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와 蘭

[스크랩] 제주란 전시회 출품작들(2)

洪 海 里 2007. 3. 27. 04:09

 

어제는 오름 계곡에 갔다가 비 온 뒤 얼마 안 되어
평소에는 없었던 처음 보는 폭포가 신나게 흐르는 곳으로 가다가
카메라를 풍덩 빠뜨리고 말았다.

 

집에 와서 말렸으나 전원이 들어오질 않는다.
그래서 서비스 받아 고칠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이미 찍어놓은 난(蘭)이나 일본 다녀온 사진과 글을 울 릴 수밖에….

 

 

이 난들은 제주학생 문화원 전시실에서 3월 24∼25일에 열렸던
제4회 사단법인 제주란문화연합회 전시회에 가서 찍은 사진이다.
조명이 어두워 접사로 찍으려니, 가운데 전시된 난은 못 찍고
하얀 벽을 배경으로 있는 것만 골라 찍었다.

 

춘란(春蘭)은 봄을 알린다는 뜻으로 보춘화(報春化)라고도 하며
꽃에 무늬가 없으면 소심(素心), 노란빛이 돌면 황화(黃花),
보랏빛은 자화(紫花), 등색에 가깝고 붉은 빛이 돌면 주금,
테두리가 다른 색으로 둘러 있으면 복륜(覆輪)으로 불리는데,
두 가지가 중복되면 합쳐 부르고, 모양에 따라 독자적인 이름도 붙인다.
춘란은 향기가 없는데, 향기가 있는 꽃은 유향란(有香蘭)이다.

 

 

♧ 춘란 - 홍해리(洪海里) 
 
남도 지방 깊은 골 구름도 걷고
겨우내 움켜잡던 까끌한 손길
보리밭 시퍼러이 일어설 때면
대숲으로 새 떼들 몰려 내리고
햇빛 속에 피어나는 허기진 바람
아아아 눈물로도 씻지 못하던
꺼끌한 혓바닥의 가락을 접어
꽹과리 장단에 목청도 뽑아라
어둡고 춥던 밤은 잊기로 하리
가난하여 부끄럽던 속살도 펴고
접어 넣던 소복도 꺼내 놓아라
힘줄 불끈 막걸리잔 손에 잡으면
한세상 사는 일이 헛되지 않아
불뚝 서는 남근처럼 꽃을 피운다.
 

 

♧ 춘란(春蘭) - 정영기(艸堂) 
 
하늘과 맞닿는 대룡산(大龍山)
한 점 햇살과 춘란이
3월 마지막 내린 흰 눈 속에
뾰족히 초록잎을 내밀고 있다.

 

무념(無念)의 경지에서
한 입 가득
먼 길을 달려가
행복한 시간 갖고
굵고 큰 바위 아래 자생하는 춘란이
손으로 무릎으로 사랑을 하느니

 

늘 푸른 난 잎은 무겁다.

 

양양한 그 모습
그윽한 향기여!
새하얀 꽃대가
쑥쑥쑥 올라와
신비한 초록꽃을 활짝 터뜨리면
순결한 사랑은 난꽃으로 피어나
우리들 사랑을 새롭게 만든다.
 

 

♧ 춘란(春蘭) - 김금용 
 
무얼 찾을 게 있을까
눈 내리는 산길로 들어갑니다
펑펑 쏟아져 길이 묻히면
앞길은 알 수 없는 눈길로 표백되고
길이란 애초에 길이 아니었음을,
앞을 가로막았던
눈 시린 지리산이며
그리운 이의 얼굴이며
흰 백지로 지워지고
오죽(烏竹)나무 부딪는 소리
문 열고 훔쳐보는 아랫녘 마을
기다림이 무엇인지
알 것 같은 얼굴로
눈바람 아래서 풍란 한 포기
눈을 뜹니다
쌍계사 국사암엔 깨달음 늦은
겨울 산새들
절 마당 가득하고요

 

 

♧ 보춘화(報春花) - 홍해리(洪海里) 
 
2월이 오면
너에게서 말씀 하나가 서네

 

불안한, 불가해한, 불가사의한, 세상
네 속으로 들어가
머물 별 하나 찾아보네

 

참, 오래 기다렸다
지난해 무덥던 삼복 중에 너를 만나
멀리도 왔구나, 난아

 

모래바람길 가는 낙타처럼
면벽(面壁)하고 있는 수도승처럼
더 비울 것 없어 홀가분한 선비처럼

 

생각과 생각 사이를 뛰어넘어
말과 말 사이에 와 있다
이제 그것도 필요 없는 시간

 

귀 맑게 트이고
눈도 그렇게 트이도록
네 앞에 조용히 앉았느니

 

서두르지 말자, 이제
촛불을 꺼야 하리.


 

♧ 난초 2 - 오세영 
 
나무들처럼 쑥쑥 위로
오르지 않는다.
칡넝쿨처럼
쭉쭉 앞으로 뻗어가지도 않는다.
올라도 올라도 오르지 못할
하늘,
난초는 하늘이 허공임을 아는 까닭에
차라리 허공을 안고 산다.
한 촉에 두 세 개의 잎새로 피워 올린
꽃대궁,
난초는 때와 장소를 삼가 뿌리를 내린다.
천지에 흰 눈 소복이 내려 죽음보다
고요한 날,
양지 바른 바위틈에서 홀로 함쑥
머금는 그 향기,
난초는 세상이 미망임을 아는 까닭에
칡넝쿨처럼
앞으로 뻗어가지 않는다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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