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하루종일 비가 내려 쉬는 토요일임에도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날씨여서 좀이 쑤셨는데
마침 제주학생 문화원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제4회 사단법인 제주란문화연합회 전시회에 가서
난을 보면서 아쉬움을 덜었다.
순수하게 제주에서 자생하는 난(蘭)을 대상으로
잎을 보는 것과 꽃을 보는 것으로 나누어 심사하고 있었는데
아직 새우난초는 일렀는지 몇 개 나오지 않아 전시하지 않았고
많은 명품들이 나와 눈을 즐겁게 했다.
그러나, 한 편 생각하면 자연에 있어야 할 것들이
사람들의 보호 아래서 이런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현실이 슬펐으나
그렇게 해서라도 남아 있고 또 이런 모임을 중심으로 복원을 하고 있다니까
그런 대로 위안이 된다.
조명이 시원치 않아서 가운데 것이나 불이 없는 곳의 것은 엄두를 못 내고
꽃을 중심으로 이렇게라도 찍어 4회에 걸쳐 내보내려고 한다.
참고로 전시회는 오늘(3월 25일 일요일)까지다.
오늘 내보내는 글은 수필가 장생주 님의 수필이다.
♧ 오! 그대 춘란 자화(紫花)여! - 장생주
인적 하나 없는 외진 산. 가시덤불 사이로 햇빛이 한 움큼 쏟아지고 있다. 별로 크지도 않는 소나무. 그 소나무에 가리어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든 풀 한 포기. 말라죽고 헐벗고 다들 움츠려 들었는데 유독 싱그러운 진록의 가느다란 잎새 하나. 죽죽 뻗다가 살짝 멋을 부려 보는 그 여유가 왠지 범상치가 않다. 낙엽을 헤치고 풀숲을 뒤졌더니 아! 거기 보물 하나. 예쁜 꽃망울 새초롬히 터트리며 손을 쑥 내민다.
오! 춘란 자화(紫花)여! 생전 보지도 못했던 색깔 좋은 자줏빛 꽃 난 한 촉. 그럴 싸 그러한지 생김새부터가 대단하다. 겉으로사 야산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평범한 춘란 한 촉에 불과하지만 이건 꽃 태 좋은 소심이나 잎새 일품으로 치는 중투 사피가 문제가 아니다. 이따금 작달막한 노간주나무며 맹가 나무 그늘에 숨어 피던 홍화 황화를 눈여겨보며 살며시 살며시 꽃대를 올리던 저 몸매 날렵한 청순함이여 한 송이 자줏빛 꽃 난을 찾아 그토록 헤매이던 발길 앞에 보물처럼 반짝이던 그 황홀한 숨결이여. 행여 꺼질 새라 행여 다칠 새라 조심조심 풀 섶을 헤치고 곱게 물들어 한참 물올라 솟아오르는 춘란 자화란 꽃대를, 사랑하는 연인처럼 매만지며 열정어린 입맞춤을 한다.
볼수록 귀티 나는 자색이다. 한 점 부끄럼 없이 올곧게 살아가는 선비처럼 한 점 흠이 없이 고결한 품새 잃지 않는 조선의 단아한 여인처럼 곱디고운 자색이다. 이파리야 여느 춘란이나 진배없지만 그 자색의 꽃 하나로 하여 이렇게 귀한 품과 격이 살아가는 것을……..
어쩌다가 깊은 섬 우이도에 와 전교생 다섯 어린이들을 가르치며 외로움을 달래면서 시작한 난과의 데이트. 이따금 산에 오르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춘란들을 만난다. 그 춘란 중에 보석처럼 귀한 난이 있겠거니 싶어 산행을 계속해 온 터다.
어느 해던가. 손암 정약전 선생께서 천주교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천리 타향 머나먼 이곳 우이도에 귀양살이를 오셨다. 유배지 우이도 산자락엔 춘란 석란 자화 홍화 황화. 등. 온갖 귀한 난이 지천으로 무리를 지어 살고 있었다.
