 떼어넨 자음과 모음을
잘게 부순다
다시 조합할 수 없는
네 이름의 분말들
허공으로 날려보낸다
분해된 이름 대신
가슴에 선혈로 피어난 꽃
이별보다 사랑이 더 아프다
동백꽃 피다 / 목 필 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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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설로 하얗게 얼어붙은 숲속에
누가 지폈나
빨갛게 달아오른 한떨기 숯불
사람들은 한갓 동백이라 하지만
사람들은 그저 가녀린 꽃이라 하지만
아니다. 그것은
추위를 막아주는 겨울 산의 화롯불
다람쥐 쪼르르 언 발을 녹이고
메꿩 푸드득 언 부리 녹이고
굴참나무 바르르 언 몸 녹이고
온 숲의 따뜻한 겨울 나기다
옳거니
살아있는 모든 것은 가슴에 불을 안아야
혹한을 이겨내는 것
그래서 아름다움을
항상 가슴에서 타 오른다 하지 않던가
동 백 꽃 / 오 세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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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을 가르는 칼바람 산막을 뒤 흔들던 밤
첩첩 어느 산중에서 너는 어화둥둥 샛서방을
만났더냐
뼈도 마디도 없는 그것과 온 밤을 미끌리며
보듬으며
눈 속에서도 후끈 타오르며 몸과 마음 길들여 졌더냐
음푹 녹아든 저 눈밭에 물큰물큼 핏빛 몸둥아리는
댕강 한순간 열반에 든 바람의 네 불두덩이드냐
동 백 꽃 [바람의 칸타타 32] / 송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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