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詩 다시 읽기

洪海里의 시 10편 다시 읽기 /『푸른 느낌표!』

洪 海 里 2007. 6. 7. 13:21

<洪海里의 詩 10편 다시 읽기/시집『푸른 느낌표!』>

 

1. 가을 들녘에 서서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2. 지독한 사랑

 

나,

이제

그대와 헤어지려 하네

지난

60년 동안 나를 먹여 살린

조강지처

그대를 이제 보내주려 하네

그간 단단하던 우리 사이

서서히 금이 가고

틈이 벌어져

이제 그대와 갈라서려 하나

그대는 떠나려 하지 않네

남은 생을 빛내기 위해

금빛 처녀 하나 모셔올까

헤어지는 기념으로

사진도 두 번이나 찍고

그대와 나 사이를 이간질하던

나의 나태와 무관심을 나무랐지만

그대를 버리기

이렇게 힘들고 아플 줄이야

이 좋은 계절

빛나는 가을에

오, 나의 지독한 사랑,

6번 어금니여

나 이제 그대와 작별하려 하네!

 

 

3. 엽서


시월 내내 피어오르는

난향이 천리를 달려 와

나의 창문을 두드립니다

천수관음처럼 서서

천의 손으로

향그런 말씀을 피우고 있는

새벽 세시

지구는 고요한 한 덩이 과일

우주에 동그마니 떠 있는데

천의 눈으로 펼치는

묵언 정진이나

장바닥에서 골라! 골라! 를 외치는 것이

뭐 다르리오마는

삐약삐약! 소리를 내며

눈을 살며시 뜨고

말문 트는 것을 보면

멀고 먼 길

홀로 가는 난향의 발길이

서늘하리니,

천리를 달려가 그대 창문에 닿으면

'여전히

묵언 정진 중이오니

답신은 사절합니다'

그렇게 받아 주십시오

그러나

아직 닿으려면 천년은 족히 걸릴 겁니다.

 
 

4. 먹통사랑 


제자리서만 앞뒤로 구르는

두 바퀴수레를 거느린 먹통,

먹통은 사랑이다

먹통은 먹줄을 늘여

목재나 석재 위에

곧은 선을 꼿꼿이 박아 놓는다

사물을 사물답게 낳기 위하여

둥근 먹통은 자궁이 된다

모든 생명체는 어둠 속에서 태어난다

어머니의 자궁도 어둡고

먹통도 깜깜하다

살아 있을 때는 빳빳하나

먹줄은 죽으면 곧은 직선을 남겨 놓고

다시 부드럽게 이어진 원이 된다

원은 무한 찰나의 직선인 계집이요

직선은 영원한 원인 사내다

그것도 모르는 너는 진짜 먹통이다

원은 움직임인 생명이요

또 다른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직선이 된다

둥근 대나무가 곧은 화살이 되어 날아가듯

탄생의 환희는 빛이 되어 피어난다

부드러운 실줄이 머금고 있는

먹물이고 싶다, 나는.

 


5. 산벚나무 꽃잎 다 날리고 
          ―隱寂庵에서
      

꽃 지며 피는 이파리도 연하고 고와라
때가 되면 자는 바람에도 봄비처럼 내리는
엷은 듯 붉은빛 꽃 이파리 이파리여
잠깐 머물던 자리 버리고 하릴없이,
혹은 홀연히 오리나무 사이사이로
하르르하르르 내리는 산골짜기 암자터
기왕 가야할 길 망설일 것 있으랴만
우리들의 그리움도 사랑도 저리 지고 마는가
온 길이 어디고 갈 길이 어디든 어떠랴
하늘 가득 점점이 날리는 마음결마다
귀먹은 꽃 이파리 말도 못하고 아득히,
하늘하늘 깃털처럼 하염없이 지고 있는데
우리들 사는 게 구름결이 아니겠느냐
우리가 가는 길이 물길 따르는 것일지라
흐르다 보면 우리도 문득 물빛으로 바래서
누군가를 위해 잠시 그들의 노래가 될 수 있으랴
재자재자 끊임없이 흘러가는 물소리 따라
마음속 구름집도 그냥 삭아내리지마는
새로 피어나는 초록빛 이파리 더욱 고와라.

  


6. 상사화相思花 

내가

마음을 비워

네게로 가듯

너도

몸 버리고

마음만으로 

내게로 오라

너는

내 자리를 비우고

나는

네 자리를 채우자

오명가명

만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가는 길이 하나이기 때문

마음의 끝이 지고

산그늘 강물에 잠기우듯

그리움은

넘쳐 넘쳐 길을 끊나니

저문저문 저무는 강가에서

보라

저 물이 울며 가는 곳

멀고 먼 지름길 따라

곤비한 영혼 하나

낯설게 떠도는 것을!

 

7. 금란초金蘭草 

 

무등無等의

산록


금빛

화관을 이고


황홀한 

화엄세계를


한 송이로


열고 있는

여자女子.

 

8. 사랑의 뿌리


지난 봄날 나는 너를 보냈다
그 동안 든 정 때문에 찰칵
마지막 사진을 찍고 
모를 것이 정이라고
그간 서로 붙어 살아왔다고
떠나려 하지 않는 너
단호하게 결별을 선언했지만
뿌리는 두고, 너는
몸만 가버렸다
필요 없는 사랑은 화근거리
사랑이면 은밀히 묻어두었을 것을
사랑의 오독이었을까
시간이 가면
뿌리도 저절로 솟아오르리라
지층 깊이 박혀 있는 너를 보내려
다시 입 꽉 다물고 촬영을 하고
몽혼을 하고
집게로 뿌리를 물고 뽑아올린다
바르르 바르르 몸이 떨리고
자지러질 듯 혼절할 듯
이마에 진땀을 흘리며
너도 나도 울고 있었다
나도 너를 떠나보내기 아쉬웠던가
재차 마취를 하고
무지막지하게 떨치려 해도
옴짝달싹도 않던 너---
드디어 손을 놓고 너는 울었다
너 있던  자리 얼기설기 꿰매고 
허탈과 통증으로 일그러진 한밤
시커먼 피가 꾸역꾸역 흘러나온다
너의 흔적이, 너의 상처가,
뼛속의 적막이 온몸을 찍어누른다


사랑은 부드러운 힘, 
지독한
또는 
악랄한.


  


9. 시詩를 찾아서

 

세상이 다 시인데,

앞에서 춤을 추던 놈들

눈으로, 귀로 들어와

가슴속에서 반짝이다

둥지를 틀고 있다

바다에 그물을 친다

나의 그물은 코가 너무 커

신선한 시치 한 마리 걸리지 않는다

싱싱한 놈들 다 도망치고

겨우 눈먼 몇 마리 파닥이는 걸

시라고, 시라고 나는 우긴다

오늘밤엔 하늘에 낚시를 던져

별 한 마리 낚아 볼까

허공의 옆구리나 끌어당겨 볼까

물가에 잠방대는 나의 영혼

지는 노을이나 낚을까 하다

미늘만 떨어져 나가고

수줍게 옷고름 푸는 별도 잡지 못하고

천년이 간다

길은 산보다 낮은데

나는 산 위에서

우모羽毛 같은 몸으로

천리는 더 가야 하리라

시를 만나려면.

 

 

10. 봄비 갠 뒤


마악

목욕탕, 나서는

 

열일곱

기인 머리

 

촉촉한

향香

 

연둣빛

갈증.