선생께선 산을 오르내리며 그 난 잎에 반짝이는 이슬이며 난 향에 취해 난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셨을까? 선생의 그 고고한 인격처럼 고결해 뵈던 그 지순한 태깔의 난들이 오랜 세월 동안 태평성대를 누리다가 어느 해부터인가 밀렵꾼에게 짓밟히기 시작했다.
마을의 한 어른이 남 먼저 난의 진가를 알아 차렸다. 노인은 날마다 산에 올라 난을 닥치는 대로 캐어 와 텃밭에 묻어 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 Y대의 교수 한 분이 그 보물들을 보고 탐을 내게 되었다. 그리하여 Y교수는 노인에게 난 한 촉만 달라고 사정사정하여 춘란 자화 한 촉을 구해 전국 난 전시회에 출품을 했다. 그런데 그 게 당당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Y교수는 욕심이 생겼다. 섬마을에서 얻어 온 값나가지도 않아 뵈던 난이 당당 2등을 하였으니 섬마을 그 텃밭에 있던 더 값있게 보이던 난이라면……. 일확천금의 꿈에 부푼 Y교수는 섬으로 다시 왔다. 서울에 있는 빌딩 한 채를 사줄 테니 텃밭에 있는 난을 전부 달라고 흥정을 했다.
그러자 섬마을의 그 노인도 욕심이 생겼다. 얼마나 비싸기에 그 많은 거금을 준다는지…. 왠지 교수하고 거래를 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직접 구매자를 물색하여 판다면 빌딩 한 채가 아니라 빌딩 2채도 살만큼 큰돈을 벌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Y 교수에게는 팔지 않고 그 해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봄이 오면 손수 팔아 볼 심산이었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섬마을 노인은 난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난을 단지 치부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난에 대한 애정도 별로 없었다.
그 해 겨울 노인은 그 많은 난에다 물을 흠뻑 흠뻑 주었다. 어서 어서 잘 자라 황금 알을 낳아 달라고 기도라도 했던가. 그런데 큰일이 벌어졌다. 한 겨울에 욕심껏 물을 퍼 주었던 그 많은 난들. 어떻게 되었을까? 보나마나 난이 몸살을 앓을 게 뻔한 노릇이었다. 난들이 시름시름 앓다가 한 촉 남김없이 다 죽고 말았다. 욕심이 빛은 재난인가. 무지가 빚은 재앙인가. 그 값비싼 난들이 꽃망울조차 터트리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그럴 싸 그러한지 난을 바라다보면 욕심 없이 살아라 한다. 우리네 길지도 않는 인생. 아득바득 살아간들 무슨 소용이랴. 깊은 섬 야산 가시덤불 속에 숨어 피는 저 고운 자태의 춘란 자화(紫花) 한 촉을 보라. 누가 보던 말던 소나무 가시나무 노간주나무 숨소리 들으며 솔바람 소리. 바닷바람 소리. 파란 하늘 밝은 햇빛 한 줌 벗하며 안으로 꿈을 키워 가는 삶. 그 한가함이며 여유로움을 어찌 범인이 따를 수 있으랴.
"여보게 자줏빛 난꽃이 피었다네."
가까운 친구에게 전화라도 걸어 보려해도 실없는 사람이라 핀잔을 들을 새라 혼자서 자주색 고운 춘란 자화(紫花)의 만개를 지켜보며 나만의 기쁨을 만끽하는 수밖에…….
자란(紫蘭)이 활짝 피었다. 살며시 살며시 속살 드러내며 한 겹 한 겹 감추어 둔 그 내밀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던 내 귀한 춘란 자화여! 연인이여! 오늘도 하루 깊은 섬 섬마을에서 나는 한 촉의 난을 사랑하는 연인처럼 존경하는 스승처럼 사모하는 마음으로 꽃잎 모두어 안아 보며 난과 정을 나누고 있다.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